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글 우아영 ‘과학동아’ 기자
l 금속연료의 잠재력, 그 실현 가능성은?
2030년, K 씨는 출근 전 미세한 검은색 가루가 든 용기를 챙겼다. 지난밤 퇴근길에 자동차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손에 든 가루는 바로 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의 강철 가루. 만화영화에 나올법한 상상 같지만, 실제로 철로 가는 자동차나 알루미늄을 태워 전기를 얻는 발전소를 가능케 할 ‘금속연료’ 연구는 이미 응용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금속을 태워서 이용했다. 공중에서 금속 가루에 불을 붙여 폭발시키는 불꽃놀이가 대표적이다. 그 열과 빛, 폭발력을 이제 자동차나 발전소에 써보자는 것이 바로 금속연료의 개념이다. 실제로 금속은 기체나 액체 연료보다 반응열이 훨씬 크기 때문에 연료로서의 잠재력이 몹시 크다. 예를 들어, LNG 1L에 저장된 에너지는 22.2MJ(메가 줄)인 데 비해 같은 부피의 철은 40.68MJ, 알루미늄은 83.8MJ에 달한다.
금속을 자동차나 발전소 등에 연료로 쓸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고운 입자로 만든 금속에 불을 붙여서 산소와 반응시키는 방법이 있다(4Al+3O2→2Al2O3). 이 때 발생하는 뜨거운 열로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다.
금속 가루를 물과 반응시키는 방법도 있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은빛으로 반짝거리던 순수 알루미늄에 물을 부었던 실험을 생각해 보자. 곧바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반응성이 너무 커서 곧바로 수산화이온과 반응했기 때문이다(2Al+6H2O→2Al(OH)3+3H2). 이 과정에서 수소기체와 열이 나온다. 수소기체 자체를 연료로 이용(연료전지)하거나, 뜨거운 열로 엔진이나 터빈을 가동할 수도 있다.
l 깨끗하고 편리한 연료… 연소 어려운 단점은 나노 과학으로 극복
금속연료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두 방법 모두 반응식에 탄소(C)가 없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다.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속연료는 다시 재생해서 쓸 수 있다. 나무나 석탄을 태우면 다시 쓸 수 없는 까만 재만 남고 다른 물질은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금속연료는 태우고 나면 산화 금속이 남는다. 별도 공정을 통해 산소를 떼어 내면 처음 넣은 것과 같은 양의 금속을 얻을 수 있다. 닳지 않는 연료인 셈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달리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든 쓸 수 있는 데다 송전망을 설치할 필요 없이 화물선에 실어 수출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금속을 연료로 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웬만한 온도에선 불이 붙지 않는다. 반응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속의 큰 반응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연료로서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불이 붙지 않는 원리는 이렇다. 순수한 금속을 공기 중에 두면, 산소와 반응해 녹이 슬면서 표면에 얇은 막(산화피막)이 생긴다. 금속이 산소 등 산화제와 접촉해야 연소될 수 있는데, 아예 원천 차단 되는 셈이다. 이 막은 보통 녹는점이 매우 높다. 순수한 알루미늄의 녹는점이 섭씨 660도인 데 비해 알루미늄 산화피막의 녹는점은 약 2100℃다. 불을 붙이기가 아예 불가능한 온도는 아니지만, 안정성과 경제성 때문에 온도를 이 정도까지 올리기 어렵다.
문제는 또 있다. 원하는 만큼 큰 화력을 ‘안전하게’ 내는 조건을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다. 금속 가루의 알갱이가 너무 작으면 쉽게 타지만 나오는 에너지가 너무 적거나 오히려 폭발할 위험이 있고, 알갱이가 너무 크면 잘 타지 않는다. 적정한 입자 크기와 혼합 비율, 양을 찾아내는 게 기술적 과제다.
금속연료를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할 기술이 없다는 것도 상용화를 막는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 언제든 시동을 켜고 끌 수 있고 원하는 속력을 낼 수 있는 건, 연료를 딱 적당량만큼 엔진 안에 분사해줄 수 있는 기술 덕분이다. 기체 연료는 밸브로, 액체 연료는 스프레이를 이용해 양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금속연료는 분말 특유의 응집 현상 때문에 양 조절이 쉽지 않다. 마치 밀가루나 설탕 가루를 오래 두면 뭉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소에서 시도한 ‘철로 달리는 자동차’ 개발 계획이 실패로 막을 내린 이유다.
l 물속이나 지구 밖에서 전기 만들 때 최고!
다행히 최근까지 금속연료에 대한 기초연구가 이뤄지면서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순수한 금속 가루의 표면을 녹는점이 낮은 물질로 코팅해서 연소를 쉽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니켈이다. 니켈은 알루미늄보다 점화 온도가 낮은 데다, 금속 간 반응 때문에 열이 발생하면서 알루미늄을 더 빨리 태운다(금속 간 반응이란, 이온화 경향이 다른 금속이 접촉해 있을 때 전자가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
전 세계 금속연료 연구 그룹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캐나다 맥길대 기계공학과 새뮤얼 고로신 교수와 제프리 베르그토르손 교수 공동연구팀은 최근 직접 개발한 금속연료용 열엔진으로 기존의 화석연료용 엔진과 유사한 수준의 동력을 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학술지 ‘응용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목적으로 쓸 수 있는 1차 후보는 강철”이라며 “전 세계 제철이나 화학, 전자 산업에서 생산되는 강철 분말 수백만 t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과연 강철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게 될 날이 올까. 금속은 아직 다른 연료 물질보다 비싸기 때문에 모든 연료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흔히 쓰이는 산화제인 산소가 없는 상황, 즉 물속이나 지구 밖에서 전기를 만들어야 할 때 유용할 수 있다. 예컨대, 배나 잠수함을 타격하는 ‘초공동 수중 비행체’라는 무기는 금속 가루를 물과 반응시켜 추진력을 얻는다. 이를 켜고 끌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금속 가루와 바닷물을 반응시켜 추진력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박용 엔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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