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뉴스룸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49년 전인 1977년, 포항제철소 3기 설비 확장 프로젝트를 위해 프랑스에서 건너왔던 엔지니어 제라르 르벨(Gérard REVEL)입니다.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으니, 포항에서 보낸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요. 당시 포스코의 상징이었던 황토색 근무복을 입고 제철소 현장을 누비던 직원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소중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독자 여러분께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1940년대 후반, 프랑스 철강 산업의 요람이라 불리는 중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광업과 제철 산업을 이어온 분지에서 자랐기에 대학 졸업 후 자연스럽게 철강 설비 설계·제조 분야의 명가인 크뢰조-루아르(Creusot-Loire)의 자회사, 세심(SECIM)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회사가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가면서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일하던 저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전 세계에 공급되는 턴키 공장의 현장 설치와 시운전을 총괄하는 업무가 주어진 것이죠.
그날부터 세계 각국을 누비며 설비들이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을 지휘해 왔는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한국 철강 산업의 초석이 된 포스코 분괴공장*입니다.
*조괴공장에서 쇳물을 일정한 형태의 틀에 부어 만든 철강덩어리(강괴)를 분괴공장에서 재가열하여 슬래브(Slab)나 블룸(Bloom) 등으로 변환한다. 포항제철소에서는 전 강종 100% 연속주조(Continuous Casting) 공정 구축 이후 1998년 12월에 폐쇄됐다.

제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분괴공장 건설 지원 담당자로 임명되어 이곳에 왔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 저에게 한국은 너무나 낯선 나라였습니다. 그저 세계지도에서 위치만 겨우 확인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하지만 그 서툴렀던 첫걸음이 제 인생을 바꾼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분괴 공정은 제강 공장에서 나온 거대한 쇳덩이를 압연하여 슬래브 같은 반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제철소의 허리와도 같은 핵심 공정이었습니다. 고도의 정밀함과 기술적 조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장비 설치를 감독하고 한국 팀과 협력해 시운전을 수행하는 매 순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습니다.
당시 분괴공장 건설 현장은 늘 붉은 흙먼지로 가득했는데요. 그보다 더 붉었던 건 현장 직원들의 열정이었습니다. 한국 엔지니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면을 파고들었고, 프랑스어나 영어가 서툴러도 손짓발짓을 해가며 기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저를 찾곤 했습니다. 그 열정에 감동해서 저도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려고 노력했지요.

당시 동료들과 쌓은 추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한국인들의 놀라운 창의성과 독창성이었습니다. 볼트를 조일 렌치가 부족하면 강판을 잘라 직접 도구를 만들어 썼고, 기초를 타설할 콘크리트 펌프가 없으면 현장 옆에 거대한 흙더미를 쌓아 올려 그 높낮이 차이로 콘크리트를 흘려보내더군요.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는 그들의 지혜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건설을 총지휘하셨던 한국인 간부들의 탁월한 리더십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주면서도, 타국에서 온 이방인 엔지니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특유의 깊은 정(情)이 있었죠.
토목 공사와 건물 건설, 그리고 설비 설치 작업이 동시에 맞물렸을 때는 현장에 무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피땀을 흘렸는데요. 그 기억도 이제는 아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완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두가 ‘국적을 초월한 원 팀(One Team)’으로 뭉쳐 기적을 만들어냈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당시 현장에서 늘 함께 땀 흘리며 동고동락했던 Mr. J.K. Kim과 Mr. Sonn Yang Han 님께 안부를 전합니다.

프랑스에 있는 제 서재에는 당시 포항에서 동료들과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데요. 시간이 흘러 세계적인 철강사로 우뚝 선 포스코를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로움을 넘어 뜨거운 존경심이 느껴집니다. 사실 포항을 떠날 때만 해도 ‘이 제철소가 정말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포스코는 보란 듯이 제 예상을 뛰어넘어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황무지에서 출발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철강사로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죠. 이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함께했다는 사실은, 저의 인생의 가장 큰 자랑거리입니다.

최근 글로벌 철강 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포스코를 일군 주역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낸 위대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포스코 제철소 역시 49년 전 수많은 한국인 엔지니어들과 해외 엔지니어가 흘린 뜨거운 땀과 눈물,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겠다는 집념으로 일궈낸 기적의 땅입니다. 그 위대한 ‘포스코 DNA’는 지금의 포스코인들 가슴 속에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먼 프랑스 땅에서 포스코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