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 보기 |
이미지 크게 보기 |
가난했던 축구소년, 포스코 입사로 꿈에 한걸음 가까워지다!
무언가에 항상 열중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꾸밈없는 순수함, 열정과 집중에서 우러나오는 고유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늘 바쁜 걸음으로 현장을 누비는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 일도 부지기수다. 필자를 만난 이날도 현장에서 막 돌아와 약간은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40년 동안 오직 한 길을 걸어온 명장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초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결석을 했을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어요. 그런 제가 특별히 잘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축구였어요. 전국대회 준우승에 일익을 담당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죠. 그런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렵기도 해서 결국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아하던 축구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부잣집 친구가 버린 고물 라디오를 가져다 새것으로 고쳐낸 작은 사건이 그에게 새로운 꿈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누군가 버린 물건을 새것처럼, 오히려 더 좋은 물건으로 고쳐내어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매우 기뻤다고 했다. "그 시절 TV는 상상도 못했고, 라디오가 최고 인기를 누릴 때였어요. 옆집 친구가 텔레비전을 샀다며 고장 난 라디오를 버리더군요. 친구 몰래 쓰레기통에서 라디오를 주어와 이것저것 조이다 보니 거짓말처럼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망가진 커버를 물감으로 쓱쓱 칠해서 완전히 새것으로 고쳐놓은 뒤 엄마가 밭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틀어놨죠."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란다. "돈도 없는데 너그 아부지는 쓸데없는데 돈 쓰셧댜!" 아버지가 라디오를 사준 걸로 착각하신 것이다. "엄마! 내가 연복이 집에서 버리는 걸 주어다 싸악 고쳤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도리어 화를 내셨다. "기술자가 되는 것보다 공부 많이 해서 훌륭한 의사나, 박사가 돼야 우리집이 살지 이놈아!" 말씀은 그리하셨지만 라디오 음악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에게는 더없이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웃음은 소년에게 또 다른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인정을 받는 사람에게는 성실함을 넘어 그 일에 대한 진심 어린 자긍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단지 직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강한 믿음도 느낄 수 있다. 남태규 명장에게서도 역시 그런 믿음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생들을 학교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빨리 취직해 돈을 벌 수 있는 포철공고에 입학했어요. 더구나 포철공고는 학업성적이 우수하면 포항제철에 입사도 할 수 있는 데다, 자격증이 있으면 산업체특례보충역으로 병역까지 면제받는 혜택이 있었죠. 제가 또 호기심이 많아서 기계를 분해했다 조립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요."
1978년 1월 20일, 포철공고를 졸업하고서 곧바로 포스코에 입사해 제강정비과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
코피가 터지도록 치열했던 설비와의 씨름··· 개선 의지를 불태우다!
포스코 입사는 남태규 명장의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원하던 직장에 취직함으로써 꿈도 이루었고, 자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길도 찾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사한 남태규 명장은 결혼해 1남 2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그런데 입사 5년차였을 때,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제강공장 핵심설비인 전로에서 취련 중인 용강의 온도와 탄소(C), 용강샘플을 측정하는 서브랜스가 잦은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서브랜스가 말썽을 피울 때면 직원들은 차라리 휴가를 내고 싶다 말할 정도로 수리작업이 고됐다.
"고로공장에서 생산한 쇳물은 순수한 철이라 아무 곳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쇳물을 제강공장 전로에 넣고 온도를 1700도까지 올려 고압의 산소, 부원료, 합금철 등을 넣어가면서 최종 제품에 맞게 강의 성분을 조정하죠. 이 일련의 과정을 취련이라고 합니다. 80% 정도 취련이 진행됐을 때 서브랜스는 전로 안 용강 속으로 들어가 온도와 탄소(C)량을 측정해 운전실 컴퓨터로 보내줍니다. 그 데이터를 보고 운전자는 취련을 더 할지, 완료할지를 결정하죠. 이것이 첫 번째 역할이라면 두 번째로는 취련이 끝난 전로 속 용강으로 서브랜스가 한 번 더 들어가 온도, 산소량을 측정해 그 값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데요. 온도와 성분은 후공정인 탈가스설비와 승온설비를 거쳐 연주슬라브 브룸 생산 조업에 활용하는 데 쓰입니다. 결국 서브랜스는 용강의 최종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인 셈이죠. 서브랜스가 작동이 잘 안되거나 잘못된 측정값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면 엄청난 손실이 오는 것이죠."
전로 안 용강 속으로 1m 정도 넣어야 하는 서브랜스에는 용강의 상태를 측정하는 센서가 부착된 길이 2m가량의 프로브(probe)를 장착한다. 일회용인 프로브는 1700도 고온의 전로 용강 속에서 5초 동안 머물면서 측정한 온도, 탄소량, 산소량을 서브랜스 파이프 안 케이블을 통해 운전실 PC화면으로 송출한다. 문제는 서브랜스가 전로 상단부까지 22m, 전로 속에서 1m를 정확하게 진입해야 하는데, 프로브를 서브랜스에 장착할 때마다 서브랜스 이동거리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설비 담당자가 매번 정확한 위치를 찾아 정지 혹은 진입길이를 조정해야 했다.
그런데 서브랜스가 전로에 들어가는 길이를 조정하는 곳이 바로 전로 상단부에서 20m가량 더 높은 7층 높이의 제강공장 가장 꼭대기에 있었던 것. 게다가 승하강기가 작동되지 않으면 3시간가량 이곳을 수십 번 오르내리며 서브랜스가 전로 내에 들어가는 길이를 세팅할 수밖에 없는 없는 환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브랜스 수리를 마치고 집에 가면 코피를 흘리고 다리에 쥐가 나 그대로 쓰려져 잠들곤 했죠. 어떤 날은 자다가 잠꼬대를 하도 심하게 해서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일이 어렵다고 괴로워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남태규 명장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직 한 길로만 달려온 남태규 명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중력을 지녔다. 그런 그의 재능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서브랜스 설비구조도와 취급설명서를 수도 없이 들여다보던 어느 날, 남태규 명장은 설비 개선에 대한 확신이 섰다고 한다. 온 신경을 설비 연구에만 쏟다 보니, 드디어 ‘이거다’ 싶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기존 서브랜스에서 오차가 많이 발생한 스트라이크형 터치바 대신에 캠박스에서 서브랜스 이동거리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엔코더형 디지털 위치 검출기를 도입해 설치했다. 그 결과 전로 내 서브랜스 이동거리가 자동으로 기준위치를 운전자가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정보를 제공해주고, 프로브 교체 때마다 서브랜스 이동거리 오차를 제로화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남태규 명장은 서브랜스 기준위치를 검출하는 스트라이크형 터치바가 서브랜스 작동 시 미세하게 움직여 간격이 벌어지자, 물체가 근접하면 신호를 받는 무접점 방식으로 오차를 제로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러나 설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할 책임이 있던 상사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잘 돌아가는 설비에 손대지 마라! 열과 분진도 많고, 검증되지 않은 방식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일본 사람들이 완벽하게 해놓았는데 괜히 건드려서 공장 세우지 말고. 내가 처음 공사할 때부터 봤는데 그 이상 좋은 게 없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었다고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수없는 고민과 연구에 밤잠을 지샜던 그를 하늘도 도운 걸까. 산업자동화 중소기업박람회에 발걸음 한 남 명장에게 창고자동화 시뮬레이터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 시작점에서 목표지점까지 장애물을 자유롭게 피해 가는 자동화설비를 눈여겨 본 남 명장은 이를 제강공장 서브랜스에 접목하기에 이른다. 그 뒤로 무려 다섯 번이나 업그레이드한 검토서를 내민 끝에, 남태규 명장은 겨우 상사를 설득할 수 있었다.
"걱정도 많이 됐지요. ‘괜한 일을 시작한 건 아닌가’ 겁도 나고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그럴수록 ‘이 설비들이 나의 심장이자, 동맥이다’라는 생각으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한 남태규 명장. 확신하지 못하는 상사를 끊임없이 설득해 마침내 설비 개선의 기회를 얻어낸 것이다. 포스코 서브랜스에 적합한 개선포인트를 도출하고, 기준점을 검출하는 리밋스위치를 스트라이크형 터치바(터치형 아날로그 타입)에서 무접점 방식(비접촉식 디지털 타입)으로 개발한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남태규 명장은 결국 모두가 꿈꾸던 서브랜스 리밋스위치 자동조절장치 개발에 성공했다.
서브랜스 리밋스위치 자동조철장치 개발로 3시간 동안 3명이 작업해야 했던 것을 2명이 10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용강성분의 측정 성공률은 87%에서 95%로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최종 제품이 원하는 성분의 용강을 생산하고 불필요한 원료 투입을 줄여 후공정에 정확한 데이터를 전달함으로써 원가절감 및 조업시간 단축의 성과를 거뒀다.
실수의 절박함을 발판 삼아, 핵심기술 역수출의 성공신화를 쓰다!
제철소에서 쇳물이 유출되는 것만큼 큰 사고도 없을 것이다. 남태규 명장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7년. 용강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1300톤가량 되는 전로를 360도 회전시키거나 기울이는 전로경동장치가 작동을 안 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일본 메이커의 전로경동장치였다. 특히 전로경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더 이상 용강도 생산할 수 없고, 오동작을 일으키면 용강유출 등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4개의 모터와 감속기, 인버터 등으로 구성된 전로경동장치는 사용 초기에는 기본 설계대로 그 기능을 잘 유지했다. 그러나 2000회 이상 용강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전로 안쪽 면의 연와침식과 전로 입구에 슬래그가 붙으면서 전로가 똑바로 서는 오뚝이 역할의 상실로 인해 전로가 기울어지면서 용강이 유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전로경동설비 모터를 가동하려면 전자접촉기와 고압차단기를 필수로 사용해야 하는 데,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 수명도 짧고 단가도 비싸 부담이 많았다. 당시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남태규 명장은 일본 메이커에서 수입해온 주전자접촉기와 고압차단기를 각각 진공형무접점전자접촉기 개발 및 진공차단기 적용을 통해 국산화했으며, 국내 최초로 일자형 접촉부를 튤립형으로 개발해 원가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은 전로경동장치에 과다하게 전류가 흘러 아크가 심하게 발생했어요. 이로 인해 접촉부가 녹아 붙어서 설비장애를 유발해 2억여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죠. 이를 개선하고자 국산 진공형 접촉기 교체를 시도해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공소자 이상으로 전원을 투입하지 않은 채 현장 모터에 전류가 흘러 전로가 기울어지고 용강 유출사고가 발생했죠. 당시 14시간 동안 전로가 멈추고 15톤의 용강이 유출되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현장상황이 고려돼 징계는 면했지만, 회사에 손실을 끼쳐 암담했죠."
남태규 명장은 당시를 40년 제강정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설비 개발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강공장 설비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와 사양 및 설계기준 대비 150%로 설계·시공되어, 기초 인프라는 나무랄 것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개선하기도, 패턴 변경과 같은 개조를 하기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 온 슈퍼바이저들의 철저한 보안으로 핵심기술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남태규 명장은 서브랜스 리밋센서를 개발해 ‘제강품질’을 사로잡은 데 이어, 300톤 전로를 움직이는 거대한 설비군인 전로경동장치를 완벽하게 정비하고, 핵심부품을 국산화함으로써 ‘제강생산성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우리 고유의 기술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었어요. 절실함이 있어서인지, 그 일을 계기로 저와 동료들은 특허나 개선활동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됐죠."
당시 부원료합금철설비의 원료 투입이 운전자 임의판단으로 조작되도록 설계돼 생산 작업 시 많은 양의 원료가 손실되어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남 명장은 원료수입에서 평량, 투입까지의 패턴정립, 변경 등이 가능하도록 고유기술로 시스템을 전환해 품질편차를 줄이고 낭비를 제거했다.
이와 함께 그는 나일론 성분의 낚싯줄이 온도가 상승하면 늘어나 끊어진다는 점에서 착안해 터치바 타입의 낚싯줄 감지장치와 열선 감지장치를 고안해 화재발생 시 즉시 현장직원에게 알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다 느낀 남 명장은 화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연구에 몰입한다.
그의 지속적인 노력과 연구 끝에 현장의 중요 굴곡부, 케이블 교차지점, 케이블 접속지점, 과다 포설지점에 온도를 체크할 수 있는 실시간 모니터링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상 징후 발견 시 사전 경보장치와 온도상승 내용을 즉각 표시해 조치가 가능토록 했다. 이로써 양제철소 내에서는 사후조치보다 사전예방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인식이 자연스레 전파된 것이다.
이미지 크게 보기 |
▶ 이구택 회장이 2007년 4월 1제강공장 전기실과 컬버트, 제강전로 운전실에 구축한 제강화재방재시스템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오창관 포항제철소장, 이구택 회장, 남태규 명장, 정준양 사장. |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마음으로··· 현장에서 답을 찾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3제강공장 주전원공급용 변압기 세 대 중 두 대가 파손되는 큰 사고가 있었다. 2만 2000V를 3300V로 다운시켜 현장의 동력을 공급하는 주요 변압기가 파손돼 3제강공장 전체가 정전 사태에 빠졌고, 복구는 아무리 빨라도 2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사고 당시 전로 내부에 쇳물이 담겨있어 6시간 이상 변압기가 가동되지 않을 경우 용선이 굳어 전로경동을 불능상태로 만들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비상사태에 꾸준히 대비해온 노하우와 전기기술팀의 협조 덕분에 16시간 만에 비상 운전체제를 구축하고 최소 전류로 최대 공급을 가능케 해 정상 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얼마나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얼마나 빨리 수습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평소 화재, 폭발, 용강 유출사고에 대비한 대응시스템 마련에 신경을 쓰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죠."
언제, 어디서든 작업자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설비를 운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라는 남 명장. 모든 문제의 답을 현장에서 찾고자, 그는 오늘도 땀 흘리며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이미지 크게 보기 |
▶ 포항 2제강공장 고압전기실에서 후배들과 설비시스템 효율 향상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 남태규 명장(오른쪽). |
풍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술을 갈고닦다!
훌륭한 농부는 하늘을 탓하지 않는다. 날씨나 상황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의를 다한다. 남태규 명장 또한 그런 농부의 담담함으로 역경을 헤쳐 온 사람이다. 그는 기술을 연마하는 작업을 농부가 간절하게 풍년을 바라는 마음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농부의 애끓는 심정과 같은 마음가짐에 열정을 더하면 일이 더욱 잘 풀린단다.
‘스스로 참여하여 매일매일 개선하자’라는 생각을 모토로 한 끊임없는 노력은 이제 그의 일상이 되었다. 한창때는 휴일조차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설비에 접목시킬 신기술 동향을 살피고자 전시회, 박람회 등을 찾아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호기심의 소유자였던 명장에게 기술전시회장은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천국이었다. 하물며 야광 귀이개 하나를 보더라도, 남다른 밝기의 오토바이 전조등에도 감탄하며 ‘내가 관리하는 설비에 접목해보면 어떨까’를 고민했을 정도니 말이다.
"제가 박사는 아니지만, 좋은 기술들을 찾아다니며 벤치마킹은 얼마든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렇게 발품을 팔아 발견한 기술들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데요. 기술적으로 탄탄해지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어떤 문제를 접하든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40년간 계속된 그의 노력은 특허 15건, 우수제안 32건, 일반제안 1830건, 지식등록 156건이라는 엄청난 성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직무역량 최우수상, 제철소 제안왕, 올해의 포철인, 대한민국 품질명장, 철강기능상, 2014년 포스코 정비명인에 이어 지금 이 순간 포스코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 것이다.
이미지 크게 보기 |
이미지 크게 보기 |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업무에 대한 지식 습득과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해온 남태규 명장. 그가 보유한 수상패, 표창, 특허증서 등이 그의 업적을 대신 말해준다. |
꿈에서 취미로··· 여전히 변함없는 명장의 공사랑
명장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시골 소년의 꿈이었던 축구는 이제 멋진 취미생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축구를 사랑한다.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늘 일에 몰두해 있는 그에게 유일한 취미활동은 바로 축구다.
"축구공은 저의 오랜 벗이에요. 요즘도 축구동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후배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곤 합니다."
그런 명장이 3년 전부터 새롭게 빠진 공이 있다고 한다. 바로 탁구다. 퇴근 후에도 피곤함을 안고 탁구장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 열정을 불태울 정도다. 공격은 좀 부족하지만 수비만큼은 누구에게도 자신 있다는 남태규 명장. 얼마 전 열린 제철소 소통올림픽 때도 후배들을 제치고 제강부 대표로 출전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단다. 아마 일하며 배운 악바리 정신이 탁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닐까.
이미지 크게 보기 |
▶ 1994년 아톰즈배 조기회 축구대회의 독수리팀 대 백호팀 결승전에 참가한 남태규 명장 |
언제나 최고를 향해 발로, 머리로, 심장으로 뛰는 ‘따거’
그에게는 24시간이 모자란 듯하다. 연구를 위한 투자에는 돈과 시간 어느 것 하나 아낌이 없지만, 지난 20년간 제대로 된 가족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기에 가족들은 늘 불만이라고 한다.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가족들에게는 비록 원성을 듣는 가장이지만, 회사에서만큼은 든든한 큰형님으로 통한다.
"후배들이 저를 ‘따꺼’라고 부릅니다. 모든 부분에 최고를 향해 발로, 머리로, 심장으로 뛰어다니는 ‘따꺼’라나요."(웃음)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는 끝까지 달려드는 악바리 명장. 하지만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과도 언제나 스스럼없이 토론하고 함께 땀 흘리며 맥주 한 잔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큰형님이다.
이미지 크게 보기 |
명장으로서의 삶, 후배 양성에 모든 열정 쏟고 싶어···
"정비를 담당하는 기술인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도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후배 직원들이 입사 10년 내에 모두 정비 명인이 될 수 있도록 제가 보유한 기술들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파하는 일이야말로 포스코의 경쟁력 향상에 큰 힘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죠."
이미지 크게 보기 |
화려한 서커스처럼 한순간에 빛나는 인생이 아니라, 깊은 산골짜기에 피어난 소담스러운 들꽃처럼 소박하고 잔잔한 그의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산과 들의 물과 공기, 바람과 벌과 나비들이 모두 함께 모여 한 떨기 들꽃을 피워 내는 데 이바지하듯이, 명장을 둘러싼 수많은 인연의 힘이 모두 함께 힘을 다하여 그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우리가 명장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술의 뛰어남과 성공의 화려함만이 아니다. 바로 이 세상의 수많은 인연들과 조화롭게 관계 맺는 법,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오래오래 긍지를 느끼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우리가 명장에게서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