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 수요가 둔화되고, 보호무역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대규모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내 철강산업은 여전히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여야가 손을 맞잡고 ‘K-스틸법’을 발의했다. 단순한 지원을 넘어, 산업 정책 전환과 녹색철강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 종합 전략이다. 철강산업의 전환점이 될 K-스틸법의 주요 내용과 앞으로 철강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짚어본다.
큰 정부 시대, 특정 산업 육성 정책의 귀환
세계는 지금 ‘큰 정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WTO 체제하에서 금기시되던 특정 산업 육성 정책이 팬데믹 대응, 경제안보, 탈탄소, 디지털 전환 등에 힘입어 부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 역시 과거 중화학공업 육성정책(1973년), 산업발전법(1999년)을 계기로 철강·석유화학 등 특정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에서 민간 자율과 기능별 간접지원으로 전환해 왔다. 이후, 주로 기술개발 지원에 머물렀지만, 2022년 첨단전략산업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특정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법률 가운데 주력산업 지원은 친환경 자동차·선박 등에 한정돼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주요국의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경쟁에 대응하고자 반도체·이차전지 특별법이 발의됐다. 이어 기간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문제로 떠오르며 조선·석유화학 산업 지원 특별법안이 발의되었다. 철강 역시 지난 8월 이른바 ‘K-스틸법’으로 불리는 철강산업 지원 법안 3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탈탄소·미래전환 등을 앞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산업 경쟁력 전반을 강화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K-스틸법, 왜 필요한가

▲국회철강포럼 소속 의원들이 지난 8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K-스틸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어기구 의원 블로그)
8월 4일 발의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은 철강산업의 중장기 발전 로드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법률에 근거해 5년 단위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할 기구로 대통령 소속 철강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를 둔다. 이를 통해 녹색철강기술, 산업 특화 핵심전략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민간 부담 비율 특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규제 개선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아울러 정부의 우선 구매와 관련 인력 양성 사업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특히 녹색철강기술로 지정될 경우, 설비 도입 자금에 보조금·융자·조세 감면이 적용되며, 이를 활용하는 사업자는 생산비 보조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 철스크랩 가공 전문기업을 지정해 고품질 원료 확보를 지원하고, 전력·용수 등 철강산업의 기반 수요를 국가 전력수급계획 등 상위계획에 반영토록 했다.
지역정책도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녹색철강특구 지정을 통해 인허가 신속처리, 산업기반시설 설치 지원이 가능해지고, 입주기업에는 비용보조와 조세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핵심전략기술과 관련된 특화·전문기업을 육성하고, 산학연 협력모델이 구상될 경우 행정·기술·재정 지원을 보장한다.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내용도 담겼다. 철강산업이 사업재편을 추진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특례가 부여되고, 세제와 재정 지원이 수반된다. 사업재편 과정에서 고용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안전망 강화, 내수시장 보호, 불공정 무역행위 대응 조치도 병행된다. 막대한 지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철강산업특별회계 설치 규정도 마련되었다.
K-스틸법, 효과를 발휘하려면
한편, 철강산업의 장기 침체 속에서 산업 위기를 먼저 체감하는 지역 차원의 대응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포항은 이미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어 지원사업 내역 조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초기 신청 규모는 국비 5,000억 원에 달한다. 당진 역시 곧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고, 광양과 인천 등 주요 거점 지역도 산업 공동화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위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지역적 대응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와 주요국의 철강산업 재건 움직임에 맞서려면, 종합적인 중장기 전략 아래 산업 체질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지원은 제한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별 중복 사업을 지원하기보다 철강 생태계의 고도화·전문화·분업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 전반을 강화하는 K-스틸법 제정은 이러한 전환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지난 9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스틸법 발의, 그 의미와 향후 과제’ 토론회. (사진 출처 : 한국철강협회)
또한 K-스틸법은 우리 철강산업의 탈탄소 대응을 본격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기후정책 추진 속도를 조율하고 있으나, 국내적으로는 규제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배출권거래제 4기 할당계획에서는 예비분 활용을 통해 발전 외 부문의 사전할당량이 대폭 줄어들었으며, 이는 사실상 철강업계에도 유상할당 의무가 부과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K-스틸법안에 담긴 전주기적 관점의 탈탄소 전환 지원정책(기술개발, 상용화, 수요창출, 원료공급망 안정화, 재원 거버넌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투자여력 감소와 에너지·원료 불확실성을 완화하면서 미래 투자를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K-스틸법은 출발선일 뿐이다. 전폭적인 지원을 퍼붓는 선진국들의 국가 대항전에서 최소한의 법적 지원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큰 방향은 잡혔지만, 세부 정책은 앞으로 마련해 나가야 한다. 철강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상생의 관점에서 제도 개선 논의가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노사협력이 절실하다. 노사 모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때라야 비로소 K-스틸법은 전방위 위기를 겪는 철강산업을 살릴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