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은 단순한 전통 제조업이 아닌 국가 산업경쟁력과 미래 성장의 토대를 이루는 핵심 산업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굳건한 생산 기반과 경쟁력을 가진 철강산업이 있었다. 최근 영국•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철강산업을 다시 중심에 세우고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전략적 투자와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AI 기반 스마트 제조, 탄소 저감 기술과 결합된 철강산업은 다시금 미래 산업의 중심축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제도적 기반과 체계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I 제조업의 핵심이자 미래를 이끄는 주력산업, 철강
철강산업은 여느 전통산업 중 하나가 아니다. 제조업의 경쟁력과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산업이다. 예를 들면, 트럼프까지 탐을 내는 한국의 조선산업은 수소운반선, 암모니아추진선을 통해 탈탄소화를 주도하면서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철강재가 필요하다. 철강은 전기차, 재생에너지, 탈탄소 인프라, 통신장비에도 필수불가결한 소재를 공급하는 미래의 주력산업이다.
우리나라 1인당 철강 소비량은 연간 1톤을 넘는다. 세계 평균 219㎏, 일본의 432㎏과 비교하면 매우 많다. 물론 고층 건물, 지하 공간, 도시 및 사회 인프라에 철강제품이 광범하게 사용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이 자동차, 조선, 기계장비, 산업용 플랜트, 전기전자이며, 이들 산업에는 고기능 철강재가 사용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주요 산업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굳건한 생산 기반과 경쟁력을 가진 철강산업이 존재한다.
I 선진국들이 철강산업 경쟁력 회복에 사활을 거는 이유

▲지난 4월 브리티시 스틸 직원들과 만난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 사진 출처 : 브리티시 스틸 홈페이지(https://britishsteel.co.uk/)
지난 4월 초, 영국의 브리티시 스틸(British Steel)이 고로 설비의 폐쇄 조치를 취하자 영국 의회는 이를 막기 위한 법률을 초고속으로 통과시켰다. 안정적인 가동을 보장하기 위해 국유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마지막 고로 설비의 운영이 중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국가적인 공감대와 지지를 볼 수 있었다. 철강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영국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대표 철강업체인 유에스스틸(US Steel)에 대한 일본 신일철(Nippon Steel)의 인수합병 추진에 대해, 선거 과정에서 양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으로 여겨졌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올해 1월, 일본의 인수거래를 공식적으로 차단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첫 임기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수시로 철강산업을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출발한 유럽연합(EU) 역시 새로운 산업전략을 추진하면서 철강산업을 다시 중심에 세우고 있다. 그린철강을 위해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상용화 설비에 대한 투자비와 운영비의 절반을 공공 재정으로 지원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도입하며 제조업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방위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럽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스웨덴 기업 사브(SAAB), 독일내 2위 철강사인 짤츠기터(Salzgitter AG)도 유럽연합과 자국 정부로부터 수천억 원에서 최대 1조 4천억 원에 이르는 공공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전통산업, 대기업, 복합기업집단(Conglomerate)이라는 이유로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미래 제조업 경쟁력과 산업대전환의 핵심주체로 여기고 전략적 투자로 재정 지원을 한 것이다.
선진국들이 철강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자리 유지와 공급망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철강산업이 산업발전의 근간이자 경제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산업의 가치사슬 상류에 위치해 자동차, 조선, 기계뿐만 아니라, 가전, 에너지 설비, 통신장비에 이르기까지 필수소재를 공급하고 있으며, 제조업 혁신의 근간이기도 하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산업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다.
I 도전에 직면한 한국 철강산업
현재 철강산업의 제조공정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AI 기반의 스마트 제조와 탄소 절감 기술 적용을 통해 다시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제조업을 상징하는 ‘지속가능 등대공장’을 선정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첫 번째로 지정된 공장은 포항제철소였다. 국내 철강산업이 낡은 굴뚝산업에 머물지 않고 첨단산업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국내 철강산업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공세, 글로벌 공급과잉 위협,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EU의 탄소중립을 내세운 무역장벽이 있다. 대내적으로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과 내수 부진 장기화로 어려운 상황에서 산업경쟁력보다는 온실가스 감축을 중시하는 규제까지 강화되고 있다. 포스코를 시작으로 현대제철, 동국제강이 설비폐쇄와 가동중단을 선언했으며, 중소 철강기업들도 가동률이 저하하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지역경제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I 철강산업을 위한 제도적 기반과 전략적 지원이 절실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의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한 포스코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왼쪽)과 국회에서 열린 철강업 지원 특별법 제정 토론회(오른쪽 사진 출처 : 철강금속신문)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이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고, 포스코의 지분참여 발표가 이어졌다. 철강산업은 기초소재를 공급하고, 자동차는 최종재를 생산하는 대표산업이다. 산업연관효과가 가장 크고, 화학, 기계, 부품, 전자 등 다양한 산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국 철강과 자동차기업의 해외 투자는 주력산업 대부분이 포함된 산업 생태계의 해외이전이며, 조금 더 보태면 질 좋은 일자리와 미래 성장잠재력의 위기상황을 의미한다.
마침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역 사회, 노조, 국회 등 다양한 주체들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2024 철강현대화법(2024.8)’, 유럽의 ‘철강금속행동계획(2025.3)’, 영국의 ‘철강산업 특별조치법(2025.4)’은 법률에 기반한다. 우리도 제조업 경쟁력과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늦기 전에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질서있는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법은 위기극복이나 보호를 넘어, 경쟁여건 정상화, 비용경쟁력 향상, 저탄소 투자 지원 등 미래 한국의 제조업의 핵심산업을 위한 지지와 구체적 지원방향을 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