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정비인은 정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습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도 하고요.” 누구나 자신이 맡은 업무, 자신이 속한 분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김성남 명장이 정비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자부심은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했다. 자신이 이러저러한 성과를 냈다’ 하는 차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부심은 포스코의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뿌리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포스코 역사의 아픈 손가락이자 고난을 극복해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1977년 제강사고. 개인의 실수로 용선이 누출된 사고였지만 건설 초기, 건설과 조업을 병행하면서 어렵게 운영해가던 포스코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복구하려면 서너 달은 걸릴 거라던 일본 기술진의 말과 달리 포스코 정비인들을 주축으로 한 복구인력은 이 사고를 불과 34일 만에 극복해냈다. 이 사고 극복의 의지는 포스코 정비인들에게 하나의 DNA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김성남 명장 또한 이러한 정비인 중 하나다.
“정비인은 의사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정비인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후배들에게 꼭 공유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의사는 혈압을 재고, 혈액 검사를 하고, X-ray나 CT, MRI를 찍으면서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고치고, 그 치료법을 썼을 때 예후는 어떠할지를 고민하고, 모색합니다. 설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긴 설비는 환자, 정비인은 의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설비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상태를 체크해야 합니다. 이상 조짐이 보이면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해보고 그 결과를 조합해서 설비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의사가 진단부터 한 다음 치료를 하듯이 정비인은 설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먼저 판단한 다음 수리에 나섭니다.”
의사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후진 양성이다. 인턴, 레지던트 등 단계별로 교수급 의사의 지도 아래 유능한 의사로 커나간다. 김성남 명장도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남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개인적 역량이 뛰어난 후배들이 참 많아요. 우리 때는 왜 그렇게 하는지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일단 행동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또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즘 세대는 영민합니다. 그래서 포스코가 기술적 측면에서 쌓아온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김성남 명장이 걱정하는 것은 후배들의 자신감, 영민함이 자칫 개인 속에 갇혀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유기적으로 결합된 조직의 역량을 넘어설 수는 없어요. 그리고 조직이 제대로 시너지를 발휘하려면 조직을 구성한 개개인이 인간관계로 맺어져야 하죠. 개인에 함몰되는 건 도움을 주고받는 문제에도 해당됩니다. 요즘 젊은 직원들이 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거예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모자람을 고백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역할을 다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아닌 부분을 메워줄 것을 요구하는 당당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흔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때, 그 최선이라는 개념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능력인 경우가 많다. 도움을 요청하려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기적 관계를 찾아내거나, 평소 만들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김성남 명장이 이루어낸 대부분의 성과가 이러한 유기적 관계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중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터 절연 열화 진단 시스템’ 구축이다.
“포스코만큼 고전압 모터를 많이 쓰는 공장도 없을 겁니다. 제철소 현장에는 3000대가 넘는 모터가 있어요. 모터도 기계이다 보니 사용하다 보면 어느 부분이 낡아서 고장 납니다. 특히 고전압 모터는 절연 부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가는 열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게 고장의 주요 원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진단해서 열화 정도를 파악하고, 일정 수준 이상 열화가 진행되면 교체해야 하는데, 이 열화 정도를 정밀하게 진단해 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진단할 수가 없었죠.”
이에 김성남 명장은 상사를 조르고 졸라 값비싼 진단장비를 구매했다. 그러나 의욕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었다. 장비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바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전기에 관한 수많은 전문인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력과 관련 회사 관계자들에게 SOS를 쳤다. 한국전력 관련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그는 모터의 잔존 수명을 체크할 수 있는 전문가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아니었다.
앞서 정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준 사건이 1977년 제강사고라고 했다. 사실 그건 김성남이 직접 겪은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에게도 하나의 사건이 찾아왔다.
“1980년 일이었습니다. 포항제철소 1냉연공장에서 모터정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방차가 오고, 난리가 난 거예요. 화재가 났다기에 뛰어나가 보니,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조업하는 이들의 마음가짐 또한 우리 정비인과 다르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불을 끄려면 소방호스를 끌어와야 하는데 조업하는 직원 하나가 울면서 호스를 끌고 오더라고요. 순간 ‘아, 이 직원들이 설비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죠. 그렇게 화재를 진압한 뒤 저의 일이 시작됐습니다. 정비인의 자부심을 몸소 증명하려니 고달픈 건 어쩔 수 없더군요. 2교대로 20일을 정신없이 복구에 매달렸습니다.”
이뿐만 아니었다. 2013년 광양에서도 그는 또 한 번의 화재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2제강공장지하 공동구에 전기적 문제로 화재가 일어나 2제강공장의 전로 3기 모두 가동을 멈춰야 했다. 이때는 회사가 테스크포스팀(TFT)을 만들어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김성남 명장 역시 이 작업에 참여해 3개월 동안 직원들과 땀범벅이 돼가며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런 사고는 사고 자체로는 큰 불행이지만 얻는 것도 많습니다. 사고가 나면 왜 사고가 생겼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 과정에서 ‘케이블을 이렇게 포설하는 게 낫겠다, 방염처리를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 여러 방안들이 나옵니다. 반면교사가 돼준다고 할까요? 이 사고는 워낙 큰 사고다 보니 이후 새로운 기준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다른 공장에도 이러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야 했기에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됐는지 감독하고 확인하는 작업으로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새로운 기준은 포항에도 모두 적용됐지요.”
명장을 마주할 때면 ‘현장에 많은 기능인이 있는데 왜 당신이 명장이 됐을까’라고 묻곤 한다. 그만의 비결이나 노력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 전기 분야에서는 PLC 기술, 즉 제어기술이 막 보급돼 모두들 이 분야를 주목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핫한 분야’였죠. 그런데 선배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전기 분야에서 발전기·전동기·변압기 등 비교적 강한 전류를 다루는 전기 부문인 강전(强電)이 뒷전으로 밀려났다고들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첨단 분야가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강전 분야는 결코 죽지 않는다. 기본이고, 허리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귀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기본이 되는 이 분야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통적인 분야임에도, 기술서적이 드물었어요. 설비가 들어올 때 같이 온 매뉴얼 정도뿐이었죠. 하지만 그것도 우리에겐 소중했습니다. 한 번은 프랑스에서 설비가 들어왔는데 영어로 된 요약본 비슷한 짧은 매뉴얼이 있더라고요. 이거라도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 못해서 동료 한 명과 밤을 새워가며 번역했습니다. 그런 의욕이 결국 저를 명장이란 영예로 이끈 게 아닌가 싶어요.”
그가 포스코 명장의 자리에 오른 것은 일에 대한 의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 공로를 가족들, 특히 아내에게 돌렸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을 되짚다 보면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추억이 떠오른다고.
“그런데 주변에 다른 시설이 없으니 뭐라도 하려면 광양읍까지 나가야 했어요. 제가 그때 오토바이를 탔었는데 호기롭게 아내를 뒤에 태우고 나갔습니다. 하필 비포장길인 데다가 어두컴컴했는데 갑자기 길 한복판에 큰 돌덩어리가 보이는 겁니다. 급하게 피하려다 그만 오토바이가 쓰러지고 말았지요. 저는 길바닥에 널브러졌는데 어디선가 아내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가 높이가 사람 키쯤 되는 논둑에 떨어져 있더군요.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었지만 폼 좀 잡으려다 점수만 깎인 셈이었습니다. 체면도 많이 구겼고요.”
그런 아내의 도움 덕에 포스코명장이라는 영예도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명장은 웃으며 답했다. 짧은 추억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그에게 명장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남다른 영예’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가족에게는 자랑스러운 남편, 아버지가 됐고, 후배들에게는 갈 길을 미약하게나마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전까지는 자신의 분야에서만 잘하면 됐는데 명장의 자리에 오르니 이런저런 질문도 많아지고 관여할 일도 많아지더란다. 이런 일들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지만 공부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흥분된다고.
“배운다는 건 늘 흥분되는 일이죠. 사실 저는 명장이 되기 전, 파트장 자리에서 용퇴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파트장 같은 직책을 맡으면서 회사에 기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부담 없이 기술을 더욱 파고들고 싶었어요. 당시 기술에 전념한 게 제가 명장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현장경험’이다. 그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경험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래서 포스코와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현장은 그에게 매우 소중한 자리다. 특허나 우수제안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작다면 작은’ 개선활동을 계속 축적해나가다 보면 작은 것들이 모여 설비 안정화를 이룬다. 그렇기에 중앙정비라는 업무는 그에게 현장경험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는 만찬과 같은 기회다.
“기술적 이론도 중요하지만 경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금까지 전기설비 진단과 점검을 주로 해왔지만 이 업무의 궁극적인 목적은 케이블이나 설비의 수명을 판단하는 거예요. 수치적으로 이론에 맞게 확인해야 하지만, 경험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도 매우 많아요. 즉 진단 경험이 판단능력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가진 기술의 가장 큰 노하우는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 입사 후 현재까지 쌓아온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그이기에 김성남 명장은 후배 사원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후배들이 김성남 명장처럼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하기는 어려워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다. 큰 사고와 같이 집약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또 기대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니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경험을 체득한 명장의 존재가 매우 소중할 것이다.
‘설비 가동음은 정비인의 심장을 뛰게 한다’는 김성남 명장은 불가능에 가까운 설비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포스코의 정비 및 복구 역량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체감한다고 한다. “정비인은 설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뛰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설비가 다시 건강한 가동음을 낼 때까지 책임지고 고쳐야 하는 의사입니다. 자신감도 있어야 하고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고장 난 설비가 수리를 거쳐 건강을 되찾고, 정상적인 가동음을 낼 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전해지는 쾌감.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진짜 정비인입니다.”
[포스코의길, 명장의道] 포스코명장 특별인터뷰 모아보기
1편 :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2편 : 광양제철소 제강부 조길동 명장
3편 : 포항제철소 열연부 권영국 명장
4편 : 광양제철소 냉연부 신승철 명장
5편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김차진 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