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현금을 △△조원 쌓아두고 있다!!??’
기사를 보다 보면 종종 기업이 현금 자산을 조 단위로 쌓아놓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게 된다. 독자들은 기사를 보고 ‘나라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든데 기업들은 돈을 쌓아놓기만 하고 투자나 고용 창출 등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에는 큰 함정이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제표 관련 기사를 볼 때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는 현금의 성격을 잘 살펴봐야 한다.
최근 모 인터넷 매체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현금 보유 관련 기사를 다루며, 포스코가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표를 제시했다.
이 자료의 출처는 포스코가 분기마다 발표하는 분기 보고서의 연결재무제표 상에 나와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 항목에 나와 있는 2조8,383억 원을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 첫 번째 함정이 있다. 지난 2011년부터 국내 기업들은 국제 기준에 맞추어 계열사들의 실적을 모두 포함해서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규정되었다. 위 재무제표는 앞서 설명한 연결재무제표로 포스코와 포스코의 계열사 41개사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보유액 규모를 말한다.
이에 따라 2조 8,383억 원을 포스코와 포스코 계열사 41곳, 총 42개사로 나누어 보면 회사 1곳당 약 평균 670억 원 정도의 현금을 운영하고 있다는 답이 나온다. 자료에 명시되어 있는 2조8,383억 원과 670억 원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나타낸다.
하지만 포스코 및 포스코 계열사가 모두 동일한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현금 보유액을 산술 평균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포스코의 현금 및 현금 보유액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 답은 연결재무제표와 함께 제공되는 별도재무제표에 있다.
포스코의 별도재무제표상에 나와 있는 현금 운용금액은 4,120억 원 수준이다. 따라서 포스코가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기사 내용에는 큰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조 단위는 아니더라도 40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많은 것 아닌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에 두 번째 함정이 존재한다.
재무제표상에 나타나는 숫자는 어느 한 시점에서 계산한 숫자를 의미한다. ’18년 1분기 재무제표는 ’18년 3월 31일 기준으로 측정된 수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기업의 현금은 한 곳에 장시간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의 혈액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포스코의 철강업을 매우 단순화시켜서 예를 들어보자. 포스코는 철을 만드는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사 오는데 돈을 지출한다. 이때 현금이 빠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구입한 원료로 철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현금이 들어온다. 들어온 현금은 금융기관에 투자 하기도 하고, 빌린 돈을 갚기도 한다. 또한 철을 생산하기 위해 설비들을 끊임없이 보수해야 하고, 포스코를 믿고 투자해 주신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현금은 이 과정에서 또 빠져나가게 된다.
‘☐☐ 기업이 적정 시재를 보유하고 있다, 아니다’라는 등의 기사를 읽어보셨을 텐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보셨던 ‘자금 시재’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기업이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이클을 돌리기 위해 최소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 그리고 금융 상품에 저축해 놓은 돈을 ‘시재’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시재는 앞서 언급했던 재무제표상에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재무제표 주석에 표기된 기타 금융자산 중 ‘예금상품+단기금융상품’의 합계를 의미한다.
기업은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고려해서 운영 자금 일부는 현금으로 보유하면서(현금 및 현금성 자산) 사용하고, 일부는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과 예금상품에 넣어놓고 자산을 운용한다. 이는 가계에서 경제생활 시 일부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은행에 돈을 넣어놓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개별 가정마다 수입과 지출, 그리고 저축의 규모가 제각각이듯 기업 역시 천차만별이다. 포스코처럼 철강업에 속한 기업도 있고, 전자, 자동차, 유통, 선박 등 다양한 형태의 산업군에 다양한 기업들이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각 산업의 특성에 따라 원료의 구매와 제품·서비스의 생산, 그리고 판매와 유통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규모에 맞는 비용을 지출하고 저축을 한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약 2개월가량 버틸 수 있는 규모의 시재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금으로 철광석, 석탄 등 원료를 구매해서 철강을 생산, 판매하여 판매대금을 회수하기까지 약 2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즉, 고로를 꺼지지 않게 하면서 정상적으로 철강 영업활동 1회 사이클을 진행하는 기간이다.
여기에 마지막 중요한 함정이 있다. ‘○○기업이 현금 시재로 △△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개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월을 운영할 수 있는 현금 및 예금 운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로 표현하는 것이 시재 운용에 대한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업 성과가 좋고 미래에 대비하는 삼성전자, 현대차, 토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2개월~2.5개월을 유지할 수 있는 시재를 보유 중이다. 세계 최고 철강사인 포스코도 업계 최고의 사업성과 기반 위에서 만약의 사태와 신성장 동력 확보 등 미래 투자에 대비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글로벌 기업 수준인 2개월 수준의 시재를 운용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통상 2~2.5개월이라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개별 기업의 경영방침과 속해 있는 산업군의 전망, 불확실성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지, 공격적인 경영을 하는지에 따라서도 신축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앞으로 재무제표 관련한 기사를 보게 되면 어떻게 이해하면 될지 알 수 있겠다. ‘○○분기에 △△억 원, △△조 원을 쌓아놓았다’가 아닌 ‘△△억 원, △△조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해서 생산 활동을 했구나, 그 돈을 가지고 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 구매·생산·설비투자·금융투자·배당 등 다양한 기업 활동을 펼쳤구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기업 재무제표에는 연결과 별도 재무제표가 구분되어 있다는 것, 재무제표상의 기업 현금액은 쌓여있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순환된다는 것,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예금의 규모보다 그 돈으로 최소 얼마의 기간 기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각이 생긴다면 재무제표 관련 기사를 기존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