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는 지구 온난화의 위기 속에 시장과 고객의 저탄소 제품에 대한 요구가 매년 높아지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과 대규모 설비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제철공법을 설비부터 기술, 원료에 이르기까지 저탄소 체제로 대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철강사의 ‘생존’이 탄소저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탄소 제철 프로세스로의 대전환’ 시리즈에서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확대, CCS 등 포스코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실행방안을 살펴보고, ‘생존’의 길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l 늘어나는 탄소배출 규제와 고객사의 저탄소 제품 요구
지난 6월 유럽의회는 제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는 ‘탄소국경조정매카니즘(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국경조정메카니즘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적은 국가로 수출하는 제품에 탄소배출인증서를 구입하도록 하는 일종의 ‘탄소 관세’로, ‘탄소국경세’로도 불린다. 내년부터 시범 운영 기간을 거쳐 ’27년 시행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탄소배출에 가격을 부여해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 수단을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라고 하며, 대표적인 종류로는 탄소국경세 외에도 ‘탄소세(CT, Carbon Tax)’와 ‘탄소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s Trading Scheme)’가 있다.
탄소세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량에 따라 부과되는 일종의 ‘환경세’이며,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하고 잉여분 또는 부족분을 사업장 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탄소세나 탄소배출거래제와는 달리, 탄소국경세는 자국 권역 외의 국가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무역장벽으로 불리고 있다.
국제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올해 4월에 발표한 ‘EU 의회의 CBAM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 분석에 따르면 철강을 포함하여 탄소국경세를 적용 받는 9개 품목에 대한 우리나라의 EU 수출금액은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85억1000만 달러로, 對EU 수출의 15.3%를 차지했다. 또한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청의 ’19년 발표에 따르면 EU의 철강 판재류 수입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터키, 러시아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자료보기) 탄소국경세 시행에 앞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사전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나 국가 차원의 제도적인 탄소 배출 규제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는 탄소 배출 저감에 대한 고객사의 직접적인 요구도 늘고 있다. 포스코는 자동차 고객사들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제조사들의 저탄소 제품 공급 요구를 맞추기 위해 CO2배출 원단위* 저감, RE100(Renewable Enegy 100%) 인증 제품 생산 등 다양한 방식의 탄소저감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CO2배출 원단위: 1톤의 철강제품을 생산하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
l 브릿지 기술이 필요한 이유
철강제품 생산시 이산화탄소(CO2)가 배출되는 이유는 철광석(Fe2O3)을 철(Fe)로 환원시킬 때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가 쓰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CO)는 철광석과 반응하여 산소(O2)를 떼어내는 환원제 역할을 한다.
철강제품 생산에 따르는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환원제가 필요하며, 글로벌 철강사들은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도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수소를 사용하여 쇳물을 제조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HyREX (Hydrogen Reduction)를 개발중이며, 2028년까지 100만 톤 규모의 시험설비를 포항제철소에 건설할 계획이다. (관련기사보기)
수소환원제철 상용기술 개발은 2030년 전후로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상용화 검증이 끝나더라도 기존 공정을 대체하여 설비를 전환하고, 유동환원로, 전기로 등 수소환원제철 신규 설비를 건설하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저탄소 철강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그린수소가 경제적으로 공급될 인프라가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로, 전로 등 기존 설비를 활용하여 저탄소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공정기술인 ‘브릿지(Bridge)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l 고로 기반 브릿지 기술 : 저탄소 연ㆍ원료 사용
흔히 ‘용광로’라고 불리는 고로는 석탄(코크스)과 철광석(소결광)을 고로 상부에서 넣어 겹겹이 쌓은 뒤, 고로 하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 녹여서 ‘용선’이라고 하는 쇳물을 만들어 내는 설비이다. 고로 기반 브릿지 기술은 고로 조업 시 사용되는 화석연료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이며, 고로에 사용되는 연료 및 원료의 종류에 따라 크게 3가지 기술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소결광을 대체하여 펠렛(Pellet)을 고로에 투입하는 방법이다.
펠렛(Pellet)은 철광석을 파쇄ㆍ선별한 후 일정한 크기의 구형으로 가공한 원료이다. 고로의 원료를 소결광에서 펠렛으로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소결광 생산에 사용되는 화석연료를 저감할 수 있어, CO2배출 원단위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펠렛은 소결광보다 고온에서 잘 녹고 환원성이 좋아, 고로에 소결광만을 사용할 때보다 환원제인 석탄의 사용 비율인 ‘환원제비’를 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쇳물 1톤 생산시, 펠렛을 고로에 100kg 사용하면 CO2를 30~40kg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이미 환원 처리된 원료인 HBI(Hot Briquetted Iron)를 고로에 투입하는 방법이다.
HBI(Hot Briquetted Iron)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여 환원시킨 직접환원철(DRI, Direct Reduced Iron)을 680℃ 이상의 온도에서 5t/m3 이상의 밀도로 압착하여 조개탄 모양으로 제조한 고급 DRI를 말한다. 압착하지 않은 DRI는 산화에 의한 발열 및 발화 가능성이 있어, 안전한 운송을 위해 국제해사기구(IMO)가 DRI에 등급을 나누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HBI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미리 제거하여 환원된 원료이기 때문에, 고로에 투입하면 환원에 소요되는 석탄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쇳물 1톤 생산시, HBI를 100kg를 사용하면 CO2를 약 100kg 정도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
단순히 고로에 소결광 대신 펠렛이나 HBI를 사용한다고 해서, CO2 배출 원단위를 저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에 펠렛과 HBI가 투입되면 원료의 형상과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포스코는 펠렛과 HBI 투입이 고로 내부의 용융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가장 적합한 형태로 장입물 분포를 제어함으로써, 저탄소 연·원료 고로 조업을 최적화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다.
셋째, 석탄 대신 저탄소 연료인 천연가스(NG, Natural Gas)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4 )은 개질시, 일산화탄소(CO)와 수소(H2)로 분리된다. 수소 성분을 포함한 함(含)수소가스를 고로 하부의 풍구에 불어넣어 환원제로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석탄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23년 상반기 고로 NG 취입 설비를 신설하여 기술을 정립해 나갈 계획을 수립하였고, ’25년까지 제철소 내 부생가스의 정제, 취입기술 개발을 완료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로기반 브릿지 기술을 패키지화하여 향후 저탄소 특화 고로의 모델을 정립할 예정이다.
l 전로 기반 브릿지 기술 : 상저취전로, 전기로합탕
전로는 고로에서 생산한 쇳물인 ‘용선’을 담는 거대한 항아리 모양의 설비로, 용선에 산소를 불어넣어 인, 황, 탄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원하는 온도와 성분으로 정제한 쇳물인 ‘용강’을 생산한다.
쇳물(용강) 1톤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100%라고 가정했을 때, 80~90%는 용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전로 기반 브릿지 기술은 ‘전로에 사용되는 용선의 양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로에서 용선의 양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고로 용선과 전기로 용강을 혼합하여 전로의 용선 사용량을 줄이는 ‘전기로 합탕’ 기술이다.
전기로는 이미 사용하고 난 철 스크랩을 재활용하여 용강을 만들기 때문에, 고로 대비 탄소 배출량이 적다. 일반적으로 전기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고로의 4분의 1수준이다. 그러나 전기로는 철스크랩의 잔류 원소 함유량에 따라 고급제품 생산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재 고급 자동차 강판이나 선박용 후판 등 고급강은 대부분 고로의 쇳물을 전로에서 정제하여 생산된다.
이에, 포스코는 ’25년 광양제철소에 대형 전기로를 신설하여 전로에 고로 용선과 전기로 용강을 합탕하여 탄소배출 저감과 고급강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둘째, 전로의 용선 사용량을 줄이고, 철스크랩 투입량을 증대하기 위해 전로 상하부에서 산소를 불어넣어 추가 열원을 확보하는 ‘상저취전로’ 기술이다. 전로는 외부에서 열이 공급되지 않고 용선의 열기 자체를 열원으로 하기 때문에, 용선을 줄이고 철 스크랩을 늘리면 용선의 온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저취전로’ 기술은 기존에 상부에서만 불어넣던 산소를 하부에서도 취입하여 추가 열원을 공급함으로써, 전로 내부의 2차 연소를 극대화한다.
참고로, ‘전기로합탕’이나 ‘상저취전로’ 기술처럼 전로에서 용선 대신 철스크랩을 다량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통칭하여 ‘저 HMR (低 Hot Metal Ratio)’ 조업 기술이라고 부른다.
l 파이넥스 기반 브릿지 기술 : 수소 증폭, CCUS
파이넥스(FINEX) 공법은 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하여 쇳물을 생산하는 포스코 고유의 기술이다. 현재 파이넥스 유동환원로에는 철광석 환원에 수소가 약 25% 사용되고 있다. 포스코는 유동환원로에 수소를 추가 공급하여 수소환원을 증대시키는 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수소 증폭 기술을 활용하여 DRI를 생산하면 CO가스에 의한 환원이 감소하게 되므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저감할 수 있다. 수소 증폭 기술로 생산한 DRI를 성형·압축한 HCI(Hot Compacted Iron)는 파이넥스 용융로 또는 고로에 저탄소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한편, 포스코는 파이넥스 설비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거나 저장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방안을 검토 중이다. CCUS는 산업시설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후 90% 이상의 고농도로 압축하여, 화학 전환 또는 광물탄산화 등의 방법으로 재활용하거나, 육상 또는 해양의 지하저장소에 안전하게 저장하는 일련의 과정 또는 기술을 말한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설비는 이미 70% 이상의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있기 때문에, 포집 및 압축 비용을 줄일 수 있어 CCUS 적용이 용이하다.
l 포스코의 저탄소 원료 확보 방안
펠렛, HBI 등 저탄소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철강사들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HBI의 원료가 되는 펠렛은 전 세계 철광석 사용량의 30%를 차지하는 적철광 또는 자철광만으로 생산되고,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갈철광은 펠렛 제조에 활용하기 어려워 펠렛 생산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펠렛 중에서도 DRI 제조가 가능한 고품위 펠렛의 경우, 샤프트환원로 방식의 수소환원제철 원료로서, 미래에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되면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저탄소 원료 확보를 위해 지난 3월 호주의 자원개발기업 핸콕(Hancock)社와 ▲ HBI 공장 신설 ▲호주 철광석(자철광) 광산 개발 ▲수소 생산 파일럿 설비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HoA(Heads of Agreement,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핸콕은 2015년 말부터 서호주 필바라(Pilbara)에서 연간 55백만톤의 철광석을 생산하고 있는 대형 광산 회사인 로이힐의 대주주이다. 포스코도 로이힐의 지분을 12.5%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와 핸콕사가 개발을 검토 중인 철광석 광산은 펠렛 생산이 가능한 ‘자철광’ 광산이다. 양사는 광산 개발과 더불어 수소를 환원제로 활용해 HBI를 제조하기 위한 공장을 신설하고, 나아가 호주 현지의 풍부한 천연가스 자원과 태양광 및 풍력 등 우수한 신재생에너지 여건을 활용하여 수소 생산기반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 8월 1일 글로벌 리딩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 발레(Vale)社와 저탄소 HBI 생산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와 발레는 HBI 사업 추진을 위해 ▲후보 지역 선정 ▲생산 공정별 원가 및 투자비 분석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저감 방안 등의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실시하기로 했으며, 올해 연말까지 HBI 사업을 위한 기초 검토를 완료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 3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호주 퀸즐랜드주에 위치한 3개의 천연가스전(아틀라스, 로마 노스, 루이지애나)을 보유한 세넥스에너지를 인수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세넥스에너지의 생산가스전을 활용하여 블루수소사업 및 CCS(Carbon Capture & Storage,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포스코그룹의 수소사업에도 전략적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