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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

[포스코미술관 특별 기고] 8편. 전통적 소재의 현대적 변용

2016/05/23

 

사군자 다시피우다 포스터

군자가 사랑한 사군자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포스코미술관 <사군자, 다시피우다> 전시가 오는 25일로 마감됩니다. 이에 맞춰 Hello, 포스코 블로그에서는 사군자와 사군자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으로 ‘현대적으로 변용된 사군자’에 대해 들려드릴까 합니다. 함께 보시죠!

근대 이후 사군자화의 변화

오랜동안 군자의 식물로 애호되었고, 또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각종 문양의 소재로도 쓰였던 사군자는 그 개념은 있었지만 용어가 보편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입니다. 사군자라는 용어가 매·란·국·죽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사용된 예는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 규정’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전람회의 사군자 규정에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껏 ‘매죽’ 혹은 ‘난죽’이라 부르던 것이 최초로 ‘사군자’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그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합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부는 조선 사람이 홀로 무대를 휩쓸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시대 상황에서 사군자화는 절개와 인고의 상징성으로 인해 크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회가 거듭되자 총독부는 동양화부에 속해있던 사군자를 ‘서부(書部)’로 넣었다가 점차로 입선작을 줄여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군자가 민족사상을 이어간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이후 조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39년에 열린 조선서도전람회와 1940년에 열린 문인서화전람회에 서예와 함께 전시됨으로써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습니다.

윤용구, 사군자 10폭 병풍 종이의 수묵, 각 127*34cm 개인소장

근대기에는 사군자 중에서도 ‘난죽’(蘭竹)이 사군자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난죽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간단하다고해서 쉬운 것은 아니나 사군자를 배우는 과정에서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를 계절에 맞추어 봄-매화, 여름-난, 가을-국화, 겨울-대나무로 보는 것도 중국 사람들이 겨울 매화, 봄 대나무, 여름 난, 가을 국화라 했던 것과 다른 우리만의 특징입니다.

사군자화에 대한 애호 분위기로 당시 각 신문의 신년 휘호에 사군자화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형미와 함께 상징성이 큰 사군자화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다짐을 함께 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역으로 신년 휘호의 사군자화가 사군자를 대중과 더욱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1900년대 초반 사군자화는 이처럼 급격히 대중화되었고, 사군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통의 새로운 해석

사군자화가 대중화되면서 사군자화의 정신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모 사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답습되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성 때문에 필법을 익히기 위한 그림의 입문과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죠.

그러한 가운데 몇몇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당시 우리 그림이 항상 외세에 흔들리면서 불안정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일었는데요. 전통적인 화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이는 화가들이 있어 사군자화는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지하, <난초> 종이에 수묵, 30.5*17.8cm , 개인소장

현대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의 묵란을 보면 춤을 추는 듯, 흐느적거리는 듯, 바람결에 휘날리는 긴 난 잎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는 표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난이라는 뜻으로 ‘표연란(飄然蘭)’이라 하고 흉중의 한(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김지하의 긴 한 잎은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이자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의 한을 담아낼, 난 그림에서 지향할 형식의 틀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장일순,<묵란> 종이에 수묵 30.5*48.5cm, 개인 소장

김지하 묵란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무위당(無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묵란>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요. 김지하 난의 정갈하면서도 부드러운 먹의 느낌은 장일순으로 부터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난법을 변형하여 일부러 난을 그리려 하지 않은 듯 몇 번의 붓놀림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내었죠. 그의 호인 무위당(無爲堂)은 그의 삶의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에도 적용되는 듯합니다.

박영기, <묵죽>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김지하와 장일순 묵란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주에서 활동한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과 그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에 이릅니다. 박영기의 사군자 또한 전반적으로 깔끔한 묵법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의 <묵죽>에서 군더더기 없는 먹과 필선으로 그은 부러진 대나무 한 그루는 정갈하고 매끄러운 먹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묵죽보다 강한 느낌을 줍니다. 거칠거나 억세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같은 표현은 박영기의 조부인 차강 박기정의 묵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채색인물화로 유명한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중년 이후 그림 전반을 수묵의 문인화풍으로 전환하면서 사군자화를 그 본령을 삼아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화풍과 함께 여러 대가들을 깊이 탐구하여 터득한 현대적인 구도와 적극적인 색채감 등을 자기화 함으로써 전통적 소재를 현대화 할 수 있었죠.

장우성,<국화> 1998년 종이에 수묵담채 34*43.5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1990년대 이후 그는 만년에 까지 여러 점의 국화도를 그렸는데, 만개한 국화 몇 송이와 간략한 화제를 적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재에 집중하면서도 여백을 충분히 남겨 여유로운 화면을 연출했습니다. 87세의 노화가가 쓴 “봄에 먹은 마음 그대로 서릿 가을을 견딘다.”는 화제는 단지 국화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대화가 송수남(1938~2013)의 <매화> 또한 홍매의 전통을 이어 부채에 그린 것입니다. 만개한 홍매의 화려함은 19세기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지만, 줄기와 꽃에 가한 변화 없는 필선의 단조로움이 도리어 현대적인 느낌을 주죠.

현대적 변용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년, 캔버스에 유채, 55*35cm, 환기미술관 소장

‘수묵으로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라 했던 사군자화는 유화의 소재로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수묵(水墨)과 모필(毛筆)에서 유채로 재료가 바뀌면서 사군자는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감을 찾아는데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모더니즘의 틀 안에 조선 미술의 미의식을 결합시켜내는 것을 자신의 예술과제로 삼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서양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 하나가 <매화와 항아리>였습니다.

김환기에 있어서 이들은 ‘구체화 된 전통’이었다. 그는 이들의 독특한 특징을 단순화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거나 과장하여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매화, 달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죠.

유양옥<선면매조> 종이에 채색, 34.5*34.5cm, 개인 소장

유양옥(柳良玉, 1944~2012)의 <선면매조>에서 청록색의 바탕에 날아가는 새나 매화가 어우러진 모습은 김환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아 꺾이고 옹이진 줄기에 간략하게 그린 흰 매화의 깔끔한 조화는 전통적 상징성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조선시대 매화를 좋아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밀랍(蜜蠟) 즉 벌집에서 얻은 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쉬이 지는 꽃의 아쉬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벌이 꽃에서 채취하는 꿀의 부산물인 밀랍으로 꽃을 만드니 꽃이 돌고 돌아 다시 꽃이 된다는 뜻으로 윤회매(輪回梅)라 했습니다. 그 전통을 이은 것일까요? 사군자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조환의 작품들이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사군자 영상작업은 전통의 재창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

조환 <무제> 2015년 철과 폴리우레탄 290*578*15cm

사군자화는 단순한 구성과 서예의 기법을 활용한 문인취향의 특성으로 인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구성 때문에 문인화의 입문 과정쯤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소재의 상징성이나 사군자화의 역사성 뿐 아니라 수묵의 흑백이 주는 현대적 조형성 등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적지 않습니다.

글 이선옥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얼마 남지 않은 <사군자, 다시 피우다> 전시가
종료되기 전 포스코미술관에 한번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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