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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⑨] 상식을 뛰어넘는 엉뚱함, 위대한 전진의 씨앗이 되다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⑨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⑨] 상식을 뛰어넘는 엉뚱함, 위대한 전진의 씨앗이 되다

2022/08/30

이미지 좌측 상단에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9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에 '길' 이라는 큰 글씨 우측에 '포스코의' 와 '명장의'가 각각 써있다. 그리고 좌측엔 한자 길도가 써있다. 그 아래에 상식을 뛰어넘는 엉뚱함, 위대한 전진의 씨앗이 되다 서광일 명장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라고 이어서 써있으며 이미지 좌측에는 흰색 안전모와 안경을 쓴 남성이 작은 모니터 화면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포스코 현장 기술인 최고의 영예이자 롤모델인 포스코명장(名匠).
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엉뚱하다’는 말은 진지한 상황에서는 그리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단어다. 현재의 생각과 상식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엉뚱하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시야를 약간만 넓혀보자. 세상은 엉뚱한 사람들의 참신한 생각 때문에 앞으로 나아갔다. 일론 머스크가 발사했던 로켓을 재활용하겠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두가 상식 수준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이나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엉뚱함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기에 현재의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엉뚱함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속에 매우 견고한 뭔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서광일 명장은 ‘엉뚱하다’라는 표현과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그 스스로도 이렇게 말한다. “엉뚱하다는 것, 나쁜 것도 아니고 모자란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도 엉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말할 때 ‘이 엉뚱함을 빼면 뭐가 남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엉뚱함으로 현장을 혁신해온 인물, 서광일 명장을 만나본다.

새로운 방식으로 뽑은 '시편(試片)'은 곧 완벽한 '제품(製品)'이었다.라고 쓰인 글꼴박스

서광일 명장이 최고로 꼽는 본인의 업무 성과 중 한 가지도 이런 엉뚱함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2017년 전기강판 3ZRM 시운전을 떠올렸다. 당시 그와 동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시운전을 해냈다. 여기에는 단순한 시운전 성공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 무렵 전기강판 분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와 마주하고 있었다. 전기강판을 사용하는 분야 중 하나가 ‘모터’인데, 에너지 소모는 적고 효율은 좋은 모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었다. 이런 효율적인 모터를 만들려면 모터에 쓰이는 전기강판도 고품질로 생산해야 했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새로운 설비인 20단 압연기를 도입했다. 문제는 설비도, 제품도 그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처음 써 보는 새로운 설비로 한 번도 압연해낸 경험이 없던 최고급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생산하려면, 설비를 최적의 설정값으로 세팅해야 했다. 그런데 최적값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최적값을 찾아내야 했는데, 고가의 장비를 써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소재가 압연과정에서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찢어진 소재 때문에 압연기의 롤까지 손상되고 롤도 교체해야 했다. 제품은 제품대로 설비는 설비대로 다 문제가 생겨, 시간과 인력, 비용을 모두 낭비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원하는 제품을 어떻게 하면 생산할 수 있을지 찾아야 하는데, 아무런 결과치를 얻지 못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때, 서광일 명장이 남다른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시뮬레이션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반대가 심하니까 저도 겁이 나긴 했습니다만, 용기를 냈습니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압연기를 돌리기는 하는데 소재를 집어넣지 않고 돌리면서 각종 수치들을 체크해 보는 거지요. 그러자 다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실제로 해보지도 않고 ‘그게 되겠나?’ 이런 반응이었던 거죠. 시뮬레이션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 일정으로,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장 직원들은 쓸데없이 시간만 일주일 날리는 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서광일 명장은 자신이 있었다. 현장의 반대가 워낙 심해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용기를 냈다. 그때 힘이 된 건 그의 편에 서줬던 동료들이었다. 한번 결심하면 쉽게 물러서지 않는 서광일 명장의 스타일을 아는 팀장은 그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세상을 바꾸는 엉뚱하고 신선한 발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엉뚱함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뮬레이션으로 찾아낸 최적의 결괏값으로 실제 소재를 넣고 압연을 해보니 아무런 문제 없이 시편(試片)이 나왔다. 놀랍게도 ‘시편’이라기보다 곧바로 그냥 납품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제품(製品)’이었다. 현장의 모두가 놀라고 설비 메이커도 놀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을 주장한 무모하리만치 엉뚱한 그의 시도는 이 분야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현장에서는 이런 시뮬레이션 방식을 도입해서 적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설비를 알고자 공부한 일본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서광일 명장은 공부벌레다. 그의 엉뚱하고 참신한 발상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영감’이 아니라 공부해서 익힌 지식에서 나온다. 그러니 공부벌레가 될 수밖에.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된 재미있는 계기도 있다.

“제가 처음 냉연 쪽에서 일할 때, 그때는 우리는 모든 게 미숙했고 일본이 많이 앞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데, 일본 기술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들을 잘 알고 하더라고요. 자기 분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 기술자들로부터 배울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어가 문제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바이어니까 ‘갑’이어야 하고, ‘을’인 일본 기술자들이 우리말을 배우면서 일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그들에게서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려면 제가 일본어를 배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속성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학창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조금 공부하긴 했지만 문법만 조금 아는 수준일 뿐, 실제 일본인과 회화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어찌나 열심히였던지 당시 그가 살던 월세방 주인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 성실하고 기특한 청년’이라며 자신의 조카와 중매를 설 정도였다. 당시 그 조카가 지금 서광일 명장의 아내가 됐으니, 공부하는 자세는 여러모로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가져왔다고 해야겠다.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어학뿐만 아니라 다른 배움에도 차츰 눈을 떴고 자신감도 붙었다. 일본을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일본을 배우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일본어를 배움으로써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보통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죠. 맞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잘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저는 하루 한 개씩이라도 무언가를 꼭 배우려고 했습니다. 보통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죠. 맞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잘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두면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명장은 외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물어볼 사람이 없는데, 주변에서는 ‘명장이니까 당연히 알겠지’하며 다가온다. 그러니 더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정작 명장이 되고 난 후 실력이 더 늘었다. 관리 업무에서 해방되면서 공부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공부를 통해서 어떤 일에 정통하게 되면, 이는 곧 참신함, 엉뚱함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자 자양분이 된다. 엉뚱함이 말 그대로 엉뚱하기만 하면 무모하기만 하고 일이나 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에 나온 엉뚱함이라면, 이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1냉연 2차 합리화, 1냉연 신예화를 이끈 정비인이자 조업인이라고 쓰인 글꼴박스

공부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을 바꿔온 서광일 명장에게는 자주 새롭고 놀라운 상황이 찾아오곤 했다. 그는 정비 분야로 포스코에 입사한 ‘정비인’이다. 그런데, 포스코에서 보낸 40여 년 인생은 그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선사했다. 바로 조업인이라는 제2의 정체성이다.

지금은 설비투자 업무를 전문 스태프 분야에서 맡아서 하지만, 예전에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상정하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진행했었다. 그는 그런 일에 20년가량을 몸담았다. 설비 도입의 필요성이 생기면, 어떤 설비가 필요할지 검토하는 일부터 설비 메이커를 찾아내 협의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또, 설비가 들어오면 설치부터 설비 가동, 나아가 정상조업 달성까지 전 과정에 개입했다. 그는 이렇게 1냉연 2차 합리화, 1냉연 신예화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저는 정비인이기도 하고 조업인이기도 합니다. 설비투자 업무를 맡는 전문 스태프가 없었던 예전에는 설비 도입의 필요성이 생기면, 어떤 설비가 필요할지 검토하는 일부터 설비 메이커를 찾아내 협의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죠.라고 쓰인 글꼴박스

“가끔 가만히 생각하면 저도 제 정체성이 아리송합니다. 저는 정비인이기도 하고 조업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잡하게 이런 경계를 가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포스코에서 일한 40년 인생을 곰곰이 되돌아보던 서광일 명장이 이렇게 되묻는다. 그의 말에서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그의 인생철학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다. 그는 설비도, 일도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기술인인 그는 왜 ‘단순함’을 강조하는 것일까?

“조업 현장을 보면 더 잘해보자는 의미로 뭔가를 자꾸 추가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설비나 장치들은 나름대로 다 필요가 있고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기본에 뭔가 자꾸 덕지덕지 붙이다 보면 그 자체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이 그 복잡함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해결 방법을 고민합니다. 비유하자면, 병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증상으로 나타난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어떻게 해결했다 싶어도 문제가 또다시 반복되고 맙니다. 이런 경우, 저는 그 복잡함을 과감하게 쳐내고 단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처음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은 경악을 하죠.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는 식으로 항의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말 거짓말처럼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경우가 많습니다.”

간단하게 만드는 것 역시 새로운 시도만큼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는 공부해서 쌓은 지식과 깊은 고민에서 나온다. 서광일 명장이 보여준 과감한 행보의 바탕에는 그런 노력들이 있다.

포스코명장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명장이 되고자... 라고 쓰인 글꼴박스

그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하나 더 있다. 후배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존경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저에게 강조하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참되게 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참되다는 게 참 막연해서 이건 아직도 제게 숙제입니다.”

서광일 명장은 살면서 ‘참’을 추구한다. 일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요즘 후배들 말로 ‘찐’이 되고자 한다. 사람을 만날 때나 놀 때도, 그는 진짜 서광일을 그대로 드러내려 노력한다.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이들도 진심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솔직하게 마음을 열면 상대도 다가온다는 그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버지께서 늘 ‘참되게 살라’, ‘모임에 불려 나가는 사람이 돼라’고 하셨죠. 일에서든 삶에서든 ‘참’을 추구하고, 진솔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라는 뜻이겠지요.라고 쓰인 글꼴박스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참’을 추구한다. 그는 ‘적당히’, ‘대충대충’을 아주 싫어한다. 어떤 문제를 임시변통으로 적당히 넘어가면,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를 날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설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뿌리를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다시 재발한다. 그것이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다.

“아버님이 강조한 또 하나는 ‘모임에 불려 나가는 사람이 돼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관계가 참 중요하단 것을 말씀하신 거였어요.”

포스코 안전모를 쓰고 보호 장갑을 낀채 기계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남성 사진 옆에 미니 인터뷰가 실려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장이 되고 보니, 문제가 있는 현장에 호출되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면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그를 기다리는 어려운 장애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장 인력들과의 관계였다. 현장 인력들은 본인들이 상황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노출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걱정이 있어 적극적으로 협조하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호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또, 아무리 명장이라도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즉시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곤 했다. 해답은 결국, ‘인간관계’에 있다. 서광일 명장은 현장 동료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력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으려 노력했다.

“이럴 때는 윈윈(win-win) 할 수 있는 태도로 접근해야 되더라고요. 그들이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 불편해하는 부분들에 초점을 맞춰 해결하면서 마음을 풀어나가면 다른 것들도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엉뚱하다’고 표현하는 사람, ‘참’을 지향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서광일 명장. 그에게서 우리는 ‘포스코명장’뿐만 아니라 ‘인생의 명장’이라는 영롱한 아우라(aura)를 목격할 수 있다.

서광일 명장은 이라는 제목 아아래 포스코 안전모를 쓴 남성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인터뷰가 실려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4년 포항시 송라면 조사리에서 2남1 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마치고, 포철공고 전기계장정비과에 진학했다. 1982년 4월, 포스코에 입사하면서 철강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처음 배치된 부서는 압연정비부 냉연전강정비과였으나, 2006년 5월 전기강판정비과로 근무부서를 옮겼다. 그 뒤로 EIC기술부, 압연설비그룹 등을 거쳐 2019년 1월 압연설비부 설비안전섹션으로 보직변경 후 현재까지 전기제어수리 업무를 하고 있다. 타고난 성실성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포스코의 전기강판 조업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냉간압연제어분야 최고 권위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는 제철소장표창(3회), 회장표창(2회) 등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2009년 기계정비산업기사를 취득했고, 2015년에는 압연기능장을 취득하는 등 자기 계발에도 부지런한 모습으로 후배 사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콘텐츠는 포스코그룹 통합 소통채널 ‘포스코투데이’를 토대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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