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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⑦] 포항소건설 이주민에서 최고 후판 전문가로 다시 품은 포스코의 꿈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⑦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⑦] 포항소건설 이주민에서 최고 후판 전문가로 다시 품은 포스코의 꿈

2022/08/11

이미지 좌측 상단에 포스코명장 특별 인터뷰 7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에 '길' 이라는 큰 글씨 우측에 '포스코의' 와 '명장의'가 각각 써있다. 그리고 좌측엔 한자 길도가 써있다. 그 아래에 포항소건설 이주민에서 최고 후판 전문가로 다시 품은 포스코의 꿈 이영춘 명장 포항제철소 후판부라고 이어서 써있으며 이미지 우측에는 흰색 안전모와 안경을 쓴 남성이 공사현자에 서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포스코 현장 기술인 최고의 영예이자 롤모델인 포스코명장(名匠).
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제철소에서 후판은 단순해 보이지만 섬세한 손길을 요하면서, 고부가가치강으로 생산되는 다이내믹한 제품이기도 하다. 이영춘 명장은 다양한 후판 제품을 우수한 품질로 만들어내려면 조업인력의 노하우와 기술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부문과 달리 후판은 조업자의 기술 수준과 직무 능력이 제조 가능한 제품의 범위와 품질을 크게 좌우합니다. 뛰어난 숙련 인력이 있고 없고가 정말 중요한 분야지요.” 그렇다면 포스코의 후판 제조 기술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일까.

후판 조업 기술과 노하우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라고 쓰인 글꼴박스

“저는 포스코 후판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조심스러우면서도 자부심 넘치는 대답이다. 과연 그럴까. 자부심의 근거를 하나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후판의 품질이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 닥치면 고품질 제품 주문이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다른 철강사도 생산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제품은 결국 가격경쟁력이 승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과 같은 후발 철강사와 가격 경쟁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다른 철강사가 생산하지 못하는 제품의 주문이 우리에게 몰리기 때문에 거기서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수요가 늘어난 후판 제품이 바로 4~6㎜ 두께의 초극박재나 WTP(World Top Premium) 같은 고품질 제품이었다. 포스코로서도 이런 제품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준비 상황이었다. 아직은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적절히 대응해 그런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울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초극박재의 경우만 해도 불량률이 무려 40%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문제 해결이 시급했다. 후판기술섹션, EIC부, 후판조업 부문이 힘을 합쳐 TFT를 구성하고, 이영춘 명장은 후판조업 부문을 대표해서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롤 얼라인먼트 개선, 페어 크로스 설비 응용 등 설비개선만 150여 건 라고 쓰인 글꼴박스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롤 얼라인먼트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후판과 같은 소재를 ‘수제비를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이라고 생각하고,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밀어내는 것을 ‘밀방망이’라고 가정해보자. 밀방망이로 밀가루 반죽을 눌러 밀어낼 때 밀방망이 양끝을 두 손으로 잡고 밀어낸다고 하면, 손으로 밀방망이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너무 꽉 쥐면 방망이가 굴러가지 않고, 너무 헐렁하게 쥐면 누르는 힘을 밀가루 반죽에 전달할 수 없어 반죽이 얇고 균일하게 펴지지 않고 울퉁불퉁해진다.

후판을 압연하는 롤의 원리도 이와 같다. 롤을 잡아주는 장치가 롤의 양끝에 걸리는데, 이 장치가 롤을 너무 꽉 잡으면 롤이 제 역할을 해내기 어렵다. 반면에 롤을 너무 헐겁게 잡으면 압연을 하면서 롤이 흔들려 제대로 압연을 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압연기 설비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롤을 잡고 있는 장치는 적당한 유격을 두고 롤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롤을 설치할 때 이 적당한 간격을 두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때 활용한 것이 바로 페어 크로스(pair cross)설비입니다. 롤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 위, 아래 롤은 조금씩 엇갈려서 엑스(X) 자 형태로 움직이며 압연을 합니다. 그렇게 롤을 움직이게 해주는 장치가 페어 크로스인데요. 페어 크로스 설비가 밀고 당기며 움직이는 장치니 롤을 설치할 때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이 설비를 이용해서 롤을 최대한 꽉 잡아놓고, 필요한 유격이 되도록 조금 벌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페어 크로스 설비는 이러한 용도로 쓰는 장치가 아니었지만 이영춘 명장의 아이디어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 압연기 롤 얼라인먼트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롤 얼라인먼트를 최적화하는 게 가능해지니 설비 강건화도 일사천리였다. 그는 TFT 참여 인력과 협업해 무려 150여 건의 설비개선을 이뤄냈다. 더불어 모델 분야에서도 성과를 냈다.

공사 현장 속에서 안전보호복과 안전모를 쓴 남성이 무전기를 들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모습이다

“후판은 가역식 압연입니다. 다른 압연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종 두께로 압연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압연을 하게 되지요. 다른 부문에서는 압연기가 한 줄로 쭉 늘어서 있어서 소재가 그 압연기를 모두 통과하면 최종 제품, 즉 원하는 두께를 지닌 제품이 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후판은 압연기가 하나이고, 소재는 이 한 대의 압연기를 앞에서 뒤로 통과했다가 다시 뒤에서 앞으로 통과하는 식으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원하는 두께까지 압연이 됩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압연하는 압력 등 제어 수치를 조정해서 스케줄을 최적화해야만 원하는 품질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를 압연 패스 스케줄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위치 제어 방식에서 압연력 제어 방식으로 압연 패스 스케줄을 전환하고, 가역식 후판압연기의 최적 패스 스케줄을 확립했습니다. 민감하고 예측이 어려워 경험치에 크게 의존했어야 했던 기존 조업방식을 바꿔내면서 새롭게 업무를 맡은 직원도 조금만 익히면 차질 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오히려 ’인생의 전성기’였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이렇게 이영춘 명장은 포항제철소 후판의 자부심을 담금질해나갔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피곤한 작업이었을 텐데, 그 시절에 대한 이영춘 명장의 기억은 예상과 달랐다.

“일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부문과 한 몸처럼 협업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고. 2010년 1월부터 여섯 달을 이렇게 미친 듯이 일했죠.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친구들과 한잔하다가도 회사에 다시 돌아가곤 했어요. 그럴 때면 친구들은 혀를 차기도 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지금이 전성기’라는 말을 하는데, 난 지금이 그 ‘전성기’인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땐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결국 40% 안팎이었던 초극박재 불량률은 제로(Zero)가 됐다. 이제는 불량률보다 ‘교정조차 하지 않고 바로 생산한 소재를 제품으로 내놓는 것이 몇 퍼센트인가’를 따질 정도다. 조업 수준이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큼 달라진 것이다.

가치는 그 가치를 믿는 사람이 만드는 것일 뿐이죠. 저는 가치를 만드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라고 쓰인 글꼴박스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만으로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있다 한들 그런 전성기는 사실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주관적 보람 같은 것이 아닐까? 이영춘 명장은 도대체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일까 더욱더 궁금해졌다.

여러개의 모니터가 있는 상황실에서 남성 네분이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치관이라…. 세상 모든 것에는 원래 정해진 값이 있을 수가 없지요. 가치는 그 가치를 믿는 사람이 만드는 것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가치를 만드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역지사지하는 공감도 매우 중요할 것이고요.”

온 산을 뒤져 산삼을 캐고, ‘심봤다’를 외쳤지만 라고 쓰인 글꼴박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이 행동으로 옮겨진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그가 주임일 때였다.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한 동료가 늘 마음에 걸렸던 그는 반원 4명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고 산으로 들어갔다. 팀파워를 겸해 산삼을 직접 캐서 건강이 좋지 못한 그 동료에게 주자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참 뚱딴지같은 행동이었다. 반원들 중 누구 하나 산삼을 실제로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랑 사진 하나 구해 들고 무작정 산으로 갔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산신제도 지내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심마니도 어렵다는 산삼 채취가 쉬웠을 리 없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산신령이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산을 뒤지는 반원들의 정성을 갸륵하게 여기기라도 한 걸까?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진짜로 산삼을 캤다!’

“심봤다! 하고 목청이 터지게 외쳤습니다. 감격이었죠. 나중에 내려와서 한국심마니협회에서 검증까지 받았습니다. 10년에서 15년 사이 정도 되는 산삼이라더군요. 계획했던 대로 그 동료에게 전달했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렇게 큰소리치고 출발해서 못 캤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런데 지금 하는 이야기지만, 산삼은 필요하면 돈 주고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진짜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뱀도 너무 많았고요.”

달걀을 세운 콜럼버스의 기발함으로 엣저롤 교체방법 개선 라고 쓰인 글꼴박스

산삼 캐는 것만큼이나 업무에서도 특히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엣저 롤(Edger Roll)이라고 하는 롤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엣저 롤은 후판의 폭 방향을 잡아주려고 수직방향으로 서있는 롤인데 두 달에 한번 정도 교체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해서 긴장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 롤은 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형태여서 교체를 하려면 위에서 잡아서 수평방향으로 당긴 후 케이스에서 들어 올려 교체를 해야 했다. 그런데 롤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이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수평방향으로 당기는 것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크레인은 롤을 기울여주기만 하고, 사람이 그 틈을 노려 롤 옆쪽에 고임목을 집어넣고, 반대방향에서는 자키를 이용해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롤을 수평방향으로 빼내야만 비로소 크레인이 롤을 들어 올려서 교체할 수 있었다.

안전모와 안전보호복을 착용하고 있는 남성이 쭈그려 앉아 기계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이걸 꼭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크레인이 롤을 수평으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롤을 그대로 두고 케이스를 벗겨내서 크레인은 롤을 들어 올리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허탈하리만큼 간단히 해결되더라고요. 이걸 사람이 할 때는 2~3시간 동안 진땀을 빼야 했는데, 지금은 10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게 됐습니다.”

달걀을 깨서 테이블에 세운 콜럼버스의 기발함, 칼로 싹둑 잘라서 꼬인 매듭을 풀어낸 알렉산더 대왕의 신박함과 비슷했다. 늘 보는 시각에서만 보기를 거부하고 고개를 돌려 다른 각도에서 봄으로써 문제 해결책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그의 개선안은 간단하지만 아니 간단해서 더욱 놀랍고, 경탄할만한 것이었다.

어떤 문제는 이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풀리지만, 또 어떤 문제는 집요하게 파고들고 연구해야만 하는 것도 있다. ‘롤러 테이블’ 관련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롤러 테이블은 압연기 앞과 뒤에 위치한, 소재가 굴러가는 통로다. 이 통로는 소재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작은 롤이 연이어 깔려있는데, 문제는 소재가 이 롤러 테이블을 통과할 때 소재 표면에 결함이 생기곤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롤에 생긴 흠집 때문이었다. 롤에 흠집이 생기는 이유는 단단한 소재가 롤러 테이블 위를 이동하면서 롤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소재의 경도가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다 보니 이런 문제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단단해진 소재가 롤러 테이블을 지나면서 롤에 흠집을 내고, 그 흠집은 또다시 다른 소재에 결함을 발생시켰다.

“결국 롤러 테이블의 롤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건 소재의 문제더군요. 경도를 높이는 거야 롤을 만드는 금속을 고크롬강으로 하면 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크롬을 12% 이상 되도록 하면 된다고 봤죠. 그런데 적용을 하고 보니,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도도 오르고 수분 부식에도 강해지긴 했는데, 끈끈하다고 할까요. 그런 성질이 생긴 겁니다. 소재가 롤러 테이블에 묻어나는 거죠. 그래서 경도는 유지하면서 끈끈한 성질을 없애려고 ‘왕수’를 써서 강제로 롤 표면을 살짝 부식시켜보니 효과가 있더군요. 크롬 함량을 낮추고 망간으로 경도 보전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어요. 후판조업, 후판정비섹션, 외부전문업체 등이 삼위일체가 되어 씨름한 끝에 해결한 케이스였습니다.”

이영춘 명장은 이렇게 소재에까지 이르는 깊은 연구와 이해가 필요한 문제 앞에서도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또 다른 과제는 소재에 녹이 생기는 문제였다. 녹은 스케일이라고 불리는데, 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열이 높으면 스케일도 두껍게 생기는데 이것이 소재를 깊이 파고들면서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열을 낮추면 되지만 그러면 압연 과정에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시간을 끄는 것은 생산성을 낮춘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공냉 방식과 수냉 방식 등 여러 해결책을 내놓았죠. 그중에서도 사이드 시프트 테이블(side shift table)이라는 대기 장소를 활용하는 방식이 생산성을 높이면서 스케일 제거에도 큰 효과를 냈습니다. 사이드 시프트 테이블은 압연 공정에서 살짝 빠져나와 별도의 장소에서 잠시 식도록 두는 장소라고 보면 됩니다. 사이드 시프트 테이블을 단순하게 활용하는 게 아니라 압연 중인 소재와 대기하는 소재, 다시 압연에 들어가는 소재 등이 어느 하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도록 타이트하게 스케줄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적용하는 게 중요한 거죠.”

롤 크라운을 통해 제품 품질을 확보하면서도 원가절감을 한 사례도 이영춘 명장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개선 성과 중 하나다.

롤은 중간 부분이 약간 볼록하다. 배불뚝이 모양이라고 할까? 그 볼록한 것을 크라운이라고 하는데, 처음 롤을 장착할 때 그렇게 만들어진 롤을 사용한다. 롤의 중간 부분이 배불뚝이가 되는 원인은 열 때문이기도 하다. 이영춘 명장은 롤의 중간, 볼록한 정도를 일반기준보다 더 볼록하게 하는 대신에 처음에는 수냉을 강화해 롤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일정기간 사용하면 롤의 볼록한 부분이 마모된다. 일반적인 롤이라면 교체를 해야겠지만 개선된 롤은 평소보다 열을 낮게 유지했던 탓에 이 시점에서 냉각을 완화하면 열에 의해 볼록한 부분, 즉 크라운이 살아난다. 이것을 열크라운이라고 부르는데, 열크라운을 이용하면 롤 수명이 연장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이영춘 명장이 내놓은 개선안에 따라 롤 수명은 대폭 연장됐고, 원가절감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는 2010년 스스로 전성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 이후 그는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옆에서 보는 이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의 전성기는 누가 봐도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포스코의 ‘오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한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 회사 일에 대충이란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라고 쓰인 글꼴박스

아는 것도 의심하고, 설명해보라 라고 쓰인 글꼴박스

그는 ‘의심하라’라는 말을 중시한다. 늘 하던 방식도 그에겐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심 말이다. 신입사원에게는 이렇게 강조한다.

“멘토에게 메모할 수 있는 메모장을 드리고 그곳에 글이든 그림이든 그리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해서 그 메모를 받으세요. 그리고 그걸 다시 풀어서 기록해보세요. 그럼 말로만 들을 때는 알 것 같았지만 모르는 내용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럼 다시 묻고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 알게 된 내용은 설명해 보세요. 설명하다 보면 또 모르는 게 나올 수 있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심해보고, 또 설명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마 느끼는 게 많을 겁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스로 포스코의 ‘오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하는 일에 한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내 회사 일에 대충이란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하는 일 하나하나는 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꽃’을 피우는 거지요.”

강판을 찍어내는 공사 현장 속에서 안전보호장비를 갖춘 남성 한분이 위에서 공장 전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포스코의 오너라고 생각하는 데는 남다른 사연도 있었다.

“어머니가 저를 가졌을 때, 아마 저는 지금 포항제철소 공장이 들어선 어디엔가 있었을 겁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되물으니, 부모님이 살던 곳에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오천읍으로 이사를 했으며, 이사하기 전 이영춘 명장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포항제철소 자리에서 잉태되어 제철소 밖에서 성장한 뒤, 다시 제철소로 들어왔습니다. 마치 연어가 강에서 치어로 살다가 바다에서 성장한 뒤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우문에 이영춘 명장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포스코가 경쟁력과 기술력으로 존경받는 100년 기업이란 지위를 누렸으면 합니다. 그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서 항상 도전적인 자세로 개선과 혁신을 이뤄가야겠지요. 특히 후판 WTP재 치수 확대와 형상 안정화, 에너지 원 단위 절감 개선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포스코 후판이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그에게 포스코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다. 질긴 실로 단단히 이어진 운명처럼 보였다.

이영춘 명장은...라고 쓰인 제목 아래 파란색 작업복은 입은 남성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인터뷰가 실려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9년 포항시 오천읍에서 태어났다.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곳 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포철공고 압연과에서 공부했으며, 1987년 4월 포스코에 입사해 지금까지 근무해오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삶은 포항이란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연 아닐 듯하다. 그는 냉연부 2냉연에서 첫발을 내디디며 기능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으나 1989년 2후판공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7년부터는 3후판공장에서 근무를 시작해 현재에 다다르며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후판인이 되었다. 2022년 명장의 자리에 오른 그는 창립기념모범사원(2014년), 올해의후판인(2014년) 등 굵직한 수상 경력에 본부장포상(2회), 부문장표창(2회), 부사장표창, 제철소장표창(5회), 부소장표창(9회) 등 2010년 이후에도 이루 헤아리기 힘든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학구열도 높아 열간·냉간 압연기능사, 열처리기능사, 금속재료시험기능사, 산업안전기사, IT e-Professional 1급 등 수많은 자격증으로 명장으로서의 전문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포스코그룹 통합 소통채널 ‘포스코투데이’를 토대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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