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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금 이상의 합금’ 고엔트로피 합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합금 이상의 합금’ 고엔트로피 합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오늘날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다양한 금속의 모습.
우리들은 ‘손쓴사람(homo habilis)’의 뒤를 따라 나왔으며, 거칠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때로 도전하며 문명을 일구어 왔다. 높은 빌딩 숲, 그 사이를 메운 자동차와 긴 다리를 건너는 열차, 하늘에 흰 꼬리를 달고 지나가는 비행기 등 오늘날 초거대도시의 모습은 인류가 만들어 온 문명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도구의 사용과 발달은 산업 생산력 증대를 이끌었으며 사회 규모의 확장과 맞물려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런 도구의 유용성에 대해 재료는 근본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그 중요성으로 문명 발전의 시대를 구분 짓는 잣대가 되고 있다.

우리가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는 나무와 풀, 그리고 돌 등이 있으며 주위에서 쓰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혹은 보다 더 흔하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나 도구들을 만나게 된다. 금속은 얻는 과정이 복잡하고 슬기로운 불의 사용이 필요하여 그 쓰임이 다른 재료들 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금속은 다루는 방법에 따라 강하면서도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 오늘날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철은 지구의 표면 여러 곳에 폭넓게 분포하므로 원료에 접근이 쉽고, 비교적 간단한 과정을 통하여 성질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어 금속재료 가운데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철강의 생산량과 소비량은 한 나라의 발전상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l 전위라는 결함, 금속을 새롭게 만들다

가동 중인 공장의 모습. 어디서나 금속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은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작은 장난감 조각들을 조립하여 큰 형태를 만드는 놀이를 자주 한다. 이와 같이, 많은 고체는 몇 개의 금속원자들로 이루어진 정육면체 등과 같은 대칭성을 갖는 기본 모양이 3차원 공간을 되풀이해서 채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를 결정구조라고 한다.

금속의 결정구조에서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다른 고체에서의 상호작용 크기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결정구조는 보통 완벽하지 못하고 규칙에서 벗어나는 여러 가지의 결함을 포함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기계적 성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위(dislocation)라고 부르는 결함이 있다.

전위에서는 원자의 빈 공간이 나란히 서서 기다란 선을 만들게 된다. 금속을 두드리고 굽히거나 늘려서 모양을 잡는 것은 금속 내에 이들 전위를 새로 만들고 이동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금속원자들은 상호작용이 약한 대신 기존의 원자 사이의 결합을 끊어내고 새로 만드는 과정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금속재료는 외부에서 힘을 주어 전위를 이동시켜서 안정한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소금 등 다른 고체들은 단단하지만 외부의 충격에 쉽게 부서지는 성질을 갖고 있어 형태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금속학자들의 꿈은 전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

금속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다양한 금속이 탄생했다.
금속학자들의 오랜 꿈은 보다 강하면서도 부서지지 않으며 많이 늘일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바탕이 되는 생각은 ‘재료 내에서 전위의 이동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이다.

금속 재료는 보통 두 가지 이상의 원자를 서로 섞어서 합금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의 원소들의 함량 비율과 제조 공정에서의 조건에 따라 다른 성질을 띠게 된다.

포스코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기가스틸은 전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대칭이 되는 결정구조를 갖는 트위닝(twinning)을 일으키거나 기존의 결정구조가 다른 결정구조로 바뀌면서 변형이 일어나도록 합금 설계와 공정 개발을 한 고강도강으로서 현재의 최첨단 금속재료라고 할 수 있다.

고엔트로피 합금, 금속학의 상식을 넘다

공장 근무자들이 금속 업무에 관해 논의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금속재료의 무대는 아직 이어지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으며 금속학자의 연출도 보다 세련되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금속학연구에서 최근 이루어진 두 가지 성과를 말하고자 한다. 먼저 고엔트로피 합금이 있다.

전통적으로 금속 재료는 요구되는 성질을 따라 으뜸이 되는 원소에 두세 가지의 보조 원소들을 섞어서 합금을 개발하고 사용하여 왔다. 이와 달리, 고엔트로피 합금은 특별한 으뜸 원소 없이 다섯 가지 이상의 원소를 같거나 비슷한 비율이 되도록 만들게 된다. 이때 가능한 합금의 종류는 산술적으로 무한에 가까우며 이미 극저온 특성이 우수한 합금, 부식에 우수한 합금, 기존 합금을 뛰어 넘는 고강도 합금 등이 연구 및 발표되었다.

실험 결과들은 많은 고엔트로피 합금에서 우수한 기계적 성질이 트위닝 현상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금속학에서 잘 알려진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기존의 경험적 이론은 이들 합금이 트위닝이 가능한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텍 철강대학원과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 국제공동연구팀은 원자 단위의 일반이론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자역학계산을 수행했다. 그 결과 고엔트로피 합금이 기존의 합금들과 다른 분류의 물질이라는 것을 밝히고 트위닝이 보다 원활하게 일어남으로써 고강도의 기계적 성질을 나타내게 됨을 설명하였다.

l  초경량, 고강도…새롭게 쓰여지는 금속학

금속이 만들어지고 가공되는 공장의 모습.
다음으로 포스텍 철강대학원에서 개발된 초경량 고강도 합금강이 있다. 여기서는 철에 망간과 알루미늄 함량을 높게 하고 니켈을 첨가한 합금을 설계한 뒤 매우 작은 2차 결정이 발현되도록 공정을 제어하였다.

일반적으로는 화학적으로 안정한 2차 결정들은 금속재료의 성질을 나쁘게 하며 이를 피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상식을 뒤집어 새로 제시된 합금은 오히려 기존의 철강재료들을 넘어서 항공기용 소재로 개발된 타이타늄 합금보다도 우수한 기계적 성질을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우리가 포스코의 기가스틸, 고엔트로피 합금, 초경량 고강도 합금강을 포함한 고합금강에 대해 새로운 금속학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l  안전하고 효율적인 미래사회를 위하여

가동되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모습.
우리는 ‘슬기사람(homo sapiens)’의 후예로서 지금 여기서 지구와 우리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고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과학지식은 인류에게 닥친 이 도전에서도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금속학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초와 응용분야를 아울러 자연이 허락한 영역을 더 깊이 탐색하여 다재다능한 재료를 찾아내고 적용함으로써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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