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올해 4월 초, CNN 등 외신은 멕시코 국경이 폐쇄되면 미국 자동차 업계가 마비될 수 있다고 일제히 긴급 보도했다. 이유는 멕시코에서 70%를 수입하는 와이어하네스라는 부품 때문.
와이어하네스는 차량 배선집합체로,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값싸고 작은 부품이지만, 없으면 자동차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미국만이 아니다. 국내 자동차 업체도 많은 물량을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우리 생활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산업 현장이 멈춘 순간 비로소 보인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미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작은 부품, 그 부품에 들어가는 소재, 그 부품을 만드는 장비, 이른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이라고 불리는 우리 산업의 기초였다.
그중에서도 철강은 산업 현장 어디에나 쓰이는 기초 중의 기초 소재. 하지만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대형사고에 부적격 철강재가 끼어드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자동차에 고장력강판이 있다면, 볼트에도 고장력볼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2013년 울산시 남구 S사 정밀화학공장 신축 현장에서 물탱크가 붕괴해, 근로자 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물탱크 강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고압력의 물을 탱크에 넣는 중이었는데, 탱크 접합 부위를 고정한 볼트가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이때 사용된 볼트는 개당 가격이 국산보다 300원 저렴한 부적격 중국산 볼트. 국산 고장력 볼트를 사용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3년 뒤, 울산지법은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물탱크 제작업체 대표와 기술팀장, 도급 업체 현장소장에게 형을 선고하며, “규정에 정한 고장력볼트가 아닌 일반 볼트가 사용돼 사고가 난 점으로 볼 때 전체적인 공정을 감독해야 할 피고인들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과연 내가 사는 건물, 내가 있는 일터의 철강 소재는 안전할까?
우리나라는 제조업 수출 강국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소재, 부품, 장비의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 화학공장 물탱크 사고 이후 지금까지도, 원산지 표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중국산 부적격 철강재가 품질성적서(MTC, Mill Test Certification) 까지 위변조되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찰청이 ‘15~16년 수입유통상을 압수수색해 위·변조된 품질성적서 53건을 적발한 바 있으며, ‘15년 민관합동점검에서는 원산지표시위반 건설 현장도 23건이 적발됐다. 이러한 현실이 계속된다면, 대형사고의 악몽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수입산 부적격 철강재. 근절할 방법은 없을까?
부적합 철강재 사용 근절을 위한 첫걸음 … 품질관리 대상품목 확대!
지난 5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토교통부가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제95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설자재·부재”를 기존 3종(철근, H형강, 6mm 이상의 건설용 강판)에서 7종(구조용 I형강, 구조/기초용 강관, 고장력볼트, 용접봉, PC강선, PC강연선, PC강봉)을 추가해 총 10종으로 확대 적용키로 개정 고시한 것.
적용대상은 총공사비가 5억 이상인 토목공사와 2억 원 이상인 전문공사, 연면적이 200㎡를 초과하는 건축물, 연면적 200㎡ 이하 건축물 중에서도 공동주택, 다중주택, 공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과 시설물 등이며, 부적합 자재 사용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건설 현장에서 부적합 철강재 사용에 따른 사고가 빈번히 발생함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품질관리대상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번 품목 확대 개정 고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원산지 표시 위반, 품질성적서 위변조 사례도 끊이지 않아, 이번 시행령 개정 한 번만으로는 부적격 철강재 사용의 완전한 근절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물론, 철강은 소재이기 때문에 원산지나 품질성적서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법 개정을 통한 품질관리 대상 품목 확대도 물론 중요하지만, 법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적격 철강재를 스스로 근절하고, 모니터링하는 수입유통업계 및 수요가의 자정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여파로, 제조물책임법인 일명 PL법(Product Liability)의 처벌 요건과 제조사 책임이 강화되고 있어, 제조사들의 주의가 더욱 요구된다. PL법은 어떤 제품의 안전성이 미흡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제조 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판례로 적용되기 시작한 이래, EU는 1980년대 후반, 중국과 일본은 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시행되었다. 제품의 결함으로 발생한 인적ㆍ물적 ㆍ정신적 피해까지 공급자가 부담하는, 한 차원 높은 손해배상제도로, 부적합 철강재 사용 등으로 인한 제품의 결함을 입증할 수 있다면 제조사 측의 과실 유무에 관계없이 ‘무과실 책임’을 묻게 된다.
부적격 수입산 철강재 사용을 근절하는 것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포스코는 부적격 철강재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국철강협회 및 회원사와 함께 부적합철강재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 개정된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의 내용을 대외에 알리고 온라인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이번에 제외된 ‘건설구조용 강판의 두께 한정 제외’ 및 ‘가시설(假施設)용 포함’을 적극 건의하는 법 개정 활동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