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갈이가 아니라 칼의 생명을 창조하는 칼 장인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한켠에서 ‘한밭대장간’을 운영하며 칼을 갈고 있는 전만배(59), 전종렬(28) 부자 이야기다. 일반적인 회사나 관공서에서는 업무를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을 아침 여덟 시 반, 한밭대장간을 찾았다. 네 시 반에 출근해 일을 시작하는 이곳에서 아침 여덟 시 반은 그나마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란다.
전만배 장인은 작업복 차림으로 작업대에 앉아 칼 한 자루를 노련하면서도 여유 있는 자세로 갈고 있었다. 칼을 두 대의 연마기 표면에 대고 갈다가 육안으로 날의 상태를 감식하고 다시 돌리기를 반복했다. 저 한없이 단순해 보이는 일을 40년 넘게 해오는 동안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주저함 없이 사회적 인식을 꼽았다.
“사람들이 이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에요. 그게 잘 안 바뀌어요. 이 일을 칼을 가는 일로만 보는 것이 문제죠. 사실 칼을 간다는 것은 칼을 제작하고 창조하는 일이거든요. 칼의 생명은 날에 있으니까요. 그날을 수요자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내는 일이니까 제작이고 창조죠.”
그는 대전에 있는 한밭대장간 공장에서 원천기술을 이용해 칼을 만들어 연마하고 노량진수산시장 작업장에서는 그것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가공한다. 일주일에 반은 대전에 내려가 있고 반은 서울에 올라와 있다. 이처럼 이원체제로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전만배 장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칼은 네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해요. 녹이 안 슬고, 잘 썰어져야 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하죠.. 저는 이 원칙을 잘 이해하는 실질적인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칼의 생산과 판매와 서비스를 일원화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다가 9년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자부심으로 대를 잇다
이곳의 손님은 시장 상인들보다 외부인들이 훨씬 많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몰려드는 것이다. 여러 방송이나 언론에서도 한밭대장간의 실력을 검증하고 인정했다. 그렇게 찾아왔던 손님 중에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손님도 있었다고.
“어렸을 때 벨기에에 입양된 한국인 요리사가 있어요. 벨기에에서 가장 인정받는 요리사 중 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 친구가 한국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에 왔다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칼 중에서 가장 좋은 칼을 쓰고 싶다면서 여기 와서 칼을 사가지고 갔어요.”
그뿐 아니라 러시아 사람과 독일 사람에게서도 칼을 구입하고 싶다거나 사업제휴를 제안받았던 일화를 전만배 장인은 뿌듯한 표정으로 들려줬다. 아마도 수십 년 한 가지 일에 매진해온 세월에 대한 보상을 벽안의 이방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순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인의 아들은 지금 한밭대장간의 대표로 있다.(전만배 장인의 공식 직급은 ‘기술고문’) 이십 대 초반에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전종렬 대표는 내년에 결혼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아내 될 사람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해요. 일도 늘지 않고요. 사람들의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하고요. 제가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 그 친구에게 말했어요. 아버지가 자부심으로 일궈온 일을 내가 이어야 한다. 이 일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자주 만날 시간도 없을 것이다. 이걸 이해를 해줘야 가능하다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자친구도 이해를 하더라고요. 남자친구가 하는 일이니까 존중할 거라고.”
칼을 가는 일은 자신을 연마하는 일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전종렬 대표의 말에서 전만배 장인에게서 발견했던 뚝심과 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 부자의 소신과 철학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매우 유명한 것이었다. 그는 ‘싸게 많이 빨리’를 요구하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손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다른 칼갈이 가게를 알려준다고.
그는 새벽에 일어나 열두 시간을 지속해야 하는 이 일에 전념하기 위해 그 또래들이 으레 탐닉하는 것들을 모두 끊었다. 금욕적인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도 거의 안 마시게 되었고 외출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밖에 안 한다고. 전만배 장인은 아들의 실력과 자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의 기술은 99.9퍼센트 만들어져 있다고 봐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장간을 드나들며 어깨너머로 보아오던 일이니까 남들보다 훨씬 빨리 적응하고 기술습득력도 빠르죠. 다만 아들이 좀 더 배워야 할 것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죠. 그것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봐요.”
전만배 장인과 전종렬 대표의 꿈은 칼을 만들고 연마하는 아카데미나 학교 같은 걸 만드는 일이란다. 그래서 당당하게 전문적인 기술에 대한 보상을 받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끝으로 전종렬 대표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칼을 다루는 사람들 보면 눈빛이 다들 선해요. 거칠어 보여도 성질이 못된 사람들은 못 봤어요. 그것은 칼 앞에서 겸손하고 숙연하게 자신을 연마한 세월이 쌓였기 때문일 거예요. 칼은 양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쓰이는지 이해하는 게 인간의 삶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