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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미술관] 2024 기획전 : <천기누설 고려비색 : 天機漏洩 高麗翡色>

[포스코미술관] 2024 기획전 : <천기누설 고려비색 : 天機漏洩 高麗翡色>

2024/03/28

포스코홀딩스가 3월 25일(월)부터 포스코미술관에서 포스코 창립 56주년 기념展 <천기누설 고려비색 天機漏洩 高麗翡色>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6월 2일(일)까지 약 두 달간 진행된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고려청자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로, 청자의 발전 과정을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 다양한 기형과 기법으로 탄생한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청자상감연판문매병>, <청자상감운학문표형주자, 승반>은 물론, <청자쌍룡장식향로>, <청자사자형문진> 등 총 60여 점의 유수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고려청자’와 미래를 여는 소재로 초일류를 향한 혁신을 선도해 온 ‘포스코그룹’의 첫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다. 관람객들은 소재를 다루는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가치’로 발전하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는 처음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고려인들은 이러한 영향을 받은 가운데 자신들이 가진 미감을 활용해 중국 청자의 기술을 자기화하고 개선해 나가며 독자적인 방법으로 고려청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의 푸른색은 비밀스러운 색깔이란 뜻에서 비색(秘色)으로 불리었지만, 이와는 대비되는 뜻으로 에메랄드 녹색을 띠는 비취 옥색의 빛이 감돈다고 하여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색을 지닌 고려청자는 독특하고도 고유한 ‘푸른빛’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청자를 두고 ‘고려는 빛깔이 푸른 도자기를 만드는 데 그 색감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며 고려청자의 색을 신비로운 색인 ‘비색(翡色)’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물감도 없던 시대에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철’에 있었다. 철은 화학반응을 통해 다른 색으로 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청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흙이나 유약에 들어있는 ‘산화철’이 가마 속의 ‘불꽃’과 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물이 바로 고려청자의 비색이었던 것이다. 또한, 산화철이 포함된 흙으로 안료를 만들어 문양을 그린 후, 유약을 발라 구워 철화청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고려청자의 깊숙한 곳에는 ‘철’이라는 DNA가 내재돼 있었다.

본 전시는 고려시대 최첨단 제조 기술의 결과물인 ‘고려청자’와 지속 가능한 미래 실현을 위해 소재의 혁신을 선도해 온 ‘포스코그룹’의 역사적인 만남의 장이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천기누설 고려비색 天機漏洩 高麗翡色>展을 통해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고려청자처럼, 백 년이 지나도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포스코그룹으로 영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하고자 한다.

 

유려한 곡선의 수구와 손잡이를 가진 이 주자(注子)는 잘록한 표주박 형태의 동체부(胴體部)를 가졌으며, 국화문이 시문된 능화형(菱花形)의 승반(承盤)을 갖추고 있다. 동체부의 허리 부분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이중의 원권 안에 모란문이 시문된 문양과 모란문을 단독으로 시문된 문양을 교차로 시문했고, 하단에는 이중의 원권 안에 시문한 운학문을 중앙에 배치하고, 원군 주변에 모란문을 시문해 장식성을 더했다.

주전자의 저부(底部)는 흑백상감으로 연판문대를 시문해, 마치 연꽃 위에 주전자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자의 뚜껑 또한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장식적인 조형미를 높여준다. 이러한 형태와 장식, 유약의 색을 미루어 볼 때, 고려인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미감을 이 작품에 여과 없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이 고려청자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 주전자 중 주전자와 뚜껑, 승반을 갖춘 작품은 현재 전해지는 예가 드물어 보물로 지정된 이 작품의 자료적 가치에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살짝 외반된 구연부(口緣部) 아래 견부(肩部)에 둥근 원을 그리고 있다. 고려시대 전형적인 매병보다 견부가 좁고 둥글며, 동체부 전면이 유려한 곡선을 갖추고 있다. 유약은 담청색을 띠는 투명 유약이 시유(施釉)됐다. 견부에는 하부로 향하는 이중의 연판무대가 흑백상감으로 장식됐다. 동체부 중간 부분에는 상부로 향하는 연판문대를 두어 장식했다. 동체부 윗부분에 마주 보며 시문된 연판문대 사이에는 3줄의 세로줄 무늬를 시문해 연꽃 안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적 마감을 표현했다.

매병의 저부에는 백상감으로 연판문대를 시문했으며, 동체부 중간부에 있는 연판문과 연결된 3줄의 세로줄 무늬를 시문했다. 연판문이라는 단순한 소재가 구성 변화를 통해 고려시대의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 굽바닥에는 모래 섞인 내화토 받침을 사용해 번조한 흔적이 확인된다.

이 작품은 골이진 과형(瓜刑) 형태의 동체부와 연잎이 말린 듯한 수구, 손잡이가 부착돼 있는 주자이다. 주자의 구연부와 저부에는 이중의 연판문대가 상감으로 시문돼 있으며, 동체부 전면에는 세로로 골이 음각으로 새겨져 굴곡 있는 과형의 형태를 보인다.

동체부의 구분된 각 면마다 모란절지문(牡丹折枝文), 연화절지문(蓮花折枝文),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이 교차로 시문돼 있다. 꽃가지 부분은 흑상감으로,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의 모습은 세밀한 솜씨의 백상감으로 장식돼 주자의 높은 조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맑은 청자유가 전면에 시유돼 화려하면서도 절제미가 조화롭게 표현된 고려 상감청자 주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체부는 균일한 간격으로 세로 골을 내어 11개의 볼록한 면을 만들었다. 과형의 동체부 전면에는 참외 넝쿨이 양각으로 시문돼 있어 한여름 햇빛을 받고 생기 있는 참외 넝쿨을 표현하듯 과형의 주자 전면에 섬세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문양으로 구성돼 있다. 손잡이는 세 가닥의 줄기를 꼬아 제작했고, 손잡이가 부착된 하단에 참외 잎이 표현돼 사실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유색은 전체적으로 맑은 청록색으로 양각의 문양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내 도자류 중 용이 도상화(圖像化)된 체계를 갖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남아있는 유물로 볼 때 용 문양 혹은 용 형태를 가진 사례는 고려시대의 청자류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향로는 동체부의 구연 끝이 위를 향해 살짝 벌어지고 원통형의 몸체부 하단에는 동물 모양의 다리가 세 개 붙어 있다. 원통형의 몸체에는 음각으로 도철문대를, 그 아래에는 운문대를, 그 사이에는 세 줄의 음각선을 둘러 장식했다. 향로 뚜껑에는 두 마리의 용이 몸을 교차해 오르고 있다. 코가 올라간 용은 마치 하늘을 오르듯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며 정선된 태토(胎土)에 맑고 고운 청자유를 시유해 발산되는 비색의 아름다움은 용의 기상을 더해준다.

이 청자 화병(花甁)은 여덟 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나팔꽃이 활짝 핀 유려한 곡선의 구연부를 가진다. 곧은 경부(頸部) 아래로 몸통은 세로로 여덟 개의 면으로 나누어 과형을 본뜨고 있는데 팽팽한 양감을 갖고 있다. 밖으로 벌어진 굽은 주름치마가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굽바닥에는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담녹색의 맑고 투명한 청자 유약이 시유돼 있어 단아하면서 기품 있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아낸다.

이 매병은 형태가 매우 당당하고 양감이 좋으며 상감이 선명하고 정교해 한눈에 보기에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견부에는 흑백상감으로 연판문대가 시문돼 있고 저부에는 백상감으로 1조(組)의 뇌문대가 시문돼 있다. 동체부에는 커다란 대나무와 매화나무가 앞 뒷면에 흑상감으로, 매화꽃은 백상감으로 시문돼 있다. 이 작품에 시문된 문양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상감청자에 표현된 회화적인 면모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작품은 백태(白胎)에 청유(靑釉)를 시유한 유개호이다. 백색 태토로 그릇의 형태를 만들고 청색유약을 씌워 제작한 것으로 조선 전기에 ‘청자(靑磁)’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되며,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광주 분원(分院)에서 백자와 함께 제작됐다. 당시 분원은 백자가 주 기종으로 제작됐으며 조선식 청자의 생산량은 아주 적었다. 형태는 백자의 형태와 유사하며 단지 유약만 청색을 씌워서 왕세자인 동궁(東宮)의 전용품으로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색은 짙은 녹색을 띠며 유층은 두껍다. 굽바닥에는 고운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확인된다.

외반한 구연부와 원형의 주구(注口), 그리고 골이 진 손잡이를 갖춘 병 모양의 주자이다. 구연부 상단부터 뇌문대, 국화문, 연판문대, 연주문대가 흑백상감 됐다. 동체부에는 모란절지문과 국화절지문이 교차로 시문돼 있으며 그 사이 여백에는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나비문양이 시문돼 있다. 매우 맑고 투명한 회청색의 유약이 시유됐으며 광택이 좋다. 굽바닥에는 다섯 곳에 모래 섞인 내화토 받침을 받쳐 구웠다. 유려한 기형과 화려하면서도 절제 있는 문양, 청초한 유색이 고려 귀족사회의 문화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려가 단순히 수입된 청자 기술을 토대로 중국식 청자 생산만 고집했다면 그건 그리 놀라울 일도, 주목할 일도 아니다. 고려청자는 아직도 중국 청자의 아류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기술을 자기화해서 개선해 더 나은 것을 선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런 어려운 일을 청자 기술 수입 100년 후 고려 장인들이 해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고려 비색청자다…

고려 비색청자가 기록된 것은 고려 사람이 아닌 중국인에 의해서다. 1124년 북송 마지막 황제 휘종의 사신인 서긍(徐兢)이 고려에 한 달간 머물다 가서 적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은 고려 비색 청자 관련 중요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으로 유명하다. 서긍은 고려청자에 대해 “陶器色之青者, 麗人謂之翡色, 近年以來, 制作工巧, 色澤尤佳”라 하여 고려인들이 비색을 부르고, 요즘 들어서 제작 기술이 향상되어 색과 광택이 뛰어나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비색은 비취 색의 옥과 같은 색상이다. 시간이 흘러도 고대의 중국인들을 비롯해서 아시아인들이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겼던 건 바로 옥의 색상인 비색이다. 그럴 정도로 이 시기에 고려청자의 색은 중국 사신이 봤을 때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 <천년의 꿈, 비색청자>

-방병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평론 글 中 발췌

 


​한국의 미(美)가 고스란히 녹아든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 고려청자. 이 경이롭고도 신비한 유산이 간직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날 좋은 날 <천기누설 고려비색>展을 찾아 깊고 푸른 시간 속을 잠시 노닐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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