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 복합 문화공간으로 피어나다
① 테헤란로의 명물, 모두를 위한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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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센터, 테헤란로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건물도 완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옷을 입기도 하고, 더 많은 것을 내적으로 품으며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내 최초의 인텔리전트 빌딩’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태어난 포스코센터는 포스코가 이룩한 성과의 결실을 넘어 한국의 새로운 건축문화를 주도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회자됐다.
▶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9m 높이의 원통형 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있는 직원과 시민들. |
포스코센터는 포스코의 사옥이지만 일반인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포스코센터를 찾는 방문객들은 1층에 들어서자마자 철강재를 활용해 공간감을 극대화한 로비의 웅장함에 놀란다.
일반 건물 6층 높이로 뻥 뚫린 시원한 로비에서 방문객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아쿠아리움’이다.
▶ 아쿠아리움이 들어서기 전에는 분수가 있어 1·2층은 물론 누드 엘리베이터에서도 분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
지하1층부터 지상 1층까지 이어진 9m 높이의 아쿠아리움은 지름 5m, 두께 120mm의 아크릴로 제작한 원기둥 수족관이다. 수족관 무게는 226톤인데, 그중 아크릴만 20톤에 달한다. 30여 종의 남태평양 산호초 옆을 40여 종 1000마리의 화려한 열대어와 상어 등이 헤엄치고 있다. 가까이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닷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그중 나폴레옹 피쉬(Humphead Wrasse)는 한 마리당 1200만 원으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이 친구는 사람처럼 생명보험에도 가입돼 있다. 한마디로 ‘고귀한 몸’인 셈이다. 2010년 9월 30일 이곳으로 이사(?)해 5년째 살고 있는 물고기도 여럿 있다.
최고의 수중 거주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전문 스쿠버다이버가 매일 점심시간에 산호초나 돌에 낀 이끼를 청소한다.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스코센터는 개방된 공간,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가미된 건축구조 덕분에 예술공연의 무대가 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준공연도인 1995년 12월 22일에는 1층 로비에서 전위무용가 홍신자 씨가 신작 <은하수>를 상연했다. 우연히 포스코센터를 방문했는데, 빼어난 조형미를 갖춘 훌륭한 공간이 로비로만 쓰이는 것이 아쉬웠던 것이다.
당시 홍신자 씨는 "25년간 춤을 춰오면서 극장만으로는 왠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6월 경기 죽산의 들판에서 제1회 죽산 국제예술제를 갖고는 탁 트인 공간이 그렇게 자유롭고 신선할 수 없었어요. 포스코센터는 공간이 넓고 천장이 높으며 유리와 금속, 철문과 계단 등 다채롭고도 현대적인 무대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무대를 넓혀나가는 또 하나의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로서도 도시 한복판의 초현대식 빌딩 로비를 무대로 삼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포스코 직원과 시민 등 관객 2000여 명도 작품의 한 요소로 삼았다. 그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깊은 산 속이나 휴가철의 바다, 빌딩숲 속, 공항 대합실 등 무대가 가능한 곳은 가리지 않고 공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공연은 홍신자 씨의 춤, 기업의 문화적 역할, 강남지역 빌딩에서의 이벤트라는 점들이 어우러져 많은 화제를 낳았다.
(1995년 12월 21일 경향신문 13면에서 발췌)
포스코는 로비를 무료 제공하고 제작비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등 메세나(mecenat·문화예술 지원) 우수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 (왼쪽부터) 기존 회화 이미지에 역동감을 더해 애드벌룬으로 재탄생한 팝아트 주인공 <아토마우스>(위)와 철 구조물에 실제 꽃 영상을 투사해 따뜻한 이미지로 변모시킨 작품 <꽃이 피어나다>(2012). 예술적 요소에 친환경 기술을 접목해 융합의 의미를 더한 에코 크리스마스 트리(2013). 해·달·산·학·사슴·불로초 등 십장생을 모티브로 해 포스코센터 1층 로비 천장에 걸린 한지등(2014). |
연말연시에는 특별한 경관조명이 켜지기도 한다. 2012년에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 김기라·이동기·한요한 작가가 참여해 특별 야외 전시전을 열어 따뜻한 철 구조물과 힘찬 새해를 표현했다. 2013년에는 김기라 작가는 재활용한 플라스틱 상자에 LED조명을 사용해 환경보존과 에너지 절약이 가능한 예술작품을 보여줬다. 2014년에는 복주머니 한지등과 오방색 나무옷 등 전통문화를 주제로 포스코센터에 한국 고유의 미를 입혔다.
또한 포스코센터는 드라마·쇼 프로그램 촬영지로도 각광받았다. 2011년에는 인기 걸그룹 ‘f(x)’가 로비와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고, 인기 드라마 <내마음이 들리니> <마이더스> <나쁜 남자> 등도 포스코센터를 앵글에 담아 갔다.
■ 비디오 아트부터 콘서트까지… 모두를 위한 ‘아트센터’로
▶ 프랑크 스텔라의 작품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
한요한 작가가 꽃의 영상을 비춰 실제 꽃처럼 변모시킨 포스코센터 앞 광장 ‘철꽃’ 조형물은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이다.
1997년 9월 설치된 이 조형물은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의 스테인리스스틸(STS) 주조작품이다. 당시 국내 환경조형물 가운데 최고액이자 최대규모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729㎥(9m×9m×9m)에 무게가 30톤에 달하며 제작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포스코는 <꽃이 피는 구조물>을 태어나게 한 강한 실험정신이 세계적 철강기업으로서 포스코의 이미지와 개척정신에 부합하고, 대표적인 철 구조물인 포스코센터와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어 포스코 문화사업의 기념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1999년, 작품이 별안간 유명해졌다. 맞춤 조형물로서 지금의 위치에 그대로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 고철덩이처럼 보여 포스코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므로 다른 장소로 옮겨야 된다는 주장이 부딪친 것이다.
작가 프랑크 스텔라는 포스코로부터 조형물 제작 의뢰를 받고 작품을 완성한 다음, 친구이던 국제철강협회 사무총장의 딸인 ‘아마벨’이 19세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며 조형물에 그녀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이 조형물에는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을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비록 작가가 포스코센터의 건축 환경에 맞춰 작품을 만들었지만, 포스코의 기업문화나 성장역사를 표현하기보다는 특정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이 담긴 작품이 포스코센터의 맞춤 조형물이 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무의식과 감성이 두드러진 추상주의 작품을 이해하기 난해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 포스코는 1999년 8월 16일부터 한 달간 포스코센터 앞 조형물 이설과 관련해 시민의 찬반 의견을 조사했다. |
<꽃이 피는 구조물>은 고급 미술품 설치로 회사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회사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고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해 8월에는 작품 이설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조사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꽃이 피는 구조물>은 지금도 포스코센터 앞에서 테헤란로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신진 작가의 새로운 시도로 더 따뜻하고 깊은 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코센터의 또 다른 명물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故 백남준 씨의 작품 ‘<철이 철철-TV깔때기, TV나무>다. 로비에 설치된 TV 모니터 260여 대가 연출하는 그의 작품은 포스코센터 방문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 포스코센터 1층 로비 천정에 달려있는 故 백남준 씨의 비디오 아트 작품 <철이 철철-TV깔때기>. |
이 작품은 포스코센터 준공 이전인 1995년 5월에 설치됐다.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과의 자연스러운 조화로 임직원은 물론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2006년 1월 백남준 씨가 타계하면서 서울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검은 모니터에 상영되는 열매나 꽃 등 색색의 영상들은 환경과 인간을 사랑하는 포스코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다.
특히 나무뿌리에서 층층이 성장해 하늘로의 끝없는 비약을 상징하는 원추형 TV깔때기, 그리고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이미지는 포스코센터의 확 트인 로비를 미래형 무한공간의 깊이로 몰아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포스코센터에는 20여 점에 이르는 미술작품이 공개 전시돼 있다. 포스코는 대표적인 메세나 활동으로 포스코센터에 ‘포스코미술관’을 운영, 일반인에게 예술공간의 문턱을 낮추고 미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포스코미술관은 지역시민을 넘어 일반인 누구나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열린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스코는 문화예술 저변 확대와 지역사회의 화합·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5년 메세나 대상을 받기도 했다.
21세기 전부터 테헤란로를 거닌 사람이라면 1999년 12월 31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밀레니엄 제야음악회’를 기억할 것이다. 로비를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청중은 금난새 씨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들으며 새 천년을 힘차게 맞이했다.
▶ 1999년 12월 31일 밤부터 2000년 1월 1일 새벽까지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열린 ‘밀레니엄 제야음악회’의 모습. |
“포스코에 강당을 빌리러 왔다가…” 하고 운을 뗀 금난새 씨는 포스코센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에 반해 ‘여기서 꼭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3악장이 끝난 오후 11시 59분 50초, 모든 사람들이 새 천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0을 세는 순간 축하 폭죽이 터지면서 청중들은 가족·친구들과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며 특별한 새해를 맞았다.
“그날 제가 본 포스코센터는 지휘를 맡았던 금난새 씨의 말처럼 너무나 아름다웠고, 부부가 혹은 아이와 함께 나와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포스코 직원들은 나와 똑같이 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쇠를 만드는 포스코가 어떻게 그런 행사를 기획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부드러운 것, 문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포스코가 새 천년맞이 음악회를, 그것도 회사 사옥 로비에서 개최하다니. 포스코를 다시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날은 수없이 많은 설비를 갖고 있는 포스코의 양 제철소가 Y2K 연도 전환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 긴장된 날이었는데도 포스코센터 입주 회사 임직원과 인근 주민들을 위해 그런 행사를 기획했으니 역시 큰 회사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00년 1월 13일 대치2동 동장 유영호 씨의 포스코신문 기고
포스코센터 음악회는 2014년 12월 22일을 끝으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공연 총 156회, 누적 관객 14만여 명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사옥음악회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인기가수 공연부터 재능 있는 신인 아티스트와 유명 뮤지션이 함께 하는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 공연을 하는 등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낸 음악회로도 널리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 지난 8월 29일 열린 포스코 키즈콘서트 네 번째 공연 ‘브레멘 음악대’ 현장. |
포스코는 포스코센터 음악회를 ‘포스코 키즈콘서트(POSCO Kid’s Concert)’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가족 단위 여가활동이 많아지면서 주말 문화체험 수요가 증가하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춘 것이다.
포스코 키즈콘서트는 올해 2월을 시작으로 연간 총 6회(짝수달) 열려 어린이 관객과 가족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따스한 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 포스코센터 개관 20주년 특집 4화는 9월 14일(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