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나라’로 불리는 인도. 종교와 신화의 나라에 걸맞게 인도의 전통 회화는 화려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이는 종교미술과 더해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뽐내는데 지역마다 독특한 기법을 자랑하는 금속 공예 역시 인도하면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인도의 철기 문화는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에게 인도의 금속공예는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화려한 인도의 금속공예를 서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3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빌딩 숲 사이 위치한 인도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은 김양식 관장이 지난 40여 년 간 인도 각지에서 수집한 약 2000점의 인도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 인도 역사와 문화를 한국에 널리 알리고자 설립된 인도 전문 사립박물관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즐기는 인도의 정취
올해는 인도박물관 개관 8주년으로 인도의 금속공예를 주제로 한 ‘2018 인도박물관 특별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인도 벽화와 장식장 등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화려한 인도 문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벽화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이곳에서는 인도의 역사와 종교, 공예, 악기,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상설전시실을 만날 수 있다. 매년 회화, 공예, 직물 등 새로운 주제로 특별전을 진행하는 기획전시실도 2층에 있다.
인도 공예품은 인더스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최근에도 테라코타와 인장, 장신구, 화폐 등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렇게 출토되고 있는 인도 공예품이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는 것. 종교와 밀접한 인도의 공예품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금속 공예, 종교 문화를 피워내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발원한 종교의 나라다.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의 종교 발상지이기도 하며 이민족의 침입을 통해 이슬람교와 기독교 또한 유입됐다. 다양한 종교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재는 인도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 신자다.
그래서인지 전시장 곳곳에서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다양한 신상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슈나는 머리에 공작 깃털이 꽂힌 터번을 쓰고 손에는 대나무 피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락쉬미는 비슈누의 부인으로 스리(Sri)라고도 불리며, 정숙함과 덕을 표방하는 풍요, 행운의 여신이다. 보통 연화좌에 앉거나 서서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대다수의 인도인들은 힌두교의 제사라고 할 수 있는 뿌자(PUJA) 의식을 치르기 위해 집에 성소를 마련해 놓고 있다. 뿌자 예배는 신의 축복을 통해 현생과 내생에서 큰 복을 받고 궁극적인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 행하는 힌두교의 종교 의식이다. 의식을 행할 때는 주로 신상이나 성화를 모신 뒤 향을 피우고 공물을 바치며 찬송이나 기도와 같은 간단한 예배를 드리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의식에 쓰이는 등잔과 수저, 주전자와 그릇 등 대부분이 금속을 소재로 한다. 일상에서 종교를 따로 떼어 설명하기 힘든 인도인들에게 금속 공예의 전통이 깊이 박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뿌자 의식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상을 씻기는 목욕 의식과 불이 담긴 등잔을 신상 앞에서 흔드는 의식인데, 이를 위해 금속으로 된 다양한 형태의 등잔과 종이 제작되었다.
전시관 중앙에 위치한 유리 탁자 안에는 각각의 크기로 만들어진 등잔과 종 등 공예품을 볼 수 있었다. 작은 크기의 등잔은 주로 움푹 파인 곳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꼬아 불을 밝히는 방식으로 직접 보면 문양이 매우 화려한 편이다.
┃현재진행형인 전통 기법 도크라
인도의 금속공예는 도크라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크라 기법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상용된 인도 전통 금속 공예기법으로 ‘로스트 왁스(LOST-WAX)’기법으로도 불린다.
점토로 만든 형태 위에 왁스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점토를 입혀 불에 구우면 왁스가 녹아 흘러나온다. 그 후 구멍에 금속을 부으면 원하는 형태가 나오는 방식이다. 점토로 거푸집을 만들어 금속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시 중인 인도 공예품도 대부분 도크라 방식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공예품인 모헨조다로의 ‘춤추는 소녀상’ 역시 이 기법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인 벵골, 바하르, 오리사 주에서 시작된 도크라 기법은 아직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이 기법은 중국, 이집트, 말레이시아 등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인도의 철기문화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미 널리 알려진 가야 수로왕과 허항후의 설화는 가야국이 인도 철기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근거로 쓰인다. 허황후가 바로 인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수로왕과 허황후의 결혼은 당시로선 이례적인 국제결혼으로 가야국이 바다를 통해 국제교류를 활발히 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당시 유입된 인도의 앞선 철기문화가 가야의 국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인도인들이 금속 장신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인도에서 일찍부터 다양한 금속을 소재로 한 공예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지하자원 덕분이다. 앞선 기술력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물론 장신구를 만드는데도 활용됐다. 인도 사람들은 예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금속 장신구를 즐겼다. 종교 의식 또는 사회적 의례를 진행할 때도 금속으로 만든 귀걸이나 목걸이 등 장신구를 착용했다.
전시된 공예품 중 관람객의 눈길을 가장 오래 잡아두는 것 역시 장신구다. 장신구는 흙이나 돌로 만든 것부터 금, 은, 동과 갖가지 보석으로 만든 것까지 다양하지만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을 최고로 여겼다. 화려함에 시선을 뺏겨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신구에 새겨진 인도인의 섬세한 손길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인들의 장신구 사랑은 그 역사가 길다. 아직도 인도인들은 3~5세 사이 어린아이들에게 금 귀걸이를 달아주면 몸이 건강해지고 힘이 세지며 모든 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도 여성들은 금속으로 된 장신구의 장식적 효과와 더불어 인체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체 각 부위에 장신구를 착용한다고 한다.
┃생활 속에 스며든 금속 공예
인도의 가정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 또한 다양한 금속공예품이 활용되었다. 유리나 도자기로 된 용기를 사용하는 유럽이나 중동과는 달리 인도인들은 대부분의 생활 용기를 금속으로 제작해 왔다. 실제로 본 인도 생활 용기는 화려한 색상과 패턴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느껴졌다.
금속으로 제작된 가장 흔한 용기는 물을 담는 금속 항아리다. 주로 동이나 구리, 철물 등으로 만들어진 크기가 큰 물통은 주둥이가 있고 바닥이 편평하다. 신상을 목욕시키기 위한 주전자나 기도 의식과 관련된 용기들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만들어진다.
인도인들은 문이나 창문에 금속으로 인물이나 동물을 형상화해 건축 부자재와 가구 장식하는 것을 즐긴다. 섬세한 금속 공예품은 장식적인 효과와 더불어 짐승의 침입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고 한다. 온갖 동물들이 금속으로 형상화된 모습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인도 금속공예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멀게만 느껴지는 인도의 문화를 서울 한복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인도박물관에서는 금속공예 외에도 독특한 염색 기법과 아름다운 자수가 놓인 섬유 공예품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인도 전통 문양 손수건 만들기, 인도 전통 헤나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교육을 통해 직접 인도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