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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한글에 대한 모든 것,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다

아름다운 우리말 한글에 대한 모든 것,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다

2018/10/08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올해로 572돌을 맞은 한글날은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이다.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시초이며, 1928년에는 ‘한글날’로 개칭됐고 광복 이후부터 지금의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다. 3·1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과 함께 5대 국경일로 꼽는 한글날은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가 2012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된 바 있다.

포스코 뉴스룸에서는 572번째 한글날에 꼭 맞는 특별한 취재를 기획해 봤다. 바로 한글의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에서 정확히 4년 전 10월 9일 한글날에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온 것.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온 한글 자료, 상설전시와 다양한 기획특별전, 한글에 대한 체험 활동들로 채워진 국립한국박물관에서 보고 느낀 우리 한글의 우수성과 그 안에 숨겨진 철의 역할도 놓치지 않고 취재해 왔다.

 

스물여덟 자의 미학

세종과 "훈민정음" - 한글을 창제한 세종 대왕. 세종은 즉위 25년째 되던 1443년 한글을 창제하였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446년에 그 문자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냈다. 뒤에 놓인 병풍에 적힌 것은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의 해설서의 "훈민정음"의 '서문'과 '예의' 일부이다.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된 한글은 세종대왕이 백성들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 고유 문자다. 훈민정음은 현대 언어학 관점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제자 원리를 갖추고 있으며 당시 성리학적 세계관과도 부합하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현재는 국보 제70호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그 전통과 명맥을 기리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2층 주 전시실로 올라가면 <한글이 걸어온 길>이라는 주제의 상설전시관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둘러보는데만 4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릴 정도로 전시 규모가 큰데, 하루 세 번 해설사와 동행해 한글이 걸어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 입구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적혀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훈민정음 해례본.

이곳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전문과 어제서문, 한글이 없던 시대의 문자와 한글 창제 원리까지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한글은 문자사적으로 길이 빛날 독창성과 과학적 원리를 갖고 있어 전 세계 언어학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데, 이날 역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글박물관을 찾아 한글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글을 빛낸 금속활자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한글이 적힌 금속활자.
한글이 널리 보급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은 한 것을 꼽으라면 금속활자를 빼놓을 수 없다.  금속활자는 목판활자 인쇄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으로 납이나 구리 등 금속으로 만들어 영구 보관이 가능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한 글자씩 금속활자본을 제작해 두고 조합하는 방식이라 다양한 문장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오타나 비문을 발견했을 때에도 쉽게 수정 가능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한 판을 다 만들어야 하는 목판인쇄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에 전시된 한글 납활자.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에 전시된 한글 납활자.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관에 가면 실제 금속활자를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판 인쇄에서 근대식 납 활자 인쇄로 변화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전시 영상도 볼 수 있다. 금속활자는 발명 이후 목판 인쇄를 빠르게 대체하며 싼 가격에 효율적으로 책을 인쇄하고 출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자 한글은 교육, 종교, 예술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점차 폭넓게 쓰이게 됐다.

이와 함께 문자 생활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들과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익혀 편히 쓸 수 있는 한글 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글은 조선 후기 일상 문자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된다. 이후 19세기부터는 근대식 인쇄 기술의 도입으로 신문, 잡지, 신소설 등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한글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고, 한글로 인해 지식 공유가 더 쉽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금속 타자기의 어제와 오늘

금속활자 다음으로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철’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상설전시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오래된 금속 타자기가 있다.

한글 타자기는 광복 이후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관심을 타고 급격한 진보를 이뤘다. 1949년 7월 조선발명장려회에서는 한글 타자기 현상 공모를 하기도 했는데, 이 공모전에서 2등을 수상한 공병우의 이력이 특히 재미있다. 공병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안과병원 ‘공병원’을 세운 안과의사로 우연히 환자로 만난 국어학자 이극로 덕분에 한글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광복 후에는 일본글로 되어 있던 시력검사표를 한글로 고쳐 만들고 글쇠의 벌 수가 많았던 기존의 세로쓰는 타자기의 불편함을 개선해 직접 한글 타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

한글박물관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도 만나볼 수 있다. 1933년 송기주 박사가 기증한 네 벌식 한글 타자기인데 언더우드(Underwood) 영문 포터블 타자기 글판을 개조해 네 벌씩(옆자음, 윗자음 겸 받침, 복자음과 쓰이는 작은 자음, 모음) 세로쓰기 및 한글 모아쓰기로 개발한 타자기다. 송기주 박사는 192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교에서 지도 제작 및 도안 일을 하던 중 이 타자기를 발명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더는 한글을 사용하기 위해 타자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하지만 금속 타자기 자판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나는 특유의 소리와 손맛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에 매력을 느껴 다시 타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흔하지 않은 빈티지 타자기로 실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수집하거나 소장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국립한글박물관에 줄지어 전시된 금속 타자기를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할 듯싶다.

한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고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한글은 1894년에 조선의 공식 문자로 선언됐다. 1907년에는 한글을 연구하는 국립 기관인 국문연구소가 설립됐으나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한글 연구는 물론 우리말과 한글 사용이 모두 금지됐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국어학자들과 국어 연구 단체들의 끈질긴 노력은 우리말과 한글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뿌리가 됐고, 덕분에 한글은 단순한 문자를 뛰어넘어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런 한글에 대한 아픈 역사를 포함해 한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고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 백성들에게 널리 쓰이고 일제의 압박을 견디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 알게 모르게 철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국립한글박물관은 월별로 다양한 교육문화 행사를 열어두고 있고 연령대별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들로 누구에게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한글날에는 목판인쇄 체험, 캘리그래피, 한글 손편지 공모전, 마임·마술쇼까지 다양한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고 하니, 한글날 한번 들러보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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