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인 영광의 순간을 떠올리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빼놓을 수 없죠. 당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대한민국을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시켰던 그가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피플人피플, 오늘의 주인공은 한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 64년 만에 사상 첫 메달의 영광을 안겨준 홍명보 감독입니다.
체력적인 열세를 극복하며 보냈던 유년 시절
저는 아직도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한국 축구를 응원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데요.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의 신화를 새로 쓴 국민 영웅 홍명보 감독의 유년 시절은 어떠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굉장히 신체적으로 약한 편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날마다 내일 과연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코치선생님이 운동을 그만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홍명보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체격이나 체력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뒤처져 있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하지만 축구의 기본기 훈련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면서 부단히 노력한 끝에 축구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포스코와의 특별한 인연의 시작!
“포항제철에 91년도 입단을 했어요. 그때는 Home and away가 완벽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고 중립지역 같은 곳에서 가끔 시합했는데 그 당시 저희 포항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Home팀 이상의 지역 성원을 받는 팀이었죠. 그만큼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구단이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포스코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 당시 포항제철(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첫해 K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홍명보 감독은 포항팀의 공격을 이끌어가는 황선홍 선수와 함께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포항 스틸러스 감독직을 맡을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홍명보 감독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아주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승리로 이끈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
“회사를 보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있는데 어느 집단이든지 확실한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야겠죠. 저희 팀 같은 경우에는 축구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가 가장 중요했고요. 거기에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이 나와야 하죠.”
홍명보 감독은 영원한 리베로라는 별명으로 축구 팬들에게 익숙합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형님 리더십, 신뢰의 아이콘으로 불리우고 있어요. 포털 사이트에서 ‘홍명보’의 연관 검색어로 ‘리더십’이 나와 있을 정도인데요.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을 때는 항상 선수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했고, 선수들의 나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편안한 대화를 통해 팀의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고 합니다.
선수들에게 ‘팀보다 더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홍명보 감독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다시 되짚어 본다고 하셨는데요
축구는 실수의 연속이고 실수의 게임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실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Team work의 핵심은 ‘소통’과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뜨거운 열정의 사나이
“항상 뭔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좀 많이 있었고요. 저는 생활의 변화는 그렇게 원치 않는데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변화를 많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홍명보 감독은 선수 생활 시절부터 미국이나 일본 진출과 같이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추구해 왔지만, 여전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내성적인 그의 성격은 앞에서 팀을 이끌어주는 ‘리더’보다는 뒤에서 팀을 받춰주는 ‘서포터’의 역할이었기에 지도자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거겠죠.
한국 축구발전의 견인차가 될 ‘홍명보 장학재단’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바로 미국에 나가 선수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 보고 배운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처음 장학재단을 만들었고, 다음 해에 자선경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은 홍명보 감독에게 여러 가지로 특별했던 한 해였다고 합니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지 10년째가 되는 해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홍명보 장학재단’의 설립 10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는 10년째 자선 축구 경기를 열어 소아암 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꾸준히 돕고 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축구 꿈나무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K리그 올스타와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주역들이 함께하는 자선 경기를 열기도 했는데요. 지난번에 저희 헬로우 포스코에서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 중 추첨을 통하여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2 티켓을 2매씩 증정해 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2009년부터 런던 올림픽 대표팀을 맡아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는 은퇴 당시 기자회견에서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행정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올바른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독으로서 경험한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의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홍명보 감독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그의 멋진 도약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