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둔화되며, 국내 이차전지 산업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럽의 보조금 축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하 IRA) 법안의 불확실성, 그리고 중국 기업들의 거침없는 확장 속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실적 악화와 투자 지연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의 생존과 재도약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 전기차 수요 부진 극복 위해서는 구조적 어려움 직시해야
전기차 수요 부진은 언제 끝날까요? 이차전지 산업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유럽 전기차 보조금 축소 이후 2024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성장세가 둔화했고,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되었다. 미국 IRA 법안 수혜를 기대하며 증설을 발표했던 기업들은 일부 계획을 지연시키거나 취소했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전방 산업 둔화’라는 외부 요인만 해결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시각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어려움도 바라보아야 한다.
진짜 문제는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의 변화다. 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은 하락한 반면 중국 CATL(닝더스다이)과 BYD(비야디)의 점유율은 상승했다. CO2 배출규제 강화로 전기차 판매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유럽에서도 국내 배터리사들의 공장 가동률은 부진하다. 이는 중저가 케미스트리 대응, 원가 구조, 무역 협상에서 국내 기업들이 열위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리튬 가격 변동 추이. 자료 출처: 광해광업공단 한국자원정보서비스
광물 가격 하락은 국내 기업들의 소재 공급망 구축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국내외 배터리 광물 자원 개발, 정제련 및 리사이클링 사업에 투자해왔다. 전방 산업 둔화로 일시적 공급 과잉 국면이나, IEA 같은 주요 기관들은 에너지 광물들의 중장기적 공급 부족을 공통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미국, 유럽 같은 주요 시장은 탈중국 공급망 요구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소재 내재화는 반드시 지속되어야 함에도, 광물 가격 폭락으로 당장의 수익성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도 회의적인 시각에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정책 변동성도 국내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 중국을 경계하는 의도는 분명하나, 해석과 적용에는 변수가 많다. 먼저 국내 기업들도 전구체, 흑연, 분리막 등 일부 소재는 중국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미국 Ford(포드)-CATL 배터리 공장이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승인을 받고, 중국 배터리 및 소재 기업들의 유럽 진출이 늘어나는 등 중국 기업들의 규제 우회 시도는 늘어나고 있다.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 조항 중 하나로, 자동차나 배터리, 태양광 등의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할 경우 해당 기업에 세액 공제 혜택을 지급하는 내용.
| 이차전지 산업의 생존과 재도약 위해 국가적 관심과 지원 필요
국내 이차전지 산업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돋보인다. 중국은 이차전지 산업 초기 단계부터 보조금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육성하고, 기술과 원가 우위를 확보했다. 또한 지금은 광물 정제련 밸류체인 장악을 넘어 국가 정책 하에 국내외 광산 자원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소재 공급망’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에 반영 중이다. 공급망 경쟁력이 확충될 때까지 관세 등으로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는 한편, 세액공제 등으로 자국 내 이차전지 생태계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산업의 생존과 성장에는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중요하다. 다시 전기차 호황이 올 때에도, 다른 전방산업이 부상할 때도 우리 이차전지 기업들이 주인공이 되려면 국내 정책도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국내외 투자, 기술과 인력 육성 지원은 물론, 변동성이 큰 통상 환경에도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책적 관심을 기반으로, 우리 기업들이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서는 리더로,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는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