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글 철의 시대 저자 강창훈
l 이슬람 영웅, 살라딘의 다마스쿠스 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시내 중심가에는 말 탄 전사의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병사들과 함께 전방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을 달리는, 영웅의 기상과 비장감이 철철 넘치는 이 장군의 이름은 바로 중세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 살라딘이다.
그런데 이 살라딘의 동상을 볼 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살라딘이 날 끝을 앞으로 향하게 한 채 오른손에 쥐고 있는 칼이다. 보기에는 그저 그런 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자루의 칼에 철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칼의 이름은 다마스쿠스 검. 다마스쿠스 검의 자취를 따라가며 철의 역사의 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l 우츠 강철로 만든 무적의 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잠시 위 사진 속 기둥을 보자. 높이 10미터에 무게 6톤짜리 철로 만든 기둥이다. 녹이 많으 슬지 않은 상태로 보아 최근에 만들었구나 싶겠지만, 사실 지금부터 1,700여 년 전 인도 굽타 왕조 시대에 만든 것이다. 학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며 성분 조사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확실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델리의 철 기둥’이라 불리는 이 기둥은 바로 ‘우츠 강철’이라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우츠 강철은 망치로 쳐도 날이 무뎌지지 않아 날카로운 검을 만드는 데 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렇게 우수한 소재로 만든 검이 인도에만 머물렀을 리가 없다.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서아시아, 북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리고 우츠 강철로 만든 검은 서아시아의 다마스쿠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도 검’이나 ‘우츠 강철 검’이라 하지 않고, ‘다마스쿠스 검’이라고 부를까? 다마스쿠스는 서아시아에 위치한 무역 중심지였다. 이 도시를 통해 우츠 강철 검이 사방으로 수출되었는데, 수요가 많아져 물량이 부족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기원후 300년 무렵부터는 상인들이 장인들을 고용해 직접 검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다마스쿠스 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낳고 길러준 것은 인도지만, 유명세를 타게 해준 것은 다마스쿠스였던 셈이다.
l 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다마스쿠스 검
이렇게 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다마스쿠스 검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무기였고, 바로 이 검을 탐하다가 비운의 운명을 맞은 남자가 있다. ‘무타왁킬’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8~13세기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였다. 그는 당시 인도 남부에서 제조되는 다마스쿠스 검의 명성을 듣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막대한 돈을 주고 이 전설의 무기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기르라는 부관에게 검의 보관을 맡겼는데, 하필이면 바기르가 반란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무타왁킬은 바기르에게 살해당한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다마스쿠스 검으로 말이다!
l 십자군 원정대를 누른 전설의 무기
다마스쿠스 검의 명성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전해진 것은 십자군 전쟁 때다. 십자군의 두꺼운 갑옷도 뚫고 그들의 검마저도 단칼에 잘라버린 것이 바로 살라딘 군대의 다마스쿠스 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검이 대단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강하고 날카로운 것은 기본이고 가볍고 날씬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라딘의 동상을 보면서 칼이 어딘지 모르게 왜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세계를 호령한 영웅이 쓰던 거라고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무엇이든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살라딘 군대는 무거운 검을 사용한 십자군에 비해 기동성에서 훨씬 앞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십자군을 이끈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자기 검을 자랑하자, 살라딘은 비단을 위로 던지고 떨어지는 지점에 다마스쿠스 검을 두었는데 비단이 두 조각이 났다는 이야기다. 악마가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는 걸 감안하면 위의 에피소드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다마스쿠스 검이 엄청난 무기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유럽의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유럽 기독교 세계의 침입을 막는 데 성공한 셈인데, 그 중심에는 영웅 살라딘의 군대를 천하무적으로 만들어준 다마스쿠스 검이 있었던 것이다.
다마스쿠스 검은 이후에도 세계의 전장을 누볐을 터인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 약 250년 전 제작기술은 실전(失傳) 되었고 그 이후로는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복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철로 온갖 대량살상무기를 다 만드는 21세기인데도 복원 불가라니. ‘마치 바람 부는 연못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 같은’ 다마스쿠스 검의 무늬를 다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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