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2015년, 처음 포스코명장 제도를 도입한 이래로 2024년까지 28명의 명장이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는 조금 특별했다. 안전관리부문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명장이 나온 것.
“보통 명장은 조업이나 정비에서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전, 그것도 공정안전관리 부문에서 명장이 나오니 사내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저도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명장 후보가 됐을 때도 조업이나 정비 쪽에서 올라오신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던 걸로 알아서 아직도 좀 실감 나지 않습니다.”
서정훈 명장에게 첫 질문으로 안전관리부문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명장이 된 의미를 물어보았다.
“다른 부문의 명장들이 모두 완성형이라면 저는 미완성, 진행형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회사 근무 경력 면에서도 저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사람이고 안전문화 역시 막 발전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저를 이 분야 롤모델로 선정한 것이라 생각하고, 안전관리에 대한 분위기 쇄신에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서정훈 명장 하면 ‘공정안전관리’, 즉 PSM(Process Safety Management)이란 단어가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공정안전관리는 일반 산업안전관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PSM은 본래 미국 제도로 우리나라에 법제화된 것은 1996년이다. 무려 27년이나 된 역사를 지닌 제도인데 유명무실하게 존재하던 중 2013년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터졌다. 당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던 직원 4명과 펌프 수리 외주업체 근로자 1명이 모두 사망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과 경찰, 벼농사와 과수농사를 짓던 인근 주민 등 1만 1000여 명이 불산 누출 여파로 검사와 치료를 받아 사회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의 여파로 정부에서 화학물질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법과 관리가 강화되고 실질적 운영이 시작됐죠. 이렇게 되자 포항제철소도 PSM을 어떻게 운영할까, 깊은 고민에 빠진 겁니다.”
PSM은 4년 단위로 고용노동부가 이행상태를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등급은 최고 등급인 P부터 S, M+, M-가 있는데, 포항제철소는 S와 M+를 오락가락하는 정도의 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포항제철소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해서 잘하는 공장 한 두 곳만 심사를 받으면 전체가 잘 넘어갈 수 있는데 13개 부서 모두 개별 심사를 받아야 하니 모두가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부서끼리도 공정안전관리에 대한 경쟁 상태에 놓였다.
“제가 공정안전관리 업무를 시작한 것은 바로 심사대상을 13개 부서로 쪼개는 것부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정안전관리에 대한 자체감사를 실시해 보니 놀랍게도 그 수준이 M-였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수준인 거죠.”
서정훈 명장의 공정안전관리에 대한 기나긴 행보는 이렇게 출발했다.
“후판정비에서 혁신, 거기서 또 공정안전. 경력이 참 묘합니다.”
“우선 후판정비에서 나오게 된 경위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후판정비 업무 자체에 어떤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단지 개인적 발전을 위해 뭔가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생각과 때마침 QSS FT 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지만 평창도 평창 나름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중학교 1학년 때 겨우 전기가 들어온 두메산골이었다. 그것도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옮겨와서 세운 전봇대 덕분에 들어온 전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지극히 시골스러우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완전히 익은 그였다. 스스로도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자부했단다.
“그런데 제가 교대근무를 하면서 몇 번인가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는 시간이 바뀌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주기가 무용지물이 된 거죠. 출근하려고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한참을 잠들어버려 지각하기도 하고….”
그는 그런 상황이 용납하기 어려워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군 생활을 마치고 나온 참에 상주 근무를 하는 현장 정비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상주근무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던 그는 철강단기대 진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꿈은 꾸었는데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한번 미끄러지고 나니 이제 좀 준비가 된 것 같은데도 기회가 오질 않더군요. 그러던 중 혁신업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혁신지원그룹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서정훈 명장은 그곳에서 보다 가치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더욱 폭넓은 분야를 담을 수 있는 업무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 그는 이런 생각과 마주했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바로 안전방재그룹. 마침 그곳에는 후판공장에서 자신을 잘 이끌어줬던 선배도 있었다. 선배도 “PSM으로 와서 나 좀 도와줘!”라며 유혹 아닌 유혹을 했기에 그는 선배를 찾아가 고민을 상담하면서 결심을 굳혀 갔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행보를 말렸다.
“현장 사람들은 안전방재그룹 사람들을 좀 귀찮아하죠. 자꾸 이거 해라, 마라 하니까요. 대부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눈에는 전문성도 없어 보이니 미래도 비전도 없는 일 같이 여겨지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서정훈 명장이 생각하는 공정안전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시각을, 이 인식을 바꾸자. 현장에서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하는 부서를 현장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는 부서로 바꾸자. 그것이 바로 서정훈 명장의 다짐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PSM 관리에 관련된 실질적인 인원은 70~80명 정도였다. 제대로 된 PSM을 시작하려 하니 이들의 요구사항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정훈 명장은 공정안전관리 관련 인원을 PSM 지도사로 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면 현장에서의 기본적인 관리는 지도사가 감당할 것이고, 이들을 창구로 삼아 공장별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3주에 걸쳐서 80시간 교육을 실시해 13개 부서, 39개 공장에 걸쳐 공장별로 2~3명 정도의 PSM 지도사를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매월 PSM위원회를 열어서 시스템을 체계화해 나갔습니다.”
2014년 M-로 시작된 포항제철소의 PSM 등급은 2015년 13개 부서로 심사대상을 분할하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결과 2016년에는 13개 부서 중 3개 부서가 S등급을, 그리고 나머지 10개 부서가 M+ 등급을 받는 것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P등급 부서가 하나 탄생했고, S등급도 5개 부서로 늘어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일정대로라면 2024년, 올해 다시 등급심사를 받으면 되는데 2022년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가 생기면서 포항제철소가 신규평가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이때 어느 부서도 P등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포항제철소라면 최소한 P등급 하나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있던 P등급마저 놓쳐버렸으니…. 물론 이유는 있었습니다. 4년 주기로 차근차근 준비하던 등급심사가 중간에 치고 들어온 모양새가 됐고, 당시에는 코로나 사태로 대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로서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였어요.”
4년 주기 등급심사의 중간 지점에 받은 심사여서 준비가 미흡했다. 사실 이건 변명거리가 아니었다. 안전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1년 365일 24시간 균일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돼야 함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정안전관리 상태가 다소 들쭉날쭉한 것은 결국 관리하는 사람의 문제였다.
“PSM 지도사를 양성하기까지 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의 연속성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계속 바뀌니까요.”
해결 방법은 사람이 바뀌더라도 관리의 연속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스템화에 역량과 노력을 집중했다.
“명장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더구나 공정안전관리 분야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하고요. 집에서 좋아들 하시죠?”
“반응이 꽤 좋더군요. 사실 명장이 된 걸 계기로 가족들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아빠를,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줘서 내가 오히려 고마울 지경입니다. 참,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네요. 제게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는데요. 딸내미가 대학 수시전형 때문에 서울로 올라갈 때 제가 운전을 했는데 평소 그렇게 대화가 많은 편이 아니라 분위기가 좀 서먹했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거기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아버지’라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순간 울컥하더라니까요.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 정말 몰랐거든요.”
자식 이야기가 나오니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진다. 부모란….
“아들에게는 평소 제가 너무 엄하고, 잘 나무라는 스타일이라 관계가 퍽 좋지는 않았는데 한 번은 둘이 남해를 훑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관계가 확 좋아졌어요. 회사에서는 소통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PSM을 위한 소통창구를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가정에서의 소통은 왜 그렇게 소홀했을까, 서툴렀을까. 많이 반성 되더군요.”
철강업계 공정안전관리 분야에 대한 서정훈 명장의 또 다른 선구적 성과에는 ‘폭발위험구역 구분 및 방폭설비 선정 등 방폭설계 기술’이 있다. 기술 내용을 보면 폭발위험구역을 선정하고, 폭발반경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용을 잘 몰라 ‘사고가 났을 때 피해반경을 산출하는 건가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자 그가 손사래 친다.
흔히들 안전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조직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서정훈 명장은 말한다. ‘이제 안전은 전문기술’이라고.
많은 이들이 전문성 없음을 탓하며 외면하던 안전분야. 그러나 서정훈 명장은 안전이야말로 전문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에 알렸다. 그리고 안전분야가 제철소에서 모두가 선망하는 ‘미래가 있는 분야’라는 점도 피력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 그리고 깊이 파고드는 집념. 서정훈 명장이 지키고 있는 한 포항제철소의 공정안전이 세계 최고 제철소에 걸맞은 수준으로 자리 잡을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포스코의길, 명장의道] 포스코명장 특별인터뷰 모아보기
1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2편 : 광양제철소 제강부 조길동 명장
3편 : 포항제철소 열연부 권영국 명장
4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신승철 명장
5편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김차진 명장
6편 : 광양제철소 EIC기술부 김성남 명장
7편 : 포항제철소 후판부 이영춘 명장
8편 : 광양제철소 화성부 김제성 명장
9편 :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서광일 명장
10편 : 포항제철소 제강설비부 남태규 명장
11편 : 광양제철소 제선부 배동석 명장
12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명장
13편 : 저탄소공정연구소 한병하 명장
14편 : 광양제철소 압연설비부 김종익 명장
15편 : 광양제철소 도금부 손병근 명장
16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손광호 명장
17편 : 광양제철소 열연부 김용훈 명장
18편 : 포항제철소 STS제강부 김공영 명장
19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정규점 명장
20편 : 포항제철소 제강부 오창석 명장
21편 :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이정호 명장
22편 : 포항제철소 제선부 김수학 명장
23편 : 포항제철소 제강부 이영진 명장
24편 : 광양제철소 제강설비부 이선동 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