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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미술관] 2024 기획전 : Popping, 살아있는 책들

[포스코미술관] 2024 기획전 : Popping, 살아있는 책들

2024/09/11

포스코미술관이 10월 13일까지 가장 오래된 AR이자, 책과 예술 사이를 오가며 우리를 매료시켜 온 팝업북 250여 권을 소개하는 <Popping, 살아있는 책들> 展을 개최한다. 13세기 최초의 팝업북 <볼벨(Volvelle)>부터 19세기 로타 메켄도르프, 에른스트 니스터, 20세기 루이스 기로드, 헤럴드 렌츠 등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팝업북의 800년 역사와 기법을 만나보자.

 


해럴드 렌츠가 고안한 ‘팝업북’이라는 용어는 움직이는 요소를 가진 모든 책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지만, 이전에는 무버블 북(movable book), 토이 북(toy book), 애니메이티드 북(animated book), 액션 북(action book), 매직 픽처북(magic picture book), 시닉북 (scenic book)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출판 시장 불황기에 돌파구 역할을 한 팝업북은 사실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다. 이는 책과 장난감의 경계에서 독특한 예술성과 조형성을 인정받아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도서관 주요 컬렉션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책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출판의 모든 과정이 기계화되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는 지금, 팝업북은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필요한 책으로 남아있다. 독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평면적 종이가 입체적인 책으로 변모하게 되는 팝업북은 종이책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13세기 영국 수도사인 매튜 패리스는 최초의 움직이는 종이인 <볼벨(Volvelle)>을 만들었다. 중세 수도원에는 축일이나 부활절을 결정하는 원반이 그려진 책이 있어 수도사들은 그 원반을 참고해 해마다 축일 날짜를 정했다. 그런데 책이 크고 무거워 돌리는 게 쉽지 않았다. 패리스는 “책 대신 원반만 돌게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양피지에 원반을 그린 뒤 잘라서 페이지 중간에 부착했다.
이후 실용적, 교육적, 상업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책이 제작되면서 팝업북은 점차 진화했다. 16세기 이전 팝업북은 주로 의학이나 과학, 혹은 천체 분야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이용했지만 18세기부터 아이들을 위해 제작되면서 장난감처럼 쓰였다.


1878년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든 움직이는 책(Lebende bilder)을 계기로 팝업북을 출판하기 시작한 메켄도르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다양한 팝업북을 출간했다. 메켄도르프는 그림 뒷면에 부착된 지렛대에 철사를 돌돌 말아 만든 작은 못을 박았는데, 탭을 당기면 못으로 연결된 지렛대가 움직이며 전면 그림이 다양한 동작을 하게 된다. 이전에도 탭을 당겨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변하게 하거나 움직이게 하는 팝업북은 있었지만 한 장면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동시에 실행한 것은 메켄도르프가 최초였다.

펼쳐서 세우면 130㎝가 되는 인터내셔널 서커스(Internationaler Circus)는 서커스 광경을 6장에 담은 입체 파노라마 북이다.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모습, 링을 통과하려는 여자 곡예사, 묘기를 보며 놀라는 관객 등 450개에 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려져 있다. 메켄도르프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복간본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판되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에른스트 니스터는 1890년 첫 팝업북인 <파노라마 픽쳐스(PANORAMA PICTURES)>를 출판한 후 빅토리아 시대 부유층 아이들을 주 독자층으로 한 정교하고 우아한 팝업북을 다수 출판했다. 에른스트 니스터의 대표적인 기법은 ‘리볼빙 픽쳐(revolving picture)’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을 두 장의 원반에 그린 후 여섯 장으로 잘라내 그림 조각들을 중심에 맞춰 동그랗게 배열하는 것이다. 원반의 가장자리에 있는 리본을 돌리면 밑에 숨겨져 있던 그림과 위의 그림이 교차하면서 숨어 있던 그림이 나타나 만화경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언제나 잘 차려입고 즐겁게 뛰노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아동들을 그린 니스터의 팝업북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1930년 루이스 기로드는 <칠드런즈 애뉴얼(CHILDREN’S ANNUAL)>이란 팝업북을 세상에 선보였다. 펼쳤을 때 가운데서 그림이 스스로 일어서고 책을 펼치고 닫을 때마다 나무꾼이 톱으로 나무를 베거나, 광대가 철봉을 넘는 동작이 나타났다. 게다가 전면에서만 볼 수 있는 이전 팝업북과 달리 현대 팝업북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가격을 낮추려고 뻣뻣한 마분지를 사용했으나 수면이나 창문에는 셀로판지를 부착해 환상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두껍고 질이 낮은 종이에 그려진 조잡한 원색 그림들은 원가 절감의 일환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루이스 기로드 팝업북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칠드런즈 애뉴얼 시리즈는 면지의 팝업을 비롯해 7개 팝업을 가진 책으로 각 책마다 요정, 서커스, 사냥, 정글, 마더 구스 스토리, 크리스마스와 산타 등 다양한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1931년에 나온 데일리 익스프레스 칠드런즈 애뉴얼 2(DAILY EXPRESS CHILDREN’S ANNUAL No. 2)는 책을 펼침과 동시에 광대가 철봉을 2바퀴 도는 팝업으로 유명하다. 책을 펼칠 때 계속되는 일련의 동작들은 루이스 기로드와 다른 작가들을 차별화하는 기법 중 하나다.


해럴드 렌츠는 단 3년간 팝업북 분야에 종사했지만 ‘팝업북’이란 단어를 사용한 최초의 작가이며 미국에서 팝업북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블루 리본 출판사는 원래 전기나 역사물 등 논픽션을 복간하는 곳이었는데, 경제 공황으로 책 판매가 부진해지자 팝업북 시장으로 진입했다. 1932년 블루 리본은 해럴드 렌츠의 진두지휘하에 첫 팝업북을 선보였다. 1932년과 1934년 사이 그는 10여 권의 팝업북 일러스트와 팝업북 제작을 위한 모형들을 만들었으며 팝업을 하나의 상표로 등록했다. 그래서 블루 리본 사의 모든 팝업북 표지에는 팝업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피노키오 팝업(The Pop-Up of Pinocchio)은 해럴드 렌츠의 대표작으로 팝업이란 용어를 트레이드 마크로 등록했음을 앞 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다. 흑백 일러스트와 4개의 컬러 팝업 페이지로 이뤄져 있으며 책을 펼치면 가운데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의 피노키오 얼굴이 나온다. 고래의 커다란 입이 벌어지며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가 보이는 마지막 팝업도 무척 스펙터클하다. 팝업을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다양한 피노키오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1880년대 미국 최초로 팝업북을 대량 출판했던 맥로린 브라더스 출판사는 계속되는 경제 공황의 여파로 책 판매가 부진해지자 다시 팝업북 분야에 진입했다. 그 첫 팝업북이 바로 제랄딘 클라인의 <졸리 점프 업(JOLLY JUMP-UPS)> 시리즈다. 1939년에서 1954년 사이에 출간된 <졸리 점프 업> 시리즈는 당시 미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생활을 담고 있다. 교외에 새로운 집을 마련한 가족들의 행복한 생활이나 당시 미국인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우주 개발 등을 소재로 삼은 덕분에 큰 인기를 끌어 팝업북 역사에 보기 드문 여성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대표작인 <졸리 점프 업> 시리즈는 남편 벤자민과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했다. 벤자민은 1930년대 독일의 슈라이버 출판사에서 출판한 팝업북에 영감을 얻어 페이퍼 엔지니어링 과정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 1장의 종이에 일러스트를 인쇄해 팝업 부분을 오려내고, 접은 후 세워서 3차원을 표현했다.

제랄딘 클라인의 마더 구스 시리즈(The Stand-up Mother Goose)는 서양 전래 이야기와 속담 민요 등을 재미있게 각색한 것이다. 상자 안에 8개의 마더 구스 이야기가 들어 있고 책의 형태도 다양하다. 표지 모서리도 둥글게 자른 것, 사선으로 자른 것, 꽃 모양으로 자른 것 등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동요별로 한 장을 한 권으로 만들었는데 책을 펼치면 가장자리에 휘장이나 넝쿨식물, 나뭇가지 등이 그려져 있어 단순한 팝업에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준다.

체코 건축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쿠바슈타는 1960년대부터 약 30년에 걸쳐 다양한 팝업북을 만들었다. 그의 팝업북은 전 세계 24개국 언어로 번역돼 3,500만 부 이상 팔렸다.

쿠바슈타는 1953년부터 체코 국영 출판사 아리티아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그래픽 디자이너, 팝업북 엔지니어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아리티아는 주로 어린이를 위한 책을 펴냈는데 세계대전 포화로 독일의 훌륭한 인쇄소가 파괴된 것과는 달리 프라하 인쇄소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체코의 구식 인쇄 기계들은 인쇄되는 동안 그림에 물감이 흠뻑 스며들기 때문에 쿠바슈타의 그림들은 정감 있고 소박한 색채를 띠게 됐고, 이는 서방 세계 사람들의 눈에 이국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대 초반에 파나스코픽 포맷으로 만들어진 팝업북 12권은 많은 텍스트를 포함하고 있고, 마지막 장에 대형 팝업이 튀어나온다. 파나스코픽 포맷의 팝업북 중에는 팝업의 높이가 30㎝에 다다르는 것도 있다. 파나스코픽 모델은 후기로 갈수록 팝업만 포함한 간략한 형태로 변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콜럼버스는 어떻게 아메리카를 발견했나>인데 인테리어 팝업이라 불리는 이 책은 텍스트 없이 팝업만으로 만들어졌으며 1977년 교재용으로 생산돼 전 세계로 수출됐다.

커다란 팝업이 일어서는 특유의 박진감이 특징인 파나스코픽 형태는 인테리어 팝업,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팅 카드 등에 다양하게 사용됐다. 파나스코픽 모델 시리즈를 비롯한 대형 팝업북은 쿠바슈타가 이후에 제작한 팝업북들과는 달리 커팅 팝업이 아닌 종이를 붙여 제작했다.


800년 역사가 녹아있는 전 세계 거장들의 팝업북을 만나볼 수 있는 <Popping, 살아있는 책들> 展.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다채로운 팝업북을 읽고, 체험하며 동심의 세계 속으로 빠져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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