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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하나로 통합한 대항해의 첨병, 나침반

세계사를 하나로 통합한 대항해의 첨병, 나침반

강창훈 작가 2016/09/26

포스코리포트 세계사를 하나로 통합한 대항해의 첨병, 나침반. 과거에도, 현재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철에 대한 이야기를 각 분야 전문가가 들려 드립니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인 철의 가치를 좀 더 특별하게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서 바라본 철에 대한 이야기, Hello, 포스코 블로그와 함께 보시죠!

l 글 <철의 시대> 저자 – 강창훈

l 대항해 시대의 개막, 세계를 하나로 묶다

세계사에서 15~18세기를 ‘대항해 시대’라고 부른다. 대항해를 통해 동서양이 본격적으로 만나고, 대항해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에 알려졌으며, 그 결과 그동안 따로 놀던 대륙들의 역사가 하나의 세계사로 수렴되기 시작했으니, 가히 ‘대항해 시대’라 부를 법도 하다. 그런데 이런 대전환의 시대에도 ‘철’은 이전에도 그랬듯 여러 방면으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 내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 흥미로운 철의 항해를 쫒아가 보자.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의 항해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1502)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의 항해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1502)

대항해 시대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중국 명나라다.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정화의 함대가 남해 원정에 나섰는데, 중국을 출발해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가는 대항해였다. 그리하여 명나라는 대제국으로서의 위용을 세계에 떨쳤지만, 북방 몽골족의 침입 등 국내 사정으로 항해를 중단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다. 정화의 원정이 있고 나서 반세기가 지나서야 대항해가 다시 시작되는데, 그 주인공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콜럼버스. 그는 1492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얼마 뒤 바스쿠 다 가마도 인도를 찾아 떠나는데, 그는 콜럼버스보다 성격이 느긋했는지, 아프리카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빙 돌아 인도 서해안에 도달했고, 이 항로를 따라 동서양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5세기 명나라의 도자기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15세기 명나라의 도자기

유럽인들이 기를 쓰고 먼 바다를 항해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와 교역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들이 특히 원했던 건 중국의 비단과 자기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중국에 수출할 상품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물자가 풍부한 중국에서 원한 건 딱 한 가지, 바로 은이었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은이 주요 화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발 빠르게 아메리카에서 은광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두 나라 상인들은 이 은을 가지고 중국 남쪽 마카오나 필리핀으로 가서 중국 상인의 비단, 자기와 바꾸었다. 새로운 항로가 열리면서 세계는 점차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어 갔다.

 

l 대항해 시대의 동반자, 철과 나침반

나침반 사진

이렇게 대항해 시대를 맞아 세계 경제의 판도가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철의 역할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항해에 필요한 선박, 만약에 대비해 갖추어야 하는 총, 대포 같은 무기를 만드는 데 당연히 철이 필요했을 터. 그러나 은을 가지러 아메리카에 갔다가 다시 아시아로 가는 머나먼 항해를 하려면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철이 더욱 큰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바로 철에 의해 작동하는 나침반이다. 나침반은 어떤 원리로 작동할까? 지구의 외핵에는 액화된 철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철의 끊임없는 대류 현상 때문에 지구 전체는 거대한 자석과 같은 성질을 띄게 된다. 그래서 자성이 강한 자철석으로 된 나침반의 지침이 지구 자기장의 영향으로 항상 남북을 가리키게 되는 원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력’에 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 7세기경 탈레스라고 한다. 그러나 자력을 이용해 나침반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중국인들이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에 이미 나침반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세기에 쓰인 《관자》라는 책에 ‘자석’이 나오고, 얼마 뒤에 나오는 여불위의 《여씨춘추》에는 ‘자석소출慈石召鐵’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자석은 철을 끈다’는 뜻으로 자석의 원리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자석의 ‘자’를 ‘磁’ 대신 ‘慈’로 썼다는 사실이다. 문명교류사학자 정수일 선생에 따르면, 철이 자석에 끌리는 원리가 어린 아이가 자모慈母(어머니)를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l 항해 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나침반

초기 형태와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 한나라 시대의 나침반

△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초기 형태와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 한나라 시대의 나침반

나침반이 항해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송나라 때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항해사들은 주로 별과 바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했다. 다만 구름이 잔뜩 낀 날이면 별을 관측할 수 없었고 바람이 안 불면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침반이 항해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훨씬 안전한 항해가 가능해졌고 먼 바다까지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고려에 온 송나라 사람의 기록을 통해서도 나침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123년 송나라의 문신 서긍이 사신단을 이끌고 배로 고려에 갔는데, 귀국 후에 고려의 실정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이렇게 적고 있다.

“밤에 바다에서 … 오로지 북두칠성을 보면서 나아갔다. 만약 날씨가 흐려 캄캄해지면 지남부침을 사용하여 남북을 분간했다.”

여기서 ‘지남부침’이 바로 나침반을 가리키는데, 이는 지남침을 심지에 꿰어 물 위에 띄우는 방법으로 만든 ‘수침반水鍼盤’으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나침반과는 모습이 다르다.

중국의 항해용 나침반은 이슬람 상인을 통해 아랍 세계에 전해졌고, 12세기 무렵에는 유럽에도 알려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중국식 수침반의 개량에 성공한다. 자침을 핀으로 고정한 한침반旱鍼盤으로 개량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나침반의 원형이다.

한침반으로 개량된 나침반은 대항해 시대 때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일본 나가사키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중국 상인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 500년 만에 멋진 옷을 입고 고향 땅으로 돌아왔으니, 나침반의 ‘금의환향’이라고 해도 될까?

* 포스코리포트는 해당 분야 전문가 필진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포스코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강창훈. 고려대 동양사학과 대학원 졸업. 역사책 기획자 및 역사교양서 필자, 제5회 창비 청소년도서상 교약기획부문 대상, 주요 저서:'철의 시대', '중국사 편지', '일본사 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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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중국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책 기획 편집자로 일했고, 어린이책 작가가 된 뒤 『중국사 편지』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일본사 편지』 『왜 그렇게 생각해?』 등을 썼다. 『철의 시대』로 제5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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