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 세계가 기후 변화 대응에 나서면서 ‘탈(脫)탄소 전환’이 산업 전반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철강 산업의 패러다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어떤 방식으로 탄소 감축 전략을 추진하고 있을까요?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준호 교수와 함께 글로벌 탄소 감축 전략 현황과 우리나라의 탈탄소 추진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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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don’t have steel, you don’t have a country.” (철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지난 3월, 미국 의회 합동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최근 미국은 철강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자국 철강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는데요. AI가 각광받는 요즘 같은 시대에 미국이 철강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는, 바로 철강이 국가 안보의 핵심이자 건설·조선·자동차·에너지·기계 등 모든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들어보셨나요? 한때 제조업으로 잘 나갔던 미국 오대호 연안 지역이 산업 쇠퇴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몰락해 붙은 이름인데요. 철강 공급이 끊기면 산업 생태계는 물론 일자리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잘 보여주는 이 사례로, 철의 가치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철은 한 국가의 기간 산업인 만큼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2024년 기준 무려 18억 8000만 톤이나 됩니다. 그만큼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만만치 않겠죠? 온실가스는 지구 온난화나 집중호우 같은 기후 재난의 주된 원인이어서 세계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에요. EU는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시행한다고 밝혔고, 이외에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내놓고 있습니다.

가끔 철강의 대체재로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같은 금속을 언급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다른 금속이 철을 따라잡기는 어렵습니다. 철강 1톤을 만들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약 2톤이라면, 알루미늄은 1톤 당 14~16톤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거든요. 게다가 철은 인장 강도**를 용도에 맞게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 품질 면에서도 훨씬 뛰어나죠. 결국 철을 대체할 만한 금속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셈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 유럽연합(EU)이 탄소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EU로 수입되는 특정 제품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
**인장 강도 : 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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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어떤 탈탄소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국가는 제선 공정에서 기존에 석탄을 사용해 철광석 산소를 제거하던 환원제와 원료탄을 석탄 대신 수소로 바꾸는 기술 개발에 한창인데요. 이 기술을 수소환원제철(Hydrogen-based Direct Reduced Iron) 기술이라고 합니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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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CBAM을 전면 시행하며 탄소 감축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EU를 한번 살펴볼까요? EU는 가장 발 빠르게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1년 클린 스틸 파트너십*을 결성하고, 2030년까지 대형 데모 플랜트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비 26억 유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철강기업 SSAB AB는 ‘하이브리트(HYBRIT)’라는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파일럿 플랜트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쳐 큰 주목을 받았고요. 또 다른 스웨덴 기업 스테크라(Stegra)는 연간 200만 톤 규모 설비를 건설 중이며, 이외에도 유럽 각국의 철강사들이 2026~2030년을 목표로 연간 200만 톤 내외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구축·개발하고 있어요. 다만, 글로벌 조강 생산량 2위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은 수소 인프라 부족과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잠정 보류한 상태입니다.
*클린 스틸 파트너십(CSP, Clean Steel Partnership) : 유럽연합(EU)에서 추진하는 철강 산업의 탄소 배출 저감 및 공정 혁신을 위한 공동 연구·혁신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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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에너지 환경분야와 산업기술을 담당하는 독립행정법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와 철강 연맹을 중심으로 수소 DRI(Direct Reduced Iron) 프로세스, 대형 전기로, CCUS* 기술 개발 등 다양한 탈탄소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런 행보 뒤에는 정부 차원의 투자 지원이 깔려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탈탄소 전환을 위해 설비 투자에 5조 엔, 연구개발비에 5000억 엔이라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또한 2000년부터 시행된 ‘그린 구매법’을 통해 수소환원제철로 생산된 탄소 저감 철강이 시장에 나오면 정부가 먼저 구매함으로써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구조를 마련하기도 했죠. 기업과 정부가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탈탄소 전환을 향해 나아가는 협동 전략이라고 볼 수 있어요.
*CCUS(Carbon Capture, Utillzation and Storage) :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의 약자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산업적으로 활용하거나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

철강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를 차지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철강 산업이 발달한 한국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철강 산업 비중이 약 17%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데요. 현재 정부는 수소와 철광석을 반응시켜 탄소 대신 물을 배출하는 제철 공법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정부와 협력해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핵심 기술인 HyREX(하이렉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HyREX는 포스코가 20년간 독자 개발한 파이넥스(FINEX) 공정의 유동환원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인데요. 이 유동환원로 방식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철강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샤프트환원로 방식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샤프트환원로 방식에서는 철광석을 일정한 크기의 구형으로 가공한 고순도 펠렛이 필요한데요. 문제는 이 원료가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약 4%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결국 샤프트환원로 방식은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고로 소결용 분광(철광석 미분을 소결해 고로 투입용 소결광으로 만드는 원료)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반면 유동환원로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별도의 가공 없이 광산에서 채굴한 가루 상태의 일반 분광을 바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성과 활용성 면에서 우수합니다.

▲2024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 모형으로 전시된 포스코 수소환원제철기술 HyREX 공정.
우리나라만의 탈탄소 전략 경쟁력, 이게 다가 아닙니다. 파이넥스 공정에서는 환원 과정에 필요한 가스를 사용해 왔는데요. 그동안 가스에 약 25% 정도의 수소가 포함된 상태로 환원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이미 수소환원 경험에 익숙하죠. 이 경험은 앞으로 완전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기술적 발판이 될 전망입니다. 결국 한국이 출발은 늦었지만, 기술을 빠르게 완성하기만 한다면 글로벌 탈탄소 전략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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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탈탄소 전환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과제인 만큼 기술 혁신만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기대에 맞춰 최근 국회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 ‘K스틸법’을 발의했죠. 거기다 지난 6월에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 기술 개발 사업이 총 사업비 8146억 원(국비 3088억 원) 규모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내년부터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인류 문명의 필수 소재이자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철! 이 중요한 소재를 탄소 배출 영향을 최소화해 생산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요. 포스코그룹은 앞으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위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예정입니다. 철강 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여정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