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명장의 일상에서 투철한 직업관과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까지,
명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들이 흘린 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2025년 포스코명장으로 선발된 이는 단 한 명, 포항 압연설비2부 STS압연정비섹션의 신재석 명장뿐이다. 당연히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닐까요? 명장이 되고 말겠다 하는 기백이야 나쁠 게 없겠지만 그렇게 먼 고지를 목표로 삼는다면 매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 막연할 것 같네요. 또 목표가 멀다 보니 굳이 오늘, 이번 달, 올해에 뭔가를 꼭 해야 하지 않아도 되고… 나태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신재석 명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목표란 무엇일까?
꾸준히 작은 실천을 쌓아 성과로 연결하는 그의 태도. 그것이야말로 신재석 명장이 명장의 반열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이었다.
신재석 명장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낯익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메산골이라고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당시 상동은 텅스텐 광산촌으로, 속된 말로 ‘잘나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생활상은 두 가지로 갈렸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좋아서 자녀들이 ‘과외수업’을 받을 정도였지만, 광산에서 일하지 않는 이들은 농사를 지어 광산촌에 납품하며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상동은 나름 북적북적하는 분위기였지만 저는 농부의 아들, 그것도 9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하교하면 바로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을 했을 정도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죠. 소를 데리고 산에 오르는 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할 때마다 생각의 ‘틀’, 방법의 ‘틀’을 만들게 됐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틀에 꾸준함을 더해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그가 고향인 상동을 떠난 것은 포철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포항으로 오게 되면서이다. 포철공고를 고른 이유는 물론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와 많은 식솔을 생각하면 대학 진학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포철공고를 졸업할 때쯤 그는 자연스럽게 포스코 입사를 결심했다.
하늘이 맺어준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기에 포스코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러나 2022년, 그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태풍 힌남노로 인해 제철소 설비가 가동중지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비업무를 맡고 있는 그에게 태풍 힌남노가 준 피해는 커다란 충격임과 동시에 도전이었다. 전기가 끊기고 유압시설이 멈추면서 현장에는 제품을 생산하다 말고 멈춰버린 압연기 설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려있는 제품을 빼내고 오염된 설비를 청소해야 했지만 유압시설이 멈춰버려 제품을 빼낼 도리가 없었다.
이에 신재석 명장은 ‘비상 복구용 다용도 유압장치’를 떠올렸다. 이는 설비의 유압시설에 유압을 공급할 수 있는 임시장치를 말하는데, 이 장치에 필요한 전기는 ‘비상용 발전기’로 공급하면 될 터였다. 이동할 수 있는 장치라서 이 비상 유압장치를 가져가 설비에 유압을 공급하면 물려있는 제품을 빼내고 청소할 수 있었다. 그런 뒤 전기가 복구되면 바로 시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특허에 빛나는 ‘비상 복구용 다용도 유압장치’는 이렇게 탄생했다.
특허까지 받은 장치지만, 사실 획기적인 기술이 녹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떠올렸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했다. 그는 어떻게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을까?
“1냉연 2CAL설비 기계정비를 할 때였습니다. 반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압연기 유압 회로도를 외워서 설명해 보라며 시간을 일주일을 주시는 겁니다. 저는 반장님이 하라 하시니, 꼭 필요한 건가 보다 하고 죽어라 외웠습니다. 가까스로 외워서 설명을 마치니 반장님이 ‘지금까지 전부 외워서 설명한 건 네가 처음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한마디에 힘들게 암기하며 고생했던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이른바 ‘될성부른 나무’였던 그는 이때 느꼈던 자신감과 보람을 쉽게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 맞부딪힐 때마다 이때의 경험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돼주었다고.
그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기술개발 사례는 스마트 IoT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냉간압연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압연유입니다. 압연을 할 때 뿌려주는 건데 상당히 고가입니다. 그래서 압연유는 사용 후 따로 수거해서 열교환기로 냉각한 후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교환과정에서 종종 압연유가 냉각수 라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유출 사고 발생 시 재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고가의 압연유가 대량 유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냉각수 안에 압연유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압연유 농도측정 센서로 측정해 보면 알 수 있겠더라고요.”
본래 압연유 농도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밀도측정 센서’를 활용하면 냉각수로 유입된 압연유의 양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압연유의 농도를 측정하는 ‘본래의 용도’를 냉각수 속 압연유 유출 정도를 측정하는 ‘다른 용도’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사례였다. 발상의 전환은 또다시 그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 중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발상의 전환도 원리를 이해하는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신입사원일 때는 설비를 짓고 안정화하는 시기여서 선배들도 모든 것을 아는 상황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고쳐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설비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원리를 터득해야 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원리를 터득하는 데에는 그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몸소 일깨운 원리는 기술력 향상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후배들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원리를, 스스로 터득하는 데 힘을 쏟으라고요.”
명장이 된 소회를 묻는 말에는 ‘부담스럽다’,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이 된다’고 주저하면서도 후배들에게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방식을 알려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더없이 진지한 명장이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신재석 명장은 최근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바로 후배들이 몸소 책임감을 느낄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후배들이 해외에 나가보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비에 관한 노하우와 경험이 쌓이게 되면 해외 법인에 해결사 역할로 파견되는데, 막상 나가보면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습니다. 여기서야 문제해결을 도와줄 조직과 전문가가 도처에 있지만 현지에 도착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서 해결해야 해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두가 저만 바라보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이건 실로 엄청난 부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자신이 포스코 대표, 더 나아가 국가대표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최고의 전문가가 돼야겠다’라고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 노릇. ‘어떻게 하면 이 경험을 오롯이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그가 풀어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될 터이다.
어린 시절 소에게 풀을 먹이러 산을 오가며 생각의 틀을 만들던 소년은, 운명처럼 포스코에 입사해 결국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그 명장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길을 따라 걸어 올라올 후배들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