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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②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철

[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②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철

김홍식 작가 2019/03/15

스테인리스스틸 등 철을 주재료로 미술 창작에 몰두하는 평면아티스트 김홍식. 2018년 10월,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스틸아트 기획 전시에 포항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과 도시민의 삶을 담아냈다. 예술가 김홍식 작가에게 철이라는 소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가 얘기하는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철에 대해 포스코 뉴스룸과 함께 알아보자.

<도시, 비움의 시작>展, 2018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공)

▲ <도시, 비움의 시작>展, 2018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공)

 

l 도시 산책자 김홍식이 그리는 ‘철의 도시’

작가들은 때로 그들이 선택한 곳에 대한, 그들이 속한 곳 –자연, 환경, 사회, 문화– 그리고 그것들이 놓인 일상에의 관심을 표현하여 작업한다. 그리거나 공간에 이름을 새겨주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기억, 기록하여 보관하고 또는 그 자국을 새겨 넣는다. 철의 도시에서 일상을 찍는다.

<철의 도시에서> (2018) 는 세 개의 포항 도시 전경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세 화면이 하나를 이룬다. 이 세 장면은 한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들이다. 포항, 포스코와 그 안을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으로 이뤄진 이야기 ‘포항, 철의 도시’를 표현했다.

 

 <철의 도시에서> 2018,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130x255cm (출처: 포항시립미술관)

▲ <철의 도시에서> 2018,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130x255cm (출처: 포항시립미술관)

포항이라는 도시에 관한 미술관 기획전시에 참여하는 작업이어서 포항의 실제 모습을 담고 싶었다. 쉽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사님, 포스코갤러리 큐레이터분의 도움 및 포스코의 허락으로 포스코 사진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중앙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같이 있는 이미지로 포항 전체 이미지를 보여주되 촬영 첫날의 맑은 하늘의 구름 모습을 넣어 마무리했고, 양쪽에는 포스코 내부 모습을 포스코 자료를 받아 용광로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스코 공장 외부 모습을 찍었고 포스코 공장과 자전거 탄 인물을 같이 한 화면에 넣어 표현했다. 누군가 그 안의 사람을 모습이 들어갔으면 했고 안되면 상징적으로 처리하려 했으나 기적처럼 자전거 타신 한 분이 사진 찍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철의 도시를 자전거 타고 지나는 상징적 산책자의 모습으로.

 

 <The Room #15_바벨에서 내려다보다> 2007-2010,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실크스크린, 120x520cm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The Room #15_바벨에서 내려다보다> 2007-2010,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실크스크린, 120x520cm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철의 도시>는 2007년과 2010년 사이에 완성한 , <The Room #15 바벨에서 바라보다>, 2009년 포스코 스틸아트에서 지원받아 포스코미술관에서 발표한 <그 날 이후의 기록 2009010>과 연결성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90210_숭례문, 그 날 이후의 기록> 2009/2011,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렌티큘러스크린, 110x165cm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 <20090210_숭례문, 그 날 이후의 기록> 2009/2011,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유성잉크, 렌티큘러스크린, 110x165cm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l 작가의 예술적 자아, ‘플라뇌르’(Flâneur)

나는 도시를 무대로 때론 빠르게 때론 천천히 걸으면서 도시를 산책하고 기록하고 그 이미지에 조형적 개입을 실험하면서 자신의 시각을 담아오고 있는 이 시대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다. 플라뇌르(Flâneur)는 한가롭게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다. 텍스트로서의 도시를 서술하고, 도시를 산책하며 마주하는 이미지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거대한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커다란 도시 변화를 겪은 파리. 도시 전체의 외향적인 모습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터전도 변했고, 그들의 생활에도 낯선 변화가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도 막연히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실은 그런 도시의 생경함이 편한, 우리 현대인의 거리 지나기를 표현한다. 플라뇌르는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이탈해 있어도 도시의 구경거리와 떠들썩한 군중 속에서 기뻐한다.

 

<Alien in...> 2004-2007,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110x90cm, Art Bank Collection

▲ <Alien in…> 2004-2007, 스테인리스스틸에 돋을새김, 110x90cm, Art Bank Collection

나는 그런 도심 사람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카메라나 영상장비로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을 헌팅한다. 기록한다. 그 속에서 소요하는 나 자신을 낯선 이방인처럼 느끼며,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1차적으로 기록한 후, 카메라로 채집한 이미지를 암실에서 감광하고 실크스크린이나 부식기법으로 금속판에 이미지를 안착시키고 부식시킨다. 금속판은 산에 들어가 부식의 과정을 거쳐 요철이 있는 표면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속들은 일면 차가워 보이면서도 환경에 따라 미세하지만, 종이처럼 섬유처럼 유연하게 스며들어 흔적을 깊이 각인하는 포용력을 지닌다.

주로 도심의 일상적인 거리풍경을 소재로 작업은 제단화 형식으로 3~4개의 작업이 한 이야기를 이룬다. 기억과 기록이 흔적에서 각인으로 옮아가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다. 만져지는 작업, 사진의 연장이자 사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촉각적인 것을 작업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내 작업의 프로세스이자 결과물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던 어느 날 예기치 않던 감정을 불쑥 튀어나오게 하는 불편함을 주는 ‘푼크툼’을 경험했다.

*푼크툼(punctum): 프랑스의 철학자·비평가인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가 마지막 저서인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에서 언급한 용어.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 자신에게는 가슴을 찌르고 오랫동안 응어리가 지는 요소를 푼크툼이라 표현.

 

l 김홍식 작가, 스테인리스스틸을 얘기하다

사진과 텍스트에 기억을 매개로 한 작업을 해석한 경험, 기록, 흔적 등의 개념들로 전이해가는 나의 과정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나는 부식된 판 자체를 제안하기도 하고, 이를 실제로 찍어낸 이미지와 대비시키기도 했다. 나의 작업이 평면작업임에도 미니멀리즘 조각에서나 느낄 수 있는 물질성이 감각성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얻은 것이다. 2004년부터 선택한 스테인리스스틸이라는 재료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화면은 종이에 얻어 찍힌 형상이 아니라 형상을 입은 판 자체가 작품으로 존재하는 구현된 물질성이다.

나의 작업은 사진의 지표적인 면에서 출발하여 흔적과 각인을 강조한다. 나의 주된 제작 재료는 색이 제거된 스펙트럼 같은 스테인리스스틸이다. 대개의 작품은 포토에칭 기법으로, 작업은 사진을 찍어 현상하여 판에 부식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포토에칭 기법: 금속 가공 기술인 에칭(etching)을 활용해 일반 사진을 금속판에 옮겨 새기는 기술

스테인리스스틸은 따뜻함마저 아우르는 아주 다양한 색감과 온도를 갖고 있다. 그림자 음각만으로 남은 스테인리스스틸 작업으로 사진을 찍어 현상하여 판에 부식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는 전통화가에게 있어 붓과 같은 도구이고 방식 자체로써의 의미가 아닌, 나의 표현 수단으로 확장됨에 의미를 둔다.

 

<도시, 비움의 시작>展, 2018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공)

▲ <도시, 비움의 시작>展, 2018 포항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공)

 

처음 소재를 택했을 때 중요했던 점은 철은 현대, 아니 현재 인류문명의 근간이라는 점이었다. 철은 인류문명 본래의 뼈대로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매체이다. 내가 작업해본 경험으로 스테인리스스틸은 심지어 따뜻함까지 아우르는 아주 다양한 색감과 온도를 갖고있다. 이 형태의 작업에서는 어떤 도구나 과정으로서의 판이 아닌 판 자체 그대로 보여준다. 과정을 뒤집거나 판의 물성에 주목하고, 구현된 작업뿐 아니라, ‘모든 걸 거둬주고 난 그림자 같은 판들이 무채색의 금속판이 아름다워 보일 때’, 그 판이 말하는 것이 더 강력하다, 때로 그 판이 말하는 것이 더 강력히 다가올 때가 있다. 부식된 금속판은 거친 사진 입자를 보존하고 있으며, 반사된 표면을 통해 이미지의 불명료성과 유동성을 증폭시킨다. 그렇게 표현된 금속성의 차가움은 현대적 느낌뿐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금속성과 익명성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나는 도시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풍경, 표지판, 시대에 맞지 않으나 기념비적인 건물 등을 스테인리스스틸 위에 인화시켜 무채색인 회색 톤으로 표현한다. 현대를 상징하는 재료인 스테인리스스틸과, 흔히 스쳐 지나가며 볼 수 있는 가벼운 풍경은 거대한 도시 안에 존재하게 되는 현대인의 무감각한 일상의 삶을 반영한다. 스테인리스스틸 위에 사진필름 작업한 것을 올려 포토에칭 방식으로 부식시켜 글라인드로 갈거나 실크스크린으로 부분을 마무리한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도시의 외관으로 그 작업에서는 어떤 도구 또는 과정으로서의 판이 아닌 판 자체 그대로 보여준다.

금속성을 지닌 스테인리스스틸 판은 도시에서의 인간 관계의 냉담함과 무관심을 표현해 주는 지시체로 사용됨과 동시에 금속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인간들을 포괄하기 보다는 반사하는 빛, 작품에서 금속 바탕 면의 번득임으로 표현된 그것은 전통과의 단절일 뿐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간의 단절이기도 하다. 작가는 사회의 아웃사이더지만 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와 다시 연결되기를 욕망하는 자이기도 하다. 이방인 혹은 순례자. 시각적으로 익숙하나 그러나 낯선 새로운 방법으로 일반 관람객들의 사유의 장을 열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김홍식展_파라다이스ZIP 전시뷰 2019 (사진: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제공)

▲ 김홍식展_파라다이스ZIP 전시뷰 2019 (사진: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제공)

김홍식 작가글쓴이가 작성한 글 목록으로 이동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이자 조형 예술학박사이다. 사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평면 및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로, 도시 혹은 도시 근교에 밀집해 사는 현대인의 일상의 삶 등을 자신의 시선을 통해 투영해 낸다. 2019년 현재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Zip'에서 김홍식 작가 개인전 진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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