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현대사회는 컴퓨터로 움직이는 사회다.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어렵다. 그런데 시간을 되돌려 3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주변에서 컴퓨터를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286’, ‘386’ 이런 식으로 퍼스널 컴퓨터의 능력을 표시한 게 바로 이 즈음이었다. 이때 컴퓨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컴퓨터를 안다는 것은 바로 시대를 앞서간다는 의미였다. 오늘 만난 명장의 표식을 가슴에 단, 포스코 최고의 기능인 손광호 명장은 포스코에 입사해 막 근무를 시작할 당시부터 이미 ‘떡잎부터 다른, 될성부른 나무’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말로 ‘질러버린’ 거죠. 컴퓨터를 할부로 산 겁니다. 당시 근무하던 광양제철소 2냉연공장 사무실에도 공장장용, 행정담당용으로 컴퓨터가 딱 2대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격이 300만 원 정도였는데요, 신입사원 월급으로 3달 치 정도 되는 금액이었죠. 그걸 입사 후 바로 기숙사방에 ‘떡’하니 들여놓은 겁니다.”
금세 손광호 명장의 기숙사 방에 컴퓨터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관심 있는 직원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는 컴퓨터를 그저 폼으로 들여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프로그램 공부에 푹 빠져 있던 상태였기에 그 공부를 위해서도 컴퓨터는 반드시 필요했다.
“신입사원으로 첫 임무는 유압 배관 플러싱(flushing)이라는 작업이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죠. 배관을 씻어주는 플러싱 펌프가 있는데 그게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지루할 정도로 단순한 작업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2냉연공장에 배치되긴 했지만 아직 2냉연공장이 한창 건설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설비가 막 도입되고 있었고, 설비와 함께 두꺼운 매뉴얼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마침 두 가지가 맞아떨어진 거죠. 시간도 있었고, 공부할 매뉴얼도 있었던 겁니다. 플러싱 펌프를 확인하면서 틈틈이 매뉴얼을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서 달달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도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게 공부했던 매뉴얼은 이내 빛을 발하게 된다. 때는 2냉연공장이 건설을 마치고, 시운전을 하는 시점이었다. 선배 직원이 손광호 명장에게 하나의 역할을 맡겼다. 압연유 시스템 중앙운전이 그것. 손광호 명장은 자신이 있었다. 새롭게 도입된 컴퓨터 제어운전에 관심도 많았고, 여태껏 공부해온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실수를 해버렸어요. 조작이 서툴러서 지하에 있는 탱크가 넘쳐버렸습니다. 물바다가 되었지요. 큰 사건이었습니다. 아, 그때 혼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눈물을 쏙 뺐다고 할까요.”
손광호 명장은 입사 6년 차인 1996년,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며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가 개발한 시스템은 ‘압연유 뉴 차징 시스템(new charging system)’. 그는 ‘PCM(Pickling and Tandem Cold Mill; 산세 및 냉간압연 공정)’의 마지막 공정이자 ‘풀 하드(full hard)재’를 생산하는 압연공정인 밀 스탠드(mill stand) 작업을 담당했다. 이 설비는 압연작업 시 윤활을 위해 소재에 따라 압연유 원액에 물을 섞어서 1~5% 농도로 분사한다. 작업하는 내내 사용해야 하다 보니 사용량이 많아 외부에 압연유와 물을 받아두는 탱크가 있고, 근무자는 이 탱크의 상태를 체크해서 압연유와 물을 보충해야 했다.
“이 작업을 근무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수동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근무자에 따라 압연유와 물의 혼합 비율이 달랐고, 때론 잔량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죠. 이렇게 압연유와 물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 보니 제품 품질이나 롤 수명에도 영향을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손광호 명장은 이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동제어시스템을 개발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6년 동안 컴퓨터를 익히고, 매뉴얼을 공부하며 현장 상황과의 연관성을 강구해온 결과였다. 손광호 명장은 이 공로로 지금의 포스코기술대상에 해당하는 ‘제철기술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상을 받은 것보다 더 의미 있었던 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냉연설비와 그 설비의 제어기술, 제어시스템 개발에 본격적으로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손광호 명장이 기능인의 길로 들어서고, 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중학교 때 은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하던 때,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포철공고를 추천한 것이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 선생님이셨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학생들도 그 열의를 인정하는 분이셨기에 그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포철공고로 진학했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포철공고 입학 후 곧이어 선생님께서도 포항의 한 여고로 전근을 오신 것이었다. 가뜩이나 어린 나이에 객지에서 공부하랴, 생활하랴 어려움이 컸는데, 선생님이 포항에 오신 뒤로 매우 큰 힘이 되어줬다고. 자주 집에 데려가서 밥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도 해주셨단다. 심지어 간간히 용돈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후 교편을 놓고, 경북도 교육청에서 근무하시다가 2021년에 정년퇴직을 하셨어요. 그런데 정년퇴임식 때 저더러 학생대표로 답사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영광이니 ‘하겠습니다’ 했죠.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으로 행사가 취소돼 참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퇴임 자리에서 제일 기억나는 제자로 저를 꼽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고맙기 그지없는 분이십니다. 제 삶의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역량을 키워가던 손광호 명장에게 2008년, 그야말로 거대한 프로젝트가 다가왔다. 2냉연공장 합리화였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초고강도강’과 ‘기가스틸’을 생산하려고 압연기를 4대에서 6대로 늘리고, 늘어난 압연기에서 나온 제품을 병목현상 없이 제때 검사까지 해낼 수 있도록 검사방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로, 연산 300만 톤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서 손광호 명장은 검사방식 개선을 고민했다.
기존의 검사방식은 생산된 코일을 별도의 설비에서 풀어서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검사도 불완전하거니와 시간도 많이 걸려서 검사에서 병목구간이 발생하고 있었다. 연산 300만 톤 체제를 구축하려면 검사방식 개선은 필수 요소였다.
“검사대를 수평형으로 만들어 생산과 동시에 실시간 검사할 수 있도록 구상을 했습니다. 당시 PCM설비 전체에 대한 제어시스템인 PLC 프로그램을 일본의 히타치가 책임지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연결시켜야 할 검사대에 대한 내용을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에 포함시키도록 하려면 검사대의 ‘운전설계서’를 만들어서 히타치에 제때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공급사와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리먼사태라는 초유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겁니다. 기계공급사가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했고, 결과적으로 기계공급사는 운전설계서를 만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 제어 프로그램 완성 일정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검사대 운전설계서를 기계 공급사가 만들어주지 못하면 포스코가 자체적으로라도 만들어서 전달해야 할 상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뭐가 맞고, 틀린 지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손광호 명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손광호 명장은 2주일 동안 밤낮없이 좌충우돌, 동분서주하며 운전설계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히타치에 검사대 운전설계서를 전달하고, 다시 4개월 동안 PLC 시운전까지 참여했다. 그렇게 넘긴 위기는 PLC 제어기술에 대한 이해라는 보상으로 돌아왔고, 이는 향후 압연기 제어기술을 개발하는 데 풍요로운 자산이 된다.
손광호 명장이 개발하고 보유한 수많은 기술 중 대표를 하나 꼽으라면 ‘기가스틸 전용 압연두께제어기술’을 들 수 있다. 압연의 소재가 되는 열연코일은 일정분량이 두루마리 화장지 모양으로 말려 있다. 그런데 냉간압연은 연속 작업이다. 연속 작업이 가능하려면 냉간압연 직전 앞 코일의 끝부분과 뒷 코일의 첫 부분을 용접으로 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이어 붙인 부분이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강종이 고강도강으로 변해가면서 이 용접 부위의 두께 불량이 문제를 일으킨다.
“판파단이라고 해서, 스트립이 찢어져나가는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어요. 판파단이 생기면 골치가 아픈 게 일단 라인을 세워야 합니다. 판파단이 난 스트립을 걷어내고 다시 압연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죠.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생산성도 떨어지고, 원가도 올라가고, 무엇보다 설비에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작업자도 한 번 처리하고 나면 녹초가 됩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아보니까 역시 용접부 두께 불량이 문제더군요. 해결 방법을 고민한 끝에 용접부 두께 변화에도 적절히 대응하면서 압연할 수 있도록 다이나믹한 제어기술이 필요하단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정비, 운전, 기술연구원 모두가 참여해서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죠.”
‘이 제어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초고강도강으로 넘어가는 생산 패러다임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고, 냉연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당시 참여자들의 각오였다고 한다. 그렇게 ‘기가스틸 전용 압연두께제어기술’ 개발은 성공하게 된다. 더불어 일본 히타치에 대한 기술 의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기가스틸에지 적용이 가능한 ‘포스코형 기술’의 탄생이었다. 손광호 명장은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냉연의 미래 발전 가능성까지 확보한 것이다.
이 밖에도 손광호 명장은 종전 0.16㎜ 두께를 넘어 0.12㎜ 두께의 냉연을 생산하려는 포스코베트남의 긴급 요청에 따라 제어기술을 개발하는 등 16차례의 기술지도자 파견으로 40여 건의 기술을 해외 생산기지에 전수했다. 2019년에는 압연기 모터 부하를 최적 조건으로 자동 분배해서 압연기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기가스틸 고정도 압연하중 예측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오퍼레이터들이 수작업으로 밀을 조정하는 비율을 30%에서 무려 5%로 줄여내 포스코기술대상 ‘창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는 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교대근무자로 현장조업을 하는 인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통 스태프 인력도 아니거든요. 상주근무를 하는 기술전문가로 관리직군 대우인 거죠. 일이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제어기술을 파고드는 일이라 만족도가 높았지만 현장에서의 정상적인 승진루트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다른 측면에서 동기부여가 잘 안되는 부분도 솔직히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그런 제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 준 것이 바로 2017년 회사가 신설한 PCE(POSCO Certified Expert) 전문직 제도였습니다 제가 PCE 1기인데요. 이 제도에 따라 명장으로의 길도 활짝 열린 셈이었습니다.”
명장은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개발하며, 개발된 기술을 전수하고 또 기술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후배를 양성하는 임무를 띤다. 그렇다면 후배들을 어떻게 끌어줄 것인가? 손광호 명장은 ‘라떼’식의 고리타분한 방식을 거부한다. 그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자 한다. 명장이 될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분석이 필요한 차트를 보며 왜 그럴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냉간압연기에서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소리도 시끄럽고요. 그런데 체크해야 할 사항은 무척 많습니다. 그걸 눈으로 보고, 볼 수도 없겠지만요, 판단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빠르게 진행되는 작업 중에 실시간 작업상황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바로 설비가 제공하는 차트를 분석하는 방법뿐입니다. 이건 심장 전문의가 심전도 차트를 보는 것, 신경과 의사가 뇌파검사 차트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차트는 현상의 모든 것, 모든 문제를 다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걸 읽어내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경험도 쌓아야 하죠. 하지만 차트에 문제와 답이 모두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차트를 안고 살고, 또 그러한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광호 명장, 오늘도 차트와 씨름하는 그가 있기에 포스코 냉연이 그려낼 ‘미래 차트’는 영원한 상승곡선을 그려낼 것이라 기대한다.
[포스코의길, 명장의道] 포스코명장 특별인터뷰 모아보기
1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2편 : 광양제철소 제강부 조길동 명장
3편 : 포항제철소 열연부 권영국 명장
4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신승철 명장
5편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김차진 명장
6편 : 광양제철소 EIC기술부 김성남 명장
7편 : 포항제철소 후판부 이영춘 명장
8편 : 광양제철소 화성부 김제성 명장
9편 :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서광일 명장
10편 : 포항제철소 제강설비부 남태규 명장
11편 : 광양제철소 제선부 배동석 명장
12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명장
13편 : 저탄소공정연구소 한병하 명장
14편 : 광양제철소 압연설비부 김종익 명장
15편 : 광양제철소 도금부 손병근 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