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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⑩] 제강설비 핵심기술, 역수출 신화 쓰다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⑩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⑩] 제강설비 핵심기술, 역수출 신화 쓰다

2022/09/14

이미지 좌측 상단에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10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에 '길' 이라는 큰 글씨 우측에 '포스코의' 와 '명장의'가 각각 써있다. 그리고 좌측엔 한자 길도가 써있다. 그 아래에 제강설비 핵심기술, 역수출 신화 쓰다 남태규 명장 포항제철소 제강설비부라고 이어서 써있으며 이미지 우측에는 흰색 안전모와 안경을 쓴 남성이 팔짱을 끼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포스코 현장 기술인 최고의 영예이자 롤모델인 포스코명장(名匠).
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흔히들 제강 부문을 ‘제철소의 꽃’이라고 한다. 제철소의 생산량도 제강 부문에서의 생산량인 조강량으로 표시한다.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외적으로도 화려해서 뉴스 등에서 제철소를 보여줄 때 화려한 불꽃이 튀어 오르는 전로를 소개하곤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누가 뭐라 해도 제강 부문 포스코 제일인자(第一人者)이자 우리나라에서 제1인자인 남태규 명장의 자부심이 어떠할까?

“제철소에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곳은 없습니다. 어느 한 군데라도 비끗하면 전부 망하는 거고, 어느 곳 할 것 없이 전부가 최고, 최선이어야만 최종 제품이 됩니다.”

잘못짚은 걸까? 아니면 겸손의 표현인 걸까?

“자부심이란 표현은 좀 뭣하고, 자존심은 있습니다. 넓게는 철강인으로서의 자존심, 좁게는 제강인으로서의 자존심이라고 해두죠. 밖에서 그렇게들 제강, 제강하는데 그에 걸맞은 책임감은 분명히 있다고 봐야죠.”

그는 제강 부문이 생산하는 쇳물인 용강 품질과 그 용강을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있어서 포스코가 세계 최고가 되는데 젊음을 바친 진정한 철강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걸맞은 자존심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철소에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곳은 없습니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전부가 최고, 최선이어야만 최종 제품이 됩니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지상 22미터를 수없이 오르내린 끝에 해결책을 찾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그의 직장생활은 고난과 극복이 한없이 교차하는 삶이었다. 어려웠던, 그러나 보람을 느꼈던 일을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기억을 더듬는다.

“전로는 작업 공간이 수직으로 되어있습니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할 일이 많다는 거죠. 쉽게 설명하자면, 전로는 펄펄 끓는 쇳물인 용강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데요. 여기에 막대기처럼 생긴 것 2개가 위로부터 내려와 작업을 합니다. 하나는 ‘메인랜스(main lens)’로 용강에 산소를 불어넣는 ‘취련(吹鍊)’이라는 작업을 하고, 또 하나는 ‘서브랜스’로 용강에 살짝 담겼다가 나오면서 용강의 성분, 온도 등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졸병이던 시절 이 서브랜스가 정말 악마 같았어요. 말썽도 자주 일으키고, 한번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럴 때면 직원들은 차라리 휴가를 내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죠.”

제철소 공사 현장 앞에서 파란 작업복, 흰 안전모,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 네 명의 남자가 일렬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은 순수한 ‘철(Iron)’이다. 아직 현대문명을 지탱하는 소재인 ‘철강(Steel)’이 되지는 못한 상태다. 쇳물은 제강공장 전로에 넣고, 온도를 1700도까지 올리면서 산소·부원료·합금철 등을 넣어가며 최종 제품이 되도록 성분을 조정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취련’이라고 한다. 80% 정도 취련이 진행됐을 때 명장이 이야기하는 문제의 작업이 시작된다.

서브랜스를 전로 안 용강 속에 넣어 온도와 탄소량을 측정해서 운전실 컴퓨터로 보내면 운전자가 데이터를 보고 취련을 더할 것인지, 마칠 것인지를 결정한다. 또 취련이 끝나면 서브랜스는 다시 한번 용강 속으로 들어가 온도, 산소량을 측정해 그 값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데, 이때 측정된 온도와 성분은 후공정인 탈가스설비와 승온설비를 거쳐 연주 조업이나 슬래브, 블룸을 생산하는 조업에서 활용한다. 한마디로 서브랜스는 용강의 최종 품질을 책임지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서브랜스 작동에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측정값을 운전자에게 보내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태규 명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서브랜스의 작동방식에 있었다. 서브랜스가 데이터를 측정해 보내려면 센서를 달고 있어야 한다. 이 센서를 ‘프로브(probe)’라고 하는데 워낙 고온에 담기다 보니 한번 용강에 들어가서 데이터를 측정하고 나면 수명을 다하게 된다. 일회용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서브랜스는 용강에 정확한 깊이로, 정확한 시간 동안만 담겨있어야 한다. 정확하게는 1미터 깊이에 5초 동안 머물도록 조종해야 한다.

“문제는 서브랜스가 공중 높은 곳에 머물다가 전로의 용강 표면으로부터 1미터 깊이까지만 정확하게 이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서브랜스는 용강 표면에서 22미터 상공에 머물러 있으므로, 용강 표면까지 22미터를 이동하고 거기서 1미터 더 들어가야 하는데요. 전로 내부의 깊이가 조업을 반복함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프로브를 서브랜스에 장착할 때마다 서브랜스 이동거리인 ‘22미터’가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설비 담당자가 매번 정확한 위치를 찾아 이동거리를 조정해야만 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운전자가 작업하는 곳은 1층, 지상 0미터인 반면 이동거리 조정은 7층, 지상 22미터 상공에서 이뤄진다. 작업자가 22미터 상공에서 작업하면서 지상에 있는 운전자와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무선장비로 교신하는 것도 아닌 데다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고장 나기 일쑤여서 작업자는 7층 높이를 수시로, 그것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수십 번 오르내리는 것은 기본, 약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전로 내에 들어가는 정확한 길이를 세팅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브랜스 수리를 마치고 집에 가면 코피가 나기도 하고, 다리에 쥐가 나서 그대로 쓰러져 잠든 적도 많았어요. 하루는 제가 자면서 하도 잠꼬대를 하니까 아내가 ‘무슨 큰일이 났나?’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에 극복하지 못할지라도 고난이 반복될수록 극복의 실마리가 쌓여가고, 결국에는 완전한 극복을 이룬다.라고 쓰인 글꼴박스

어떤 사람은 고난을 마주하면 상황을 원망한다. 또는 그 상황을 모면할 궁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때론 요령 있게 그 상황을 모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길다. 그러한 상황은 바닷가 파도처럼 밀려가는 듯하면서 또다시 밀려든다. 그때마다 원망하고, 요령 부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리가 없다. 결국 고난에 굴복하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고난을 극복할 궁리를 한다. 상황을 외면하는 것보다 아프고, 힘겨운 결정일 테지만, 이를 통해 극복의 실마리를 쌓아간다. 한 번에 극복하지 못할 지라도 고난이 반복될수록 극복의 실마리가 쌓여가고, 결국에는 완전한 극복을 이룬다. 이제 그에게는 동일한 류의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며, 그가 서있는 자리는 예전의 자리가 아니다. 똑같은 높이의 파도는 그의 신발을 적시지 못한다. 그가 바로 남태규 명장이다.

파란색 작업복과 흰 안전모를 쓴 남성 세 명이 모여있으며, 한 명이 도면도를 들고서 두 명에게 설명하는 모습이다.

“서브랜스 설비구조도와 취급설명서를 수도 없이 들여다봤습니다.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던 어느 날 ‘이거다’ 싶은 순간이 오더라고요. 방법은 서브랜스 이동거리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디지털 위치 검출기 도입이었습니다. 그 결과 프로브 교체 때마다 생기는 서브랜스 이동거리 오차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서브랜스 위치 디지털화,,, 용강 '온도·성분' 단 한 번에 라고 쓰인 글꼴박스

이뿐만 아니다. 당시 서브랜스의 기준위치를 검출하는 장치는 지나가면서 ‘툭 치는’ 형태의 스트라이크형 터치바였는데 이 터치바가 서브랜스 작동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여 검출한 기준위치가 흔들리곤 했다. 이에 그는 검출장치가 물리적으로 닿는 방식이 아닌, 물체가 접근함에 따라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 즉 무접점 방식으로 위치를 검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오차가 사라졌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고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손재주가 좋아 누군가 버린 것을 새것처럼 고쳐놓기도 했다. 한 번은 옆집 친구가 텔레비전을 샀다면서 고장 난 라디오를 버렸다. 그는 몰래 그걸 주워다가 고치고, 칠을 해서 새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밭에서 오실 때에 맞춰 틀어놓았다. 어머니는 라디오를 보시고는 아버지가 산 걸로 착각하셨지만, 아들이 ‘버린 것을 고쳐놓았다’고 말하자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런 손재주로 기술자가 될 생각 말고, 공부 많이 해서 의사, 박사가 돼야 우리 집이 살지. 이 녀석아!”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라디오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시던 어머니, 그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기쁘고, 힘이 났다고 회상했다.

일본 슈퍼바이저도 인정한 설비개선 실력 이라고 쓰인 글꼴박스

남태규 명장이 설비개선을 반복해나가자 주변으로부터 우려 아닌 우려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특히 관리자들의 걱정이 컸다. 생산성을 높이고, 문제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일단 설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할 책임을 맡은 관리자들의 우려는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쓸데없이 잘 돌아가는 설비에 손대지 마라. 검증되지 않은 방식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일본 사람들이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로 최적으로 세팅해둔 건데 경험도 일천한 우리가 손대는 것은 무리다. 괜히 공장 세우지 말고, 하던 대로 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남태규 명장은 동의할 수 없었다. ‘일본인이 한 것이 개선의 여지가 없는 최적의 해법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이나 우리나 영원히 미완성의 존재이고, 그러니까 그들 또한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개선하고 검증하길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가 개선을 시도하자 일본 슈퍼바이저들은 처음에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일본말로 “나무상, 이찌방데스요! 이찌방.(南さん 一番ですよ. 一番.)”이라면서 엄지를 척하니 치켜세웠다고 한다.

생각은 생각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실천에 옮겨야죠 라고 쓰인 글꼴박스

남태규 명장이 서브랜스 리밋스위치 자동조절장치를 개발해내면서 3명이 3시간 동안 할 일을 2명이 10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 획기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성과는 현재 1·2·3 제강 모두에 적용돼 포스코의 표준이 됐다. 이러한 뚝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은 생각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실천에 옮겨야죠. 물론 무모하게 실천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죠. 준비는 결과를 좌우하니까요. 제가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비결이라면 실천과 준비를 중시한 것도 하나의 비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형사고를 남긴 새로운 시도가 기술 역수출의 발판 마련 이라고 쓰인 글꼴박스

제철소에서 가장 큰 사고는 쇳물이 유출되는 사고다. 과거 포스코가 태동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터진 제강사고는 포스코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대형사고. 남태규 명장도 비슷한 사고를 친 경험이 있다.

전로가 취련을 마치면 용강을 래들에 옮겨 부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래들을 아래에 두고 전로를 기울여 붓듯이 용강을 래들로 옮긴다. 전로를 이렇게 기울여주는 장치가 ‘전로경동설비’다. 그런데 전로 크기를 생각하면 이 전로를 기울이는 모터의 힘과 정교함 또한 상상 이상이어야 한다. 정교하게 하려면 일종의 컨트롤 장치도 필요하다. 작업자가 기울이도록 조치하면 전로가 기울어지고, 멈추도록 조치하면 전로도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로 안에 가득한 펄펄 끓는 용강이 공장 내부로 튀거나 흘러내릴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종종 말썽을 일으킨다.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는 미세한 장치의 접점에 일종의 전기 불꽃인 ‘아크(arc)’가 생기곤 하는데 그때 컨트롤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태규 명장은 ‘이 부분을 아크가 생기지 않도록 진공관 속에 넣자. 진공에서는 아크가 생기지 않을 테니’라고 생각했다. 아크 문제를 해결하면 작업자가 정교하게 전로를 컨트롤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었다. 이론은 완벽했고, 시험운전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실제 조업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진공관이 터져버린 겁니다. 상상하기 싫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죠. 용강유출 사고가 난 겁니다. 당시 사고로 전로를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세워야 했고, 용강도 15톤이나 유출됐습니다. 그야말로 초대형 사고죠. 면직징계를 받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정말 암담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사위원회는 오히려 남태규 명장을 위로했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개선으로 회사에 끼친 유익함이 이번 사고로 끼친 해로움을 크게 앞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개선을 위해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리스크를 스스로 짊어졌으니 징계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구두경고로 상황은 마무리됐다. 당시 정비과장은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두 번 실패를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개선의 결과는 놀라웠다. 일본조차 남태규의 방식을 따라하게 됐으니 말이다. 일본인 슈퍼바이저가 놀라는 일, 일본이 일하던 방식을 바꾸는 일. 그 역수출의 놀라운 성과는 남태규 명장의 실력을 반증한다.

전압 설비시설이 줄지어 있는 전기실에서 한 남성이 주황색 안전보호복을 입고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물인터넷으로 전기실 안전출입시스템 구축이라고 쓰인 글꼴박스

자기 자랑을 쑥스러워하는 남태규 명장도 살짝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전기실 안전출입관리시스템’이 그것이다. 전기실은 높은 전압의 설비가 줄지어 있는 장소. 만일 그곳에서 사고가 난다면 사고의 규모도 문제지만, 제철소 전체 전기공급이 끊기는 총체적 재난을 겪을 수 있다. 더욱이 이곳에서 전기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곳 출입은 작업이든, 견학이든 몇 단계에 걸친 엄격한 출입 관리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계라는 것이 오프라인상으로 사람과 대면하고 검증하는 방식이라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또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 순간의 방심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에 남태규 명장은 명장이 되기 전인 2014년부터 이 출입관리를 전자동화로 바꿀 결심을 했다. 온라인상으로 체크할 것은 체크하고, 출입문 개방 등의 안전관리가 가능하게 했다. 대면으로 해야 할 일은 화상통화 등으로 해결하고, 감시체계도 화상으로 해결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사물인터넷을 당시부터 구현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겠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2020년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또 워낙 첨단 시스템이다 보니 해외에 있는 포스코 그룹사와 법인들도 모두 이 시스템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동료들이 제 각기 실력을 발휘해 이뤄낸 값진 결과물입니다. 제겐 친구와 같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 힘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웠을 일이지요. 더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파란 작업복과 흰 안전모를 쓴 남성이 고압 전기실 앞에 위치한 모니터 화면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남태규 명장은 전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일방적인 전수보다 효과적인 전수를 모색한다. 그래서 ‘포스튜브’를 활용한 전수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의 희망대로 그가 보유한 모든 노하우가 끊김 없이, 유실됨 없이 오롯이 포스코의 현장에 남아주길 기대한다.

 남태규 명장은 이라고 쓰인 제목아래 안경을 쓴 남성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미니 인터뷰가 실려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9년 경북 영덕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5년 영천으로 이사와 초·중학교를 영천에서 보낸 뒤, 포항공고 전기과에 진학하면서 전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기술인으로서의 삶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78년 1월, 포스코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처음 발을 디딘 곳은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이었으나 1981년 11월, 정비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비인으로 변신했다. 광양제철소 화재 복구와 한보철강, 포항 3제강공장 건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와 브라질 CSP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제철소 전기설비에 대한 깊이 있는 노하우를 쌓았다. 특허 15건, 우수제안 32건, 일반제안 1800건, 지식등록 156건 등을 통해 전기분야 기술개발을 선도해온 그는 제철소 제안왕(1994년), 대한민국 품질명장(1994년), 전국품질관리발표 은상(1995년), 올해의 포철인 패밀리대상(1998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상을 휩쓸고, 2002년에는 설비개선과 혁신 분야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한민국 철강기능상(2007년), 포항제철소 정비명인(2014년) 등을 거쳐 2017년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됐다. 현재는 1·2·3 제강공장 설비장애 복구와 재발방지 대책수립에 힘을 쏟는 한편, 설비 투자와 개선 과제를 통해 원가 절감, 생산성 향상 , 안전성 향상에 주력하면서 축적해 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이 콘텐츠는 포스코그룹 통합 소통채널 ‘포스코투데이’를 토대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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