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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포스코명장 인터뷰②] 서광일 명장, 끊임없는 도전·열정으로 설비와 일심동체··· 정비기술 최고봉에 오르다

[2017 포스코명장 인터뷰②] 서광일 명장, 끊임없는 도전·열정으로 설비와 일심동체··· 정비기술 최고봉에 오르다

2017/08/03

서광일 명장은··· 1982년 4월 1일 입사한 서광일 포스코명장은 지난 35년간 타고난 성실성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전기강판 조업 기술력을 점프업 시킨 냉간압연제어 분야 최고권위자다. 압연기능장, 기계정비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한 그는 냉간·전기강판 압연기의 연속

 

운명처럼 만난 수재와 포스코

 

꾸준한 배움, 설비와의 교감, 동료들과의 소통. 서광일 명장이 들려주는 이른바 ‘명장의 비결’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조건들을 한데 모아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는 무려 35년 동안 이 작업을 묵묵히,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해냈다.

 

지금이야 ‘압연통(냉간압연설비 전문가)’과 ‘아우름의 귀재’로 불리지만, 서광일 명장도 한때는 천방지축 개구쟁이였다. 유달리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랜 시간 동안 투병생활에 들어가자 집안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가족부양이라는 책임감으로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아버지의 힘겨운 발걸음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서광일 명장은 결심했다. 이 악물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정말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어요. 부모님이 공부하는 제 모습을 좋아하셨어요. 저 또한 출세해서 부모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요. 절박함이 있어서인지 중학교 때까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제 인생을 뒤바꾼 아주 중요한 선택을 했어요.”

 

부모님은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까지 보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서광일 명장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얼른 돈 벌어서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모시고 싶었던 것. 그의 효심을 짐작한 담임선생도 포철공고를 추천했다.

 

“당시 포철공고에는 전교 석차 10% 안에 들어야 입학원서를 낼 수 있었으며, 졸업 후에는 포항제철에 취업할 수도 있었어요. 부모님 몰래 원서를 냈는데, 입학이 확정된 후 부모님도 마음을 돌리셨어요. 포스코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된 순간이었죠.”(웃음)

 

▶ (왼쪽) 1985년 10월 어머니, 남동생과 집 앞 마당에서 함께 가족사진을 촬영중인 서광일 명장(오른쪽).

(오른쪽) 1995년 네 식구가 보경사 계곡으로 나들이했던 추억

 

‘실전적 트레이닝’으로 ‘명장의 밑바탕’ 만들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1982년 4월 1일부로 꿈에 그리던 포스코에 입사했다. 그의 첫 부서는 포항제철소 냉연전강정비과였다. 서광일 명장의 35년 동반자가 된 냉간압연정비 계통과의 첫 대면이었다.

 

입사의 달콤함도 잠시, 혹독한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냉간압연정비 근육’을 조금씩 키워 가던 중에 각 설비의 제어 블록 다이어그램(Block Diagram)을 외워서 그릴 수 있게 하라는 상사의 엄명이 떨어졌다.

 

“요즘은 전기계장제어설비가 모두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또는 ‘DCS(Distributed Control System)’로 구성된 디지털 제어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아날로그 제어 방식을 쓰고 있었죠. 그렇다 보니 각 설비를 완전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냉간압연정비계장이 “A3 용지 25매 분량의 각 설비 제어 블록 다이어그램을 한 달 안에 모두 외워서 그리라”는 과제를 주셨어요. 불가능해 보였지만 결국은 누구보다 빨리 해냈습니다.

 

▶ 1982년 4월, 냉간압연정비계장이 A3 용지 25매 분량에 달하는 설비 제어 블록 다이어그램(Block Diagram)을 한 달 내로 외워서 그리라는 명을 내려 서광일 명장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노트에 그리고 또 그렸다. 사진은 당시 설비 제어 블록 다이어그램을 암기하기 위해 노트에 써내려간 흔적들.

 

또 어떤 사안을 보고할 때면 무조건 ‘현장에 가 봤어?’라는 말로 계장님은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모든 일은 현장에서 일어나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원칙을 강조하셨던 것이죠. 그때부터 모든 일은 반드시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하나하나가 당시 저를 많이 힘들게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혹독한 트레이닝이 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서광일 명장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몸소 증명했다. 업무 돌입 직후부터 자잘한 성과를 내더니 입사 3년차인 1985년 10월, 냉연조질공장 일상점검 중 모터 권선 부분의 단선을 조기 발견해 대형 설비 사고를 예방했다.

 

“이를 계기로 냉연압연기의 메인 모터를 전량 정밀 진단했습니다. 그 결과 모터 5개소에서 동일 불량을 발견해 사전에 수리했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입사 후 최초로 제철소장 표창을 받았는데, 첫 표창이어서인지 정말 뿌듯했습니다. 이때의 경험과 보람으로 인해 한층 더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죠.”

 

▶ 1985년 12월 7일, 서광일 명장은 냉연조질공장 E.C.L. Pay off Reel D.C 모터 점검 중 Armature coil 단선을 조기에 발견, 신속 복구 조치해 설비사고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포항제철소장 표창을 받았다.

 

TFT 활동에서 얻은 ‘강철 같은 자신감’

 

입사 초기의 뜻하지 않은 업무성과가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중요한 업무도 하나 둘 그에게 주어졌다. 1995년 3월 포항 1냉연공장 2차 합리화시 일본에서 도입한 압연 설비 컨트롤 업무가 대표적이다.

 

“새로 들여온 설비를 하루빨리 파악해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라는 특명이 떨어졌어요. 그러려면 일본 슈퍼바이저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업무 외 시간을 모두 일본어 공부에 쏟아부었습니다. 덕분에 슈퍼바이저와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실력을 갖추게 됐고, 누구보다 설비를 빠르게 파악하고 능숙히 다룰 수 있었습니다.”

 

1997년 2월부터 2년간 1냉연공장 신예화 TFT(Task Force Team)의 일원으로 참여한 일도 그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설비 구입사양 결정, 공사 참여, 시운전 등 신예화 전반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또한 이때의 구슬땀으로 인해 당시 전 세계 어느 제철소에서도 도달하지 못한 분당 처리속도인 2,150mpm 설비를 갖출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피곤할 법도 하건만, ‘성공 관성력’을 받은 서광일 명장은 기쁜 마음으로 질주했다. 이번 임무는 새로운 설비가 들어선 중국 장가항불수강이었다. 이곳의 설비는 준공 직후부터 크고 작은 트러블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결국 서광일 명장이 트러블 해결 기술지원 업무를 맡았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소둔산세라인의 POR(Pay Off Reel)에서 발생한 진동이었다. 그는 자체적으로 베이스, 프레임 등을 보강했으나 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객관적이고 세심한 분석을 해야 할 차례. 서광일 명장은 기어코 문제 발생 원인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작동유에 공기가 흡입돼 진동이 일어났던 것. 곧바로 공기 제거 작업(Air vent)을 진행했고, 진동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의 꼼꼼함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것이다.

 

서광일 명장은 2001년 10월, 1냉연공장 DRM(Double Reversing Mill) 라인 신설 TFT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설비 계획 및 설계부터 설치 공사까지 순조롭게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시운전.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 슈퍼바이저들이 가장 얇은 박판인 0.05mm 압연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일주일 동안 TFT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댔다. 여러 밤을 하얗게 보내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맞춤형 해결책을 모색했다.

 

실마리는 쉽사리 나오지 않고 피로는 하루하루 더해가던 그때, 서광일 명장의 머리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일본 슈퍼바이저들이 롤 갭(Roll Gap)을 활용해 철판을 눌러서 얇게 펴는 압하 압연 방식을 고집했던 것. 하지만 서광일 명장은 압하 압연과 철판을 당겨서 두께를 얇게 만드는 연신 압연을 함께 활용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구상은 곧바로 설비 프로그램에 반영됐고, 보기 좋게 성공을 거뒀다. 포스코 압연 기술의 우수성을 압연 선진국인 일본에 생생히 알린 이 일로 인해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 1987년 9월 ‘용접기 연수’를 받은 서광일 명장(오른쪽)이 교육생들과 일본 전원사(電源社)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압연 명장’ 만든 숨은 공신들

 

1냉연공장의 정비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서광일 명장은 2006년 5월 2일부터 전기강판압연정비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무렵 그의 역량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다. 마치 감자를 캐듯, 서광일 명장은 굵직굵직한 성과를 연이어 캐냈다.

 

먼저 2006년 7월에는 1냉간압연공정(ZRM) 막바지 시운전 시 압연 현상을 분석하여 초기 압하량을 조절하는 롤 포스 모드(Roll Force Mode)를 개발함으로써 연이어 발생되는 판파단* 문제를 해결했다. 롤 포스는 압연할 때 철판에 가하는 롤의 힘을 뜻하는데, 기존 압연 설비에서 작동을 시작하면 입력한 롤 포스가 절반밖에 가해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 과정 중 판파단이 발생했던 것이다. 서광일 명장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처음 입력한 롤 포스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자동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이 바로 롤 포스 모드. 서광일 명장은 이를 통해 1냉간압연공정의 판파단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했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진행된 2소둔산세공정 용접기도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2소둔산세공정에 들어간 용접기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배치된 최신예 장비라 하나부터 열까지, 용접기 개선 작업 일체를 서광일 명장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용접기 개선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정밀도 조절이다. 전단 코일과 후단 코일을 마치 하나인 듯 용접해야 하기에, 용접에 관여하는 수십 개 장비들의 정밀도는 오차 범위 0.01mm 이내여야 했다.

 

서광일 명장은 장비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마침내 모든 장비의 정밀도를 오차 범위 이내로 끌어올렸다. 이후 용접기에서 나오는 레이저의 양과 속도의 영점을 잡는 작업이 이어졌고, 용접 후 후열 단계까지 손봄으로써 끝내 완벽한 용접 환경을 완성시켰다.

 

그런가 하면 용접기 개선과 동시 진행한 전기강판 3공장 2냉간압연공정 시운전 시에는 고가인 대형롤(Backing Bearing)을 단 한 번도 교환하지 않고 첫 코일 품질을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선진국 슈퍼바이저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포스코의 힘으로 시운전 성공을 이끌어야 했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던 작업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2월에는 3냉간압연공정 시운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손으로 해낸 쾌거를 이뤘다. 이전에는 단 한차례도 압연해 보지 않았던 최고급 무방향성 전기강판(Hyper NO)을 압연하는 공정이었기에, 장비 설정과 입력값을 최적의 상태로 세팅하는 작업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한 반복됐다. 끝없는 시도 끝에 마침내 최고급 무방향성 전기강판이 멋진 모습으로 압연돼 나왔을 때, 서광일 명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엄청난 성취감과 희열을 맛봤다. 이렇듯 서광일 명장에게는 지금까지 진행한 과업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계발의 촉매제이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이다.

 

“35년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매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성취감을 맛봤죠. 회사는 여러 방법을 통해 이 같은 ‘불철주야 노력’을 기꺼이 인정해 줬습니다. 2011년 4월 1일,모범사원 회장 표창을, 2013년 12월 16일에는 올해의 정비 명인에 선정되어 제철소장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영광의 이면에는 ‘배움’과 ‘설비’, ‘동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와의 지속적인 교감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소싯적 우등생답게 서광일 명장은 공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앞서 살펴본 일본어 독학은 약과, 그의 공부의 진면목은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한 압연정비에 그치지 않고, 압연 조업 원리 자체를 꾸준히 익혀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서광일 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순히 정비에만 신경 쓴다면 현상 유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품 고급화 및 다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압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다시 말해 근본적인 기초 지식을 쌓아야만 응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전기정비로 입사했지만 기계 설비를 함께 익혔습니다. 더 나아가 전기와 기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탄생한 압연 조업을 알기 위해 압연 운전실 동료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었습니다. 또한 실시간 형상 모니터를 꼼꼼히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압연 조업을 익혔죠.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다양한 업무를 두루 맡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가 하면 서광일 명장은 단지 소리만 듣고도 설비의 정상 작동 여부를 구분할 수 있다. 이는 평소 설비에 관심을 보인 결과다. 설비 트랜드 분석시스템(IBA)을 익히고 압연기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등 설비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때의 상황을 ‘오감을 활용해’ 파악해 두면, 비정상적인 경우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서광일 명장은 남다른 애정을 쏟음으로써 ‘무생물인 설비와의 아름다운 교감’이라는 영화적 상상을 실현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설비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사람 중 하나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우선순위에 둬야 할 업무는 무엇인지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런 자발적 움직임은 동료들에게 커다란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한다.

 

“문제를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서광일 명장의 마지막 성공 키워드는 ‘동료’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운전과 정비, 기계와 전기의 총체적인 움직임 가운데 일어나는 만큼 동료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이 절실하다 서광일 명장. 그는 자유로운 토론으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활동, 즉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가치를 일찍이 깨닫고 실천해왔다.

 

▶ 선후배 간의 협력과 소통이 스스로의 성장의 지름길이라 말하는 서광일 명장(오른쪽). 그는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교감을 통해 신뢰를 얻고 매사 솔선수범하는 태도로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더 나은 포스코’를 향한 우직한 발걸음

 

서광일 명장을 움직이게 하는 가치관은 단 한 글자다. 바로 ‘참’이다. 그는 ‘참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일할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심지어 놀 때도 ‘진짜 서광일’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면모는 호감을 이끌어 내고, 이 호감은 다시 그를 참으로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이유다.

 

참을 향한 서광일 명장의 발걸음은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으니 ‘적당히’, ‘대충대충’이다.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그 대가가 두세 배의 고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비로소 문제가 온전히 해결됩니다. 만약 설비의 아주 작은 문제점을 ‘적당히 정신’으로 모른 척 넘어가면, 그 문제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더 큰 설비 장애를 일으키고 맙니다. 만약 곧바로 원인을 제거하기 힘들다면,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 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자신의 손으로 없앨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가치관의 연장선상에서, 서광일 명장은 “현장에서 지키도록 약속된 모든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듯, 원칙을 지켜야 ‘업무 효율성’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동료들과의 협력과 소통은 스스로 성장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동료들을 통해 모르는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쉽고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최고의 공로자이죠. 힘든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앞장서서 도와주고 힘을 보태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저 자신도 있는 것이죠.”

 

 

“원칙은 당장 지키기에는 귀찮고 비효율적인 요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원인을 따져보면, 십중팔구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우직한 소처럼 한 발 한 발 내디뎌서 멀리 나아가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껏 걸어온 길, 수많은 동료의 성원 덕택에 과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서광일 명장. 그는 아직도 현장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배고픈 하이애나다. 첫 번째는 ‘더 안전한 현장’이다. 안전한 설비 제어를 구현함으로써 현장 동료들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해 주려 한다. 나머지 하나는 ‘더 밝은 미래’다. 지금까지 축적한 지식과 경험,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를 정리해 후배들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다양한 끼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이 모든 부서에 걸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앞으로 포스코를 이끌어 갈 것으로 믿습니다.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서로의 다양함을 존중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앞으로의 50년, 100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포스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내일이 더 행복한 회사의 포스코맨이어서 나날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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