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포스코는 연주설비를 모두 스스로 설계한다. 설계를 자체적으로 하니 정비 역시 국내외 설비공급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그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한병하 명장이다. 연주설비에 관한 한 한병하 명장은 전무후무한 존재다.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일반 연주설비인 고로밀 연주설비부터 고속연주설비인 CEM(Compact Endless Cast & Rolling Mill)까지, 슬래브를 생산하는 전형적인 연주설비부터 후판처럼 두꺼운 철판이나 선재와 같이 가느다란 철선을 만들기 위한 철 막대 형태의 빌릿을 만드는 연주설비까지 화려하게 돌아가는 모든 연주설비의 설계, 정비의 구심력이다.
제철소에서 연주는 액체 상태인 쇳물, 정확하게는 제강공정에서 성분조정을 거친 용강을 고체상태인 슬래브로 만드는 공정이다. 그런데 이 공정이 또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쇳물은 성분조정을 하는 곳인 전로부터 래들, 턴디시를 거쳐 몰드에 도달한다. 몰드에서 반응고 상태가 된 쇳물은 스트립이 되어 벤더, 언벤더를 거쳐 여러 개의 세그먼트(segment)로 이루어진 긴 통로를 거치고 난 뒤에야 슬래브가 된다. 이 슬래브를 가지고 압연공정에서 후속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몰드에는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오실레이터(oscillator)가 있고 몰드, 벤더, 언벤더, 세그먼트에는 스트립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롤(roll)들이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정교한 제어가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최초 들여온 설비의 사양과 달리 강종이 고급화되고 또 다양화됨에 따라 기존 설비를 개선하고, 또 새로운 설비를 장치해, 운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가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병하 명장이 연주설비에 대해 이토록 정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니엘리(Danieli)’와의 협업이었다. 당시 포스코 연주 분야는 일반 속도의 연주인 고로밀 연주에서 고속연주로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고속연주설비가 도입되는 상황이었고, 그와 함께 연주 분야에 수많은 숙제가 한꺼번에 주어진 시점이기도 했다.
“다니엘리는 이탈리아의 연주설비 제작사로 세계 3대 연주기 제작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스코가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건 고로밀 연주설비 개발 때부터였어요. 그 인연이 CEM 고속연주기 설계와 제작으로까지 이어진 거죠. 연주기 설계와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만큼 기대가 컸습니다. 특히 고속주조용 세그먼트, 몰드 오실레이터 개발을 많이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이 진행되니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일이 꼬이더군요.”
목표는 8mpm이었다. 8mpm이란 8 meter per minute, 그러니까 분당 8미터를 연주해 내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존의 속도는 1.2mpm에서 1.5mpm 정도였다. 물론 속도를 약간 높이는 것은 가능했지만 8mpm라는 목표는 높은 벽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다니엘리와의 협업으로 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탈리아까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했지만 결국 ‘다니엘리와는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일단 협업을 멈추고, 포스코 자체적으로 설비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답답하기도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불가능할 것 같은 과제, 그러나 한병하 명장과 그의 동료들은 그동안 정비와 조업에서의 경험 등을 총동원해 설비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실제 조업과 같이 쇳물이나 스트립을 넣지는 않는 ‘무부하 테스트’까지 성공해 내고 만다.
“순전히 시행착오를 통해서 해낸 거라고 보면 됩니다. 미로에서 지도 없이 이 길, 저 길 모두 발품을 팔아서 결국 길을 찾은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현장에 설치하고 나서 터졌다. 한밤중에 조업에서 긴급 전화가 왔다. 전날 설치한 설비가 회전 불량으로 못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현장으로 뛰어갔죠. 설비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여러 번 겪어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두려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갖은 어려움을 겪고 설치한 설비였는데 문제가 생겼다니, 가는 동안 내내 심장이 멈출 것 같이 두려웠죠.”
현장에 가보니 더욱 주저앉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롤이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함이었다. 원인은 금세 알 수 있었다.
“고속주조를 하려다 보니 롤 직경을 줄였습니다. 물론 연속주조할 때 속도를 높이려면 세그먼트 롤의 직경을 줄이는 것은 필수조건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롤을 냉각시키기 위해서 롤 축 내부로 냉각수를 통과시키는 방식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롤 직경을 줄이다 보니 롤 축으로 냉각수를 흐르게 할 수가 없었고 롤 냉각을 충분히 하지 못하자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롤 바깥쪽에서 스프레이 형식으로 뿌려주는 냉각수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열을 너무 많이 받은 거였죠.”
문제를 알았으니 고생은 하겠지만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해서 생겼다. 그렇게 해결하면 터지고, 또 해결하면 터지는 문제의 연속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겪고서야 고속주조용 연주설비는 오롯이 포스코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고속주조용 세그먼트, 몰드 오실레이터 개발에 성공했고, 롤 직경도 100㎜까지 줄여낼 수 있었다. 문제는 많았지만, 외부 제작사가 메인이 되고 포스코가 서브가 되는 방식이 아닌 포스코 스스로 헤쳐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어려움을 극복하는 순간 관련된 모든 것은 노하우가 되었다. 많은 문제라는 것은 결국 많은 노하우가 된 것이다.
한병하 명장 주변 인물들은 그가 이렇게 일에 관한 한 아주 집요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 그는 일이 아닌 분야에서도 매우 집요한 면모를 보인다. 난 채집이 그 예이다.
“어쩌다 보니 난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난이 ‘돈이 된다’는 말에도 약간 혹했고요. 그런데 난을 찾아다니려면 부수적으로 하게 되는 게 등산입니다. 그렇게 등산의 매력에까지 푹 빠지게 된 거죠.”
단순히 난이 좋아 난을 찾아 산을 오르내린다고 해서 대단히 특별하다고까지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걸 꽤 멀리까지 밀고 갔었다.
“주택단지 아파트에 사는데 난을 키우려고 베란다를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바닥공사를 하고, 통풍을 위해서 창문도 별도공사를 하고요. 베란다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난을 위한 공간이 된 거죠. 한때는 가지고 있던 난 화분이 200여 개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난과 잘 맞지 않는지 자꾸 죽는 거예요. 그리고 공간도 좁게 느껴져서 이사까지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집에서 좋아할 리가 없다. 일에 미친 사람이니 평일에 일찍 퇴근해서 가족을 알뜰히 챙기는 것도 아니고, 주말이나 휴일만 되면 배낭 메고 산으로 가서는 비박까지 하면서 집에 들어오질 않으니……. 집에서는 불만도 불만이지만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때는 등산하다 지리산 천왕봉 근처에서 발목을 크게 다쳐 구조대의 부축을 받으며 무려 7시간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온 적도 있다고.
“지금은 기르고 있는 난이 거의 없습니다. 난을 키우는 데는 소질이 없나 봐요. 게다가 돈도 나가기만 하고. 난을 사 본 적은 있지만 팔아본 적은 없어요. 지금 집에는 빈 화분만 200여 개 달합니다. 집 사람한테는 엄청 미안하지요.” 한병하 명장은 난은 남지 않았지만 등산 덕분에 건강은 남은 것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한병하 명장의 시선이 닿은 또 다른 곳은 바로 연주기 세그먼트에 있는 가이드 롤이었다. 연주기에 사용하는 가이드 롤은 일정기간 사용하면 정비를 해서 다시 사용하거나 교체를 해야 하는 부품이었다. 문제는 정비를 하는 방식이었다. 정비해야 하는 부분은 롤과 베어링이 엮여있었다. 그래서 정비를 할 때는 롤과 베어링을 전부 분해해서 떼어내고 롤의 표면을 정비한 뒤 다시 조립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썼다.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비를 해서 다시 사용할 때는 이렇게 전부 분해해서 정비하는 방식이 노력과 시간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베어링을 받치고 있는 부분이었어요. 그 부분 때문에 분해하지 않고는 롤을 정비하기가 어려웠지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그 부분을 180도 위쪽으로 돌려놓고 고정시키면 롤이 전부 드러나니 다 분해하지 않고 일부만 분해한 뒤 롤 표면을 다듬어 정비를 끝낼 수 있겠더라고요. 그것을 적용한 것이 바로 ‘연주 세그먼트 가이드 롤 재사용 기술’입니다. 어떻게 보면 발상의 전환일 뿐, 대단한 기술은 아니거든요. 물론 이와 함께 정비 방법, 정비에 사용하는 장비와 공구 등도 몇몇 개발을 하긴 했지요. 그렇게 정비 프로세스를 확 바꾸니 시간이며 노력이 말도 안 되게 줄어드는 겁니다.”
뿐만 아니다. 그는 연주 몰드 설계와 정비기술을 확립해 고속으로 연속주조를 할 때 필요한 몰드를 국산화하기도 했다. 이 몰드는 기존에는 전량을 해외의 설비공급사에 의존했던 것이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은 모두 ‘포스코 고유의 설비, 포스코 고유의 정비기술’이란 영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한병하 명장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는 말한다. 메모의 습관이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메모를 하려면 당연히 수첩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병하 명장은 늘 수첩을 여러 개 들고 다녔다. 점퍼 안주머니, 바지 뒷주머니, 작업복 안주머니 등 여러 곳에 수첩을 묻어두었다.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면 수첩에 메모를 하기 위해서였다.
“점퍼 안에만 수첩을 넣고 다니다가, 잠시 다른 데 점퍼를 벗어둔 상태면 메모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넣어둔 거지요.”
‘머리보다 손을 더 믿는다’는 그는 요즘은 수첩과 함께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제가 특허, 우수제안이 80건이 넘는데요, 이게 다 이렇게 기록하는 습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불쑥 떠오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생길 수도 있고, 밤에 술 한잔하고 귀가하는 길에서도 생길 수 있지요. 그럼 얼른 기록해야 합니다. ‘나중에 하지’ 하면 늦습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중요한 아이디어는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귀담아들을 내용이다. ‘총명이 불여둔필(聰明 不如鈍筆)’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서투르게나마 기록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메모하는 습관으로 유명해진 정치가나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런 ‘메모광’ 중에 모자 속에 항상 종이와 연필을 넣고 다녔다는 ‘링컨’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병하가 명장으로 등극한 것은 2018년. 기능인으로서의 삶의 거의 전부를 연주설비 개발과 정비에 바쳐온 그의 삶은 아직도 연주설비에 머물러있다. 그렇다면 현재 그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GTC(Gate Tube Change)라는 장치를 개발해 2연주공장 1머신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현재 시운전은 성공적으로 마쳤고요, 현장 이관 중입니다.”
‘연연주’라는 말이 있다. 턴디시와 관련이 있는 용어인데, 보통 래들에서 턴디시로 쇳물을 넘길 때 래들의 쇳물을 몇 번 턴디시로 넘길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기존에는 래들의 쇳물을 통상 8번까지 턴디시에 넘길 수 있었다. 그 후에는 턴디시를 교체해야 했다. 이것을 ‘8연연주’라고 부른다.
그런데 몇 번을 넘기고 턴디시를 교체하느냐 하는 것은 생산성, 원가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많이 할수록 좋다. 이때 연연주의 횟수를 높이는 관건은 래들과 턴디시를 연결해 쇳물을 넘겨주는 노즐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노즐의 사용 횟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다. 노즐의 수명을 늘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턴디시 사용 횟수를 늘리려면 래들과 턴디시에 쇳물이 있는 상태에서 노즐을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이 GTC이다. 새롭게 개발한 GTC로 시운전한 결과는 어땠을까?
“21연연주까지 해봤습니다. 이제 GTC가 현장에 적용되면 턴디시 교체 시기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작업 속도, 기능 향상 모두를 노릴 수 있을 겁니다.”
포스코에서 명장이라는 제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한병하 명장. 그래서 그는 ‘누구라도 명장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또 아무나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만 그 기회가 성큼 다가온다고 본단다. 주위 동료 선후배들과의 원만한 관계 역시 필수적이라고.
이제 설비의 설계에서 정비까지 연주의 모든 것은 ‘메이드 바이 포스코(Made by POSCO)’다. 기술수출까지 한다. 그 중심에 선 한병하 명장. 지금까지의 업적도 놀랍지만 그만큼 앞으로 그의 행보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포스코의길, 명장의道] 포스코명장 특별인터뷰 모아보기
1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2편 : 광양제철소 제강부 조길동 명장
3편 : 포항제철소 열연부 권영국 명장
4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신승철 명장
5편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김차진 명장
6편 : 광양제철소 EIC기술부 김성남 명장
7편 : 포항제철소 후판부 이영춘 명장
8편 : 광양제철소 화성부 김제성 명장
9편 :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서광일 명장
10편 : 포항제철소 제강설비부 남태규 명장
11편 : 광양제철소 제선부 배동석 명장
12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