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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아 작가의 광양 문화기행⑤] 윤동주의 시(詩)를 품다, 광양 망덕포구

백숙아 작가의 광양 문화기행 ⑤

[백숙아 작가의 광양 문화기행⑤] 윤동주의 시(詩)를 품다, 광양 망덕포구

백숙아 작가 2022/01/23

윤동주의 시를 품다 광양 망덕포구 백숙아 작가와 떠나는 광양 문화기행 5편이다.

우리네 삶은 여행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것이다.
머묾이라는, 정착지에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즐기고 인간이 만든 일터를 오가며 지난한 삶을 영위해 간다.
자연환경은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되면서 다시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우린 그 속에서 머묾을 즐기며, 삶을 향유해 나가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고 있고 네가 살고 있는 이곳이 멋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겹겹이 쌓인 문화의 도시이자 역사의 도시 광양으로 초대한다.

어둠의 시대에 희망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또 그는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절, 자아성찰을 하는 순수한 젊은이의 고뇌를 담은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윤동주 시인, 독립운동가 (1917.12.30~1945.02.16) 일제강점기 때 시인으로 ,, 등의 대표작을 썼고, 사후 3년이 지나고서야 유고 시집을 출판했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협의로 체포돼 복역하다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27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광양에도 묻어있다. 어두웠던 시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를 시인의 작품들이 바로 이 광양 망덕의 어느 오랜 가옥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모진 풍파 속에도 독립이라는 희망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망덕포구를 찾았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를 품었던 망덕포구와 섬진강휴게소
망덕이 있는 섬진강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고속도로에 섬진강휴게소가 있다. 섬진강휴게소의 순천행 차선에서 구름다리만 건너면 윤동주 시인의 육필(肉筆) 원고를 품었던 망덕포구로 갈 수 있다.

망덕포구가 자리한 섬진강의 모습이다.
망덕포구가 자리한 섬진강은 우리나라 5대강 중 가장 수질이 맑아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 있는 은어와 재첩이 아주 많이 산다. 그래서 섬진강휴게소 쪽문으로 나오면 재첩요리집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도 ‘청룡횟집’이 유명하다. 섬진강 재첩만을 사용한다는 철칙으로 가게를 운영해왔기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갖은양념으로 버무린 재첩회에 밥을 비벼 시원한 재첩국과 함께 먹고 망덕으로 향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윤동주 육필 원고가 발견된 정병욱 가옥

망덕포구 산책로이다. 윤동주 시 정원에서 윤동주 육필원고보존 정병욱 가옥, 망덕포구, 배달도 해수욕장이 산책로인 것을 표시되어 있다.

▲ 망덕포구 산책로.

섬진강휴게소를 지나 망덕포구로 들어서면 ‘섬진강 자전거길’이 펼쳐진다.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옆쪽으로 산책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바닷가를 따라 한적하게 걷기도 좋다. 봄, 가을에 날씨가 좋을 때면 광양시민들이 자주 찾곤 한다.

윤동주 시 정원이다. 비석들과 바닥에는 황토색 잔디가 깔려있다.

▲ 윤동주 시 정원.

시원한 바람과 바다 갈매기를 벗해 망덕포구 산책로를 걷다 보면 윤동주의 시비 쉼터인 ‘윤동주 시(詩)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시비들을 천천히 훑어보고 다시 산책로를 따라 5분 남짓을 거닐면 윤동주의 육필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鄭炳昱) 가옥이 나온다.

▲윤동주 육필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의 과거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이다.

▲ 윤동주 육필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의 과거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과거에는 정병욱 가옥 바로 앞 바닷가에 선창이 있어, 배를 타고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숨겼던 마루와 항아리. 보수 전(왼쪽) 보수 후.의 모습이다. 위에는 정병욱 가옥의 내부 사진이 보인다.

▲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를 숨겼던 마루와 항아리. 보수 전(왼쪽) 보수 후.

최근 광양시에서 정병욱 가옥의 노후된 지붕, 벽 등을 전체적으로 보수하는 개량사업을 했다. 새로 단장한 정병욱 가옥에 들어서면 윤동주의 원고를 담아 마루 아래 숨겨두었던 항아리를 볼 수 있다. 현재 정병욱 가옥의 마루는 보수를 거쳐 나무 재질과 색깔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왠지 모를 슬픈 기운이 서려있다. 전시된 시인의 육필원고를 읽다 보면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생생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시상을 나누며 우정을 키운 윤동주와 정병욱
윤동주와 정병욱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처음 정병욱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때, 시를 잘 짓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윤동주가 찾아왔다. 2년 선배였던 윤동주는 후배인 정병욱이 쓴 글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당시 소설가였던 김송의 집에서 함께 하숙하며 2년여 동안 동고동락했다. 윤동주는 자신이 쓴 시를 늘 정병욱에게 공유했다.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참회록>, 〈간(肝)’ 등의 주옥같은 시들이 어린 두 청년이 생활했던 작은 하숙방에서 탄생했다.

정병욱에게 보낸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이다.

▲ 정병욱에게 보낸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면서 자신이 고른 시 19편을 담은 시집 77부를 한정판으로 출판하려고 했다. 자필로 세 권을 직접 적어 가장 절친한 벗이었던 정병욱과 오랜 인연의 연희전문대 교수 이양하(李敭河)에게 각각 한 권씩 맡기고 자신이 한 권을 간직했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집 출간 계획은 일제강점기 검열을 걱정했던 이양하 교수의 만류로 미뤄졌다.

1942년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며 원고지 첫 장에 ‘정병욱 형 앞에’ ‘윤동주 정(呈)’이라고 쓴 육필 원고를 정병욱에게 맡겼다. 이후 이양하의 권유로 시집 출간은 계속해서 미뤄졌고, 1944년 정병욱이 징병으로 소집돼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를 끝까지 숨겨 달라며 당부하고 떠났다. 아들의 부탁을 들은 어머니는 윤동주의 원고를 보자기에 싸고 항아리에 넣어 마룻바닥 아래 묻어두었다.

 ’별 헤는 밤’의 육필 원고 일부이다.

▲ ’별 헤는 밤’의 육필 원고 일부.

수년이 흘러 정병욱이 광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수년간 항아리 아래 숨겨졌던 원고를 건네줬다. 당시 안타깝게도 윤동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육필 원고는 가장 가까운 벗인 정병욱 덕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정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름다운 시집 한 권만이 아니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점차 개인적이고 또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어렸을 적 친구, 순수했던 우정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시 한 편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하는 망덕포구
왼쪽 사진은 정병욱 가옥에서 걸어나와 망덕포구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카페테라스 내부이고 오른쪽은 외부이다.
정병욱 가옥에서 나와 망덕포구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카페테라스라는 찻집이 있다. 한적한 카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윤동주 시에서 느낀 여운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카페에 앉아 공기 좋고 풍광이 멋진 망덕포구의 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별이 바다로 쏟아질 것 같은 ‘별천지’를 볼 수 있다. 이번 주에는 가족들과 망덕포구를 찾아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읊어보면 어떨까?

별 헤는 밤.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느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다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왼쪽엔 안경을 쓴 여성의 프로필 사진이 있으면 오른쪽은 백숙아 작가, 전남 광양 출생. 문학박사, 시인, 서양화가이자 남도인문학연구소장, 광양문화연구회장, 한국가사문학진흥위원회 위원이다. 순천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집 [시간의 첫 선문], 공정 [한국명품가사100선], [독서와 표현], [광양, 사람의 향기]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라고 설명이 쓰여져 있다.

포스코그룹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응원합니다 라고 쓰인 파란색 배경의 응원배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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