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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쇠는 찰흙 같아요” 청년 대장장이 박한준씨를 만나다

“저에게 쇠는 찰흙 같아요” 청년 대장장이 박한준씨를 만나다

2018/10/18

대장장이를 꿈꾸는 청년 박한준씨
서울 은평구 수색동에는 요즘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대장간이 있다. 산업화로 대부분의 금속 제품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면서 점차 설 곳이 좁아진 대장간을 서울에서 마주한 건 의외였다.

2013년 서울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형제대장간. 이곳에선 50년 이상 대장장이 일을 해온 ‘대장님’ 류상준씨와 그의 동생 류상남씨, 그리고 조수로 일하며 대장장이를 꿈꾸는 청년 박한준씨가 쌀쌀해진 날씨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청년, 대장장이의 길에 들어서다

2013년 서울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형제대장간
계절의 변화에도 대장간의 영업시간은 대동소이하지만 박한준씨는 되도록 아침 일찍 대장간 문을 연다. 보통 7시 반경에 문을 연 후 화덕에 불을 피운다. 하루 영업 준비를 끝내면 대장님이 출근하시는 시간이 된다. 오전 업무는 8시부터 11시 반까지. 점심 식사 후 불을 새로 피우고 오전 업무를 정리한 뒤 1시부터 오후 업무가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취미를 즐기던 소년은 대학에서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아들이 대장장이의 길을 걷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고요. 무언가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고 여러 직군을 고민했는데, 부모님께서 이왕이면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당당히 대장장이 일을 하겠다고 말했죠. 당시 부모님의 싸늘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요. 경제적 지원도 끊기고 모아둔 돈으로 생활해야 했죠.”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박한준씨
생각이 서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박한준씨는 바로 집을 나와 현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장장이에 대한 정보가 적었다.

“인터넷에 정보가 많다고 하지만 사실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 접근하기는 어려웠어요. 대장간 같은 경우는 채용 사이트에 공고가 올라오는 것도 아니니 이력서를 넣을 수도 없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죠. 티끌 같은 정보를 갖고 묻고 물어 처음엔 칼을 만드는 곳을 찾아갔어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칼은 가정집마다 하나 이상씩 있고, 실력을 쌓아 잘 만든다면 수요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간 곳은 단조 작업은 하지 않고, 쇠를 가져와 연마 작업만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소개받아 인연을 맺은 곳이 지금 일하고 있는 형제대장간이다.

51년 대장장이의 기술을 전수받다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제품들이 쌓여 있다
대장간은 일반적으로 한 명의 대장장이와 여러 명의 조수로 이뤄진다. 박한준씨가 대장님이라고 부르는 류상준씨는 13살부터 대장간 일을 시작해 51년째 대장장이로 활동 중이다. 몇 해 전부터는 대학에서 교수로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에게 대장일을 가르치고 있다.

오는 11월 포스코1%나눔재단이 개최하는 ‘2018 세대를 잇는 작업 이음전-철공예와 주거문화’ 전에서는 박한준씨의 스승 류상준씨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대장일은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사람마다 다른 물건이 나와요. 저희 대장님은 ‘쓰기 편하게, 깔끔하게’에 중점을 두시는 것 같아요. 50여 년 쌓아온 내공이 물건에 묻어나는 거죠. 이점이 다른 곳과의 차별성이기도 합니다.”

대장간에서 제작된 제품들이 통 속에 놓여 있다
박한준씨는 형제 대장간에서 일한 지 3년 차다. 처음 몇 개월 동안 일 같은 일은 아예 할 수 없었다. 달궈진 쇠가 단조 작업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것을 대장님의 어깨너머로 눈 동냥했다.

그러다 처음 배운 것이 정(鋌)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은 돌을 쪼거나 구멍을 파고 글씨를 새기거나 다듬을 때 쓰는 철제 연장이다. 지금은 주로 공사현장에서 사용된다.

“처음 스스로 만든 정을 보고 ‘아, 엉망이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정을 만드는데 1년 정도 걸렸죠. 잘 나왔다가, 안됐다가, 잘 나왔다가 상태가 들쑥날쑥하더라고요. 제가 어느 정도 대장일이 완숙된 상태라면 그런 폭이 적었겠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격차가 크더라고요. 일하면서 그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제대로 배우기까지 최소 10년

대장간에서 불타고 있는 숯의 모습
제대로 된 대장장이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년이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대장장이를 꿈꾸며 형제대장간을 찾았지만 워낙 힘든 작업 환경에 오래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요. 뜨거운 화로와 함께 일하니 사계절 내내 땀 흘려야 하죠. 계속 서 있어야 하고, 무거운 쇠를 다루니까 육체적으로 금세 지치곤 합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술은 하루아침에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장일은 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루와 망치
박한준씨가 대장일을 하면서 직업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안되던 작업이 풀릴 때다.

“유난히 작업이 안 풀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내 속을 썩이던 작업이 될 것 같은 순간이 오죠. 작업을 시작하고 그걸 해내면 새삼 제 직업에 보람을 느끼죠. 또,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이니까 손님이 구입한 물건에 만족하셨을 때도 감사한 마음과 함께 보람을 느껴요.”

도시에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농기구부터 주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위와 칼, 최근에는 캠핑족이 늘어나면서 캠핑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쁜 도끼나 망치를 찾는 손님도 늘었다고 한다.

“저에게 쇠는 찰흙 같은 느낌이예요”

고된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작업용 장갑들
일상 곳곳에 자리한 쇠는 일반인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무섭고 차가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대장장이의 시선에서 보는 쇠는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쇠는 막연하게 단단한 이미지였죠. 대장일을 시작한 뒤로 제겐 약간 찰흙 같은 느낌이에요. 저희는 뜨거운 상태의 쇠를 다뤄 모양을 만들고 다듬는 작업을 하니까요. 말랑말랑한 쇠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꼭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찰흙 놀이처럼 느껴져요. 손으로 조물거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게 직업까지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을 때 박한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어느 정도 손에 익지 않으면 나오질 않더라고요. 기량이 천천히 느는 직업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나니 지금 미래에 대해 말하는 건 너무 멀게 느껴져요. 지금 당장은 조금씩 실력을 쌓아가고 점진적으로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예요.”

길 건너편에서 본 형제대장간 풍경
새벽부터 부지런히 몸을 놀려 아침을 열고 뜨거운 화로 앞에서 종일 서서 일해야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일을 배우고 있는 박한준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그가 매일 다루는 쇠처럼 꿈을 연마하는 청년의 강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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