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현장 기술인 최고의 영예이자 롤모델인 포스코명장(名匠). 명장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깊이 있는 기술력과 생생한 노하우는 AI·디지털 기술과 만나 새로운 경쟁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2026년 포스코명장으로 선정된 광양제철소 노재그룹 이상휘 명장. 38년 동안 뜨거운 제철소 현장을 지켜온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CDQ 내화물의 수명을 두 배 이상 늘린 집념의 기술인

▲ 고온의 쇳물과 열을 견디는 내화물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이상휘 명장
1,500도가 넘는 벌건 쇳물이 요동치는 곳. 제철소의 심장인 용광로가 그 뜨거운 열기를 견딜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쇳물을 안전하게 담아내는 그릇, ‘내화물’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38년간 용광로의 벽을 쌓고 지켜온 이가 있다. 2026년 포스코명장으로 선발된 광양제철소 노재그룹* 이상휘 명장이다.
*노재그룹 : 용광로와 전로 등 고온 설비에서 발생하는 수천 도의 열을 견디는 물질인 ‘내화물’을 관리하는 부서
내화물은 제철소의 모든 공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다. 쇳물을 만드는 고온 설비부터 철강 제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공정까지, 고온을 견뎌야 하는 설비 내부에는 언제나 내화물이 자리한다. 내화물 없이는 제철소가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이상휘 명장은 38년간 내화물 설비를 정비하고 개선하며, 설비의 안정적인 가동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왔다.
내화물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묻자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38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그의 기술 철학은 그렇게 시작된다.
제철소의 모든 공정을 지키는 재료, 내화물
내화물은 고온의 쇳물과 코크스, 가스와 열을 견디며 설비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패다. 내화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설비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수리 기간 동안 생산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원가와 생산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가 내화물 업무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자기 성취감’이다. 작업 결과가 눈에 잘 드러나는 업무는 아니지만, 수리를 계획하고 실행한 뒤 설비가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회사의 생산활동에 기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설비의 하루하루를 지켜내는 일. 그것이 그가 38년 동안 지켜온 내화물 기술의 가치였다.

1988년 입사 이후 광양제철소와 함께 해온 38년
이상휘 명장은 1988년 7월 18일 포스코에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미래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포스코를 택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치렀던 입사시험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할 만큼, 당시의 선택은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이었다. 그리고 첫 출근을 위해 마주한 광양제철소. 당시 제철소는 한창 건설 중이었고, 주변 환경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1988년의 광양제철소는 정말 벽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철소는 건설 중이었고, 주변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제철단지를 벗어나면 갈 곳이 없어 유배지에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가 처음 맡은 업무는 내화물 정비였다. 이후 가열로 건설공사와 정비 업무를 오가며 설비 구조와 시공 품질을 함께 익혔다. 1989년 2열연 가열로 공사, 1991년 3열연 가열로 공사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정비를 넘어 설비 설계와 공정관리까지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를 특별한 내화물 기술인으로 성장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현장에서 품질관리원칙을 지키는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현장 관계자들과 의견이 부딪히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모든 경험들이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내화물을 다루며 손이 부르트기도 했고, 미세한 틈 하나 때문에 조업이 중단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겪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실수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퇴근 후 그날 배운 것을 되짚어보고, 놓친 부분과 실수를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현장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다음 작업을 위한 공부가 됐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한 해가 쌓였다. 38년 후 명장이 된 그의 기술은 특별한 한 번의 성공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 현장에서 배우고, 다시 확인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았던 수많은 날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포기할 수 없다! 내화물 업무의 핵심은 ‘시공품질 확보’

▲ 이상휘 명장이 내화벽돌의 형태와 밀도를 완성하는 내화벽돌 성형 프레스의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철마저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지옥 같은 열기 속에서, 고로가 타버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내화물은 마치 ‘대기권에 진입하는 우주선의 방열판’과 같다. 이상휘 명장은 이 방열판을 가장 완벽하게 만드는 독보적인 기술을 완성했다. 먼저 내화물 정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묻자 이상휘 명장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시공품질 확보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내화물 수리는 단순히 내화물을 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공 시점부터 양생(養生)*까지 모든 과정이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수리 공기를 조금 줄이려다 시공품질을 놓치면 내화물의 사용수명이 짧아지고, 결국 설비 장애로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는 단 한번도 내화물과 시공품질을 두고 타협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내화물 업무이지만, 경험이 기본 절차를 대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양생(養生) : 내화물이나 콘크리트, 시멘트 성분을 타설한 후, 그것이 완전히 굳어 제 강도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보호·관리하는 과정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서, CDQ 가동중지를 막기 위한 집념

▲ 후배 직원과 함께 성형이 완료된 내화벽돌의 치수와 표면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이상휘 명장의 대표 기술은 CDQ Chamber 내화물 Profile 최적화다.‘CDQ(Coke Dry Quenching, 코크스 건식소화)’는 쇳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뜨거운 코크스를 질소 가스를 이용해 냉각하는 기술과 그 설비를 말한다. 설비속 내화물은 고온과 코크스의 마모를 동시에 견뎌야만 한다. 여기서 ‘CDQ Chamber 내화물 Profile 최적화’란, 코크스를 식히는 ‘거대한 통(Chamber)’ 안쪽 벽면 내화물의 ‘단면 구조와 재질 배치(Profile)’를 수명이 가장 길어지도록 최적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9월, 1CDQ Chamber Ring Duct 내통의 내화물이 무너지는 문제가 생기고, 이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내화물 문제가 일어나면 설비 정상화까지 40일 이상이 걸리는 등 조업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상휘 명장은 내화물이 왜 무너지는지 근본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그때부터 ‘언젠가 다시 무너지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긴 싸움이 시작됐다.
데이터로 찾아낸 ‘재질+형상’의 해법
이상휘 명장은 대수리 때마다 내화물의 마모·팽창·처짐 상태를 기록하고 과거 데이터와 비교해 구역별 문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재질과 형상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크스와 직접 접촉해 마모가 큰 쿨링챔버에는 고강도·고내마모 내화물을, 열팽창으로 인한 붕괴가 문제인 프리챔버 링덕트 내통에는 저열팽창성과 내마모·내침식성을 갖춘 재질과 CDQ 전용 내화모르타르를 개발해 적용했다. 형상도 함께 바꿨다. 내화벽돌을 대형화·후벽화하고 측면에 요철을 넣어 결합력을 높였다. 팽창대와 링아치의 각도·축조 구조도 최적화해 팽창과 처짐을 줄였다.

18년의 긴 싸움, 그리고 두 배 이상의 수명 연장

▲ 현장 기술진의 정교한 내화물 축조 기술이 담긴 출강부 내화물 앞에 선 이상휘 명장과 동료 직원들
기다림과 검증을 반복하며 약 8년간 개선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 내화물의 사용수명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수리 횟수가 줄어 비용과 정비비가 절감됐고, 맞춤형 내화벽돌로 축조 공기도 단축했다. 작업자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작업 효율은 높아졌고, 수리 협력사에서는 “내화물 수명이 길어지면서 수리 건수가 줄어 돈이 안 된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전체 과정에 걸린 시간은 약 18년. 18년 간의 집념이 설비를 살리고, 비용을 줄이고, 현장의 일하는 방식까지 바꾼 것이다.
나의 기술에서 포스코의 기술로,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는 또 하나의 도전

▲ 이상휘 명장과 내화물 제조·정비 현장을 함께 지키는 광양제철소 노재그룹 동료 직원들
이상휘 명장은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CDQ(코크스 건식소화) 내화물 개선을 통해 기술 노하우를 세 건의 기술 노하우를 출원·등록했고, 일본 NSC가 공급한 설비의 문제를 포스코만의 기술로 해결해 회사의 지식자산으로 남겼다.
그는 오랜 경험과 순간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내화물 분야 기술을 차근차근 전수해 자신만의 암묵지(暗默知)*에서 후배들이 이어서 활용할 수 있는 형식지(形式知)*로 바꾸려 한다.
*암묵지(暗默知):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
*형식지(形式知):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문서나 책처럼 겉으로 표현된 지식 뛰어난 기술을 축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이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가 생각하는 명장의 다음 역할이다.

뛰어난 기술을 축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이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가 생각하는 명장의 다음 역할이다.

내화물을 지켜온 38년, 포스코 최초의 노재 분야 명장으로

▲ 이상휘 명장이 출강부 내화물의 시공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내화물이 고온 설비를 지키는 방패라면, ‘노재’는 그 방패를 설비에 맞게 설계하고 쌓고 보수해 끝까지 제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술의 영역이다. 뜨거운 열과 맞닿은 최전선에서 설비의 안전과 조업의 연속성을 책임지는 일. 이상휘 명장이 38년간 걸어온 길이 바로 ‘노재’다.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온 끝에 이상휘 명장은 포스코 역사에 그의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는 ‘명장’이라는 영광의 이름표를 달았다. 그러나 포스코 최초의 노재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소감에는 기쁨과 함께 부담감이 담겨 있었다.
“노재인을 대표해 최초로 명장이 됐다는 점에서 매우 기쁩니다. 동시에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도 큽니다. 동료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노재 출신 명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에게 명장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에 가깝다. 노후설비를 더 강건하게 만들고, 자신이 가진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다음 세대가 앞으로의 50년을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지금 그가 생각하는 ‘명장 이후의 삶’이다.

38년을 돌이켜보면 거창한 성공의 연속은 아니었다. 처음 광양제철소에 발을 디뎠던 날도, 내화물을 다루다 손이 부르텄던 날도, 설비가 무너지는 원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들여다보던 날도, 개선품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그 모든 날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기본에 충실하자.’ 작은 틈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경험이 쌓여도 절차와 원칙을 놓지 않고, 실패 앞에서도 한 번 더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 그렇게 한 걸음씩 쌓아온 시간이 38년이 되었고, 그 끝에서 그는 포스코 최초의 노재 명장이 됐다. 하지만 이상휘 명장이 이제 바라보는 곳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자신이 쌓아온 기술을 후배에게 건네고, 한 사람의 노하우를 모두의 기술로 만들고, 또 다른 50년을 준비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