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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미래] ① 세상을 움직이는 철 이야기

[철의 미래] 1편

[철의 미래] ① 세상을 움직이는 철 이야기

우리 생활 속에서 ‘철’이라는 소재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철은 일상에서 누리는 편리함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잠에서 깨는 침대 매트리스 속 스프링부터 세수를 하기 위한 세면기의 프레임과 각종 수도관, 면도기의 블레이드, 아침 식사를 만드는 프라이팬, 그리고 수저, 포크까지 철로 이루어진 수많은 제품들과 함께 우리의 일상이 시작된다.

인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가’라면, 보통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철기시대는 기원 전 1200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우리는 여전히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금속의 90% 이상이 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철강산업전 세계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600만 명이 넘는 인류의 대표산업 중 하나다. 1950년 연간 1억 8천 9백만 톤에 불과했던 철의 생산 규모는 2021년 19억 5천 1백만 톤으로 늘어났다. 또한 현재 생산되는 철강제품의 75%가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제품일 정도로, 철강산업은 역동적인 기술 발전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l 철기 시대의 시작

인류는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왔지만, 청동이 가진 희소성으로 인해 그 용도와 사용자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반면 철의 발견은 신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 표현되는데, 이는 철이 매장량이 풍부하고 지역 편재성이 적어 소재의 대중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류가 철을 발견하고 활용하게 된 기원에는 크게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 번째‘채광(採鑛)착오설’이다. 청동의 원료인 황동석을 채광하던 중 비슷한 색깔을 내는 적철광을 잘못 채광한 후 제련과정을 거치면서 철을 발견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지표에 존재하는 철광석이 산불에 녹아 철의 존재를 알렸다는 ‘산불설’이며, 세 번째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철이 발견됐다는 ‘운석설’이다. 학자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가능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채광착오설’이다.

철기시대로의 진입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고대국가는 ‘히타이트(Hittite)’이다. 히타이트인들은 철기를 만들 때 쇠를 녹여 만든 것이 아니라, 쇠와 불순물이 섞여 있는 스폰지 형태의 덩어리를 두드려서 만든 단철(鍛鐵)을 사용하였다. 당시 히타이트 제국의 야금 기술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보적이었으며,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철광석이 풍부했기 때문에 고대 철기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4대 고대 문명 가운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인근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먼저 시작되고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히타이트인들의 철기 제조 기술 덕분이다.

l 철의 대량생산과 산업혁명

자연 상태의 철은 소위 ‘철광석’이라 불리는 적철광(Fe2O3)이나 자철광(Fe3O4)처럼, 산소와 결합된 산화물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환원공정’에서는 철광석을 녹일 정도로 높은 열을 내면서 철광석을 철로 환원시킬 수 있는 탄소를 다량 함유한 연료가 필요하다. 이때 사용되는 연료가 탄소 이외에도 철강 품질을 저하시키는 황(S)이나 인(P) 성분 등을 많이 포함할 경우, 양질의 철을 제조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진다.

고대 대장간부터 17세기 제철소까지 철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된 원료는 목탄이었다. 그러나 목탄은 제선(製銑, Iron making)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력에 의해 쉽게 타 생산되는 철의 양이 적고 품질도 좋지 못했다.

이후 ‘아브라함 다비(Abraham Darby)’저황탄(0.5~0.55%S)을 제철에 활용하면서 석탄 용광로(고로)가 탄생하게 된다. 철제 용기를 만드는 일을 하던 다비에게 실린더 제작 요청이 들어왔는데, 주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탄광용 펌프로 사용할 증기기관을 개발하던 토머스 뉴코멘이었다. 다비는 좋은 실린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의 품질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제철소는 이에 적합한 철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기에 다비는 스스로 제철과정에 석탄을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목탄을 석탄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황 성분이 많아 실제로 활용되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비는 철광석이 산(山)과 인접해 있고 황(S) 성분이 적은 석탄을 구하기도 쉬운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을 제철소 건설지로 결정한다.

다비는 6개월여 동안의 실험을 거쳐 1709년에 코크스 제조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석탄을 코크스로 만들고 이것을 연료로 삼아 철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다. 그는 품질이 좋은 석탄을 밀폐된 코크스로에 장입한 후 고온으로 건류하여 코크스를 만들었다. 동시에 철광석과 코크스가 오랫동안 접촉할 수 있도록 적절한 크기의 용광로를 제작했다. 그렇게 하면 코크스가 용광로 안에서 일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철광석을 충분히 환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비가 개발한 코크스법은 그의 아들과 손자인 다비 2세와 다비 3세를 거치면서 기술적 진화가 이루어졌다. 다비 3세는 세계 최초의 철교인 아이언브릿지(Iron bridge)를 건설했는데, 콜브룩데일의 세번(Severn)강에 세워진 길이 60m의 아이언브릿지는 1950년대까지 실제로 사용되었고, 현재도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18세기 후반, 다비 가문의 노력으로 코크스 제조법이 확산되었다. 1760년에 14개에 불과했던 코크스 용광로는 1790년에 86개로 증가한 반면, 목탄 용광로의 수는 더 이상 늘지 않아 같은 해 25개에 불과했다. 제철소의 입지도 석탄 공급이 원활한 지역으로 이동하게 돼 1800년 전후로 제철소의 약 75%가 탄전 주변에 들어서게 되었다.

코크스법을 발전시킨 영국의 철 생산량은 1740년 1만 7천 톤에서 1852년에는 270만 톤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세계 생산의 절반 가량을 담당하게 되었고,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철강 제조기술은 베세머(Bessemer)전로법을 고안하면서 인류가 강(鋼)을 양산하는 시대가 시작되었고 20세기 들어 다양한 전로법이 개발되면서 품질과 생산량에서 괄목한 성장을 계속하게 된다.

l 철강자원 쟁탈전과 EU의 탄생

1871년 출간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독일과 프랑스가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귀속 문제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벌이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인강과 보주산맥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알자스는 온화한 기후로 포도주를 비롯한 농산물과 목재가 풍부했고 알자스 북서쪽에 위치한 로렌은 평야 지역으로 유명했는데, 국적이 네 번이나 바뀔 만큼 영토 분쟁이 극심했던 곳이다.

로렌 지방은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철광석이 풍부한 곳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철광석의 90% 이상이 알자스-로렌 지역에 매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 인접한 독일의 루르, 자르 지역도 독일 석탄의 50% 이상이 매장된 대표적인 석탄 생산지였다. 두 나라는 양 지역의 철광석과 석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충돌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구(舊) 소련이 성장하고 미국의 간섭이 늘자 유럽은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장 모네(Jean Monnet)는 유럽 재건을 위한 초석이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에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양국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프랑스 재무장관인 로베르 슈만은 이를 받아들여 1950년 5월 모든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석탄철강공동체 설립을 제안한다.

공동체 협약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가장 먼저 참가했는데, 프랑스는 독일 루르 지방의 철과 석탄 생산량 증대를 견제하기 위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와 독일이 협약에 서명하자 이후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 3국도 이듬해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6개국은 오랜 토론과 협상 과정을 거쳐 경제적으로는 공동시장을 형성하고 정치적으로는 초국가적 기구의 틀을 창출하자는 데 합의해 마침내 1951년 4월 18일 ‘파리조약’이라고 불리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조약에 서명한다. 파리조약은 각국 내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비준에 성공해 1952년 7월부터 ECSC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이렇게 첫발을 디딘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 등으로 발전했고 1993년에는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철강자원을 둘러싼 자원 쟁탈전이 2022년 현재 28개국으로 이루어진 정치, 경제 공동체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l 다양한 수요산업과 철강 신제품

세계 철강수요의 47~50%는 건설부문에 사용되고 있으며 기계산업(15%), 자동차산업(12%), 에너지(7%) 및 조선산업 등 기타 수송부문(5%)도 철강을 많이 소비한다.

철강 수요가 가장 많은 건설부문은 건축과 토목분야로 구분된다. 현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철골 구조로 건설되고 외벽에도 철강 재료를 사용하지만, 18세기 후반까지의 제철기술로는 대량의 철강재를 제작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의 건물을 완성할 정도로 많은 철강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철강 가격도 매우 비싸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철강이 건축에 이용된 최초의 사례는 1851년 영국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축된 현재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위치한 수정궁(Crystal Palace)이다. 정원사 출신 기술자인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수정궁은 가로 124m에 세로 564m로 약 6만 7,000㎡의 대지 위에 30만 장의 유리와 4,500톤의 주철로 건설되었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대형 구조물이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벽과 지붕, 그리고 경쾌하면서도 유려한 맵시를 자랑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물은 이전까지 건물은 목재나 석조로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냈다.

‘유리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으로 인식된 수정궁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조명받는 이유는 철강을 규격 재료로 만들어 조립한 최초의 건물이며, 철강재의 우수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건물이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규격화된 철강 프레임과 벽면을 구성하는 122cm × 30cm의 규격 유리를 기본으로 사용하여 조립해 만든 덕분에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할 수 있었으며 시공비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33년 착공하여 1937년 완성된 미국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철강이 사용된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1996년 미국토목학회(ASCE)는 현대 토목 건축물 중에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금문교를 선정한 바 있다. 길이 2,825m, 너비 27m인 이 강철 현수교는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을 잇는 목으로, 남단의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북단의 매린 카운티(Marin County)를 연결한다.

흥미로운 점은 금문교 건설에 사용된 철강제품의 질량은 약 83,000톤이지만, 현재 철강제품으로 다시 건설한다면 그 절반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철강의 고강도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선박 중량의 일정 부분은 철강재가 차지하고 있으나, 기존 제품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동일하거나 큰 제품(고강도)은 최종 제품의 중량을 가볍게 하는 한편, 수송 수단의 연비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자동차강판의 경우, 340 MPa(메가파스칼) 등급을 고강도강(High Strength Steel)이라고 지칭했지만 최근에는 고강도강보다 높은 강도를 보이는 초고강도강(Advanced High Strength Steel) 및 980 MPa 이상의 강도를 자랑하는 기가급 제품(일명 Giga Steel)이 일반화되고 있다.

철강제품 중에는 전력의 생산부터 송배전 그리고 전력의 소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품이 있는데 바로 ‘전기강판(Electrical Steel)’이다. 전기강판은 일반 철강제품과는 다른 기능성 제품으로 철손(Core loss)*과 자속밀도(Flux Density, Magnetic Induction)* 등의 전기적 특성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전기강판은 방향성 전기강판(Grain Oriented Electrical Steel)무방향성 전기강판 (Non-grain Oriented Electrical Steel)으로 구분된다. 방향성 전기강판은 특수한 공정을 거쳐 철판의 압연 방향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여 자기적 특성을 대폭 향상시킨 제품으로 주로 변압기에 사용된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결정이 방향성을 띄지 않고 불규칙(Random)하게 배열된 제품으로 대형 발전기부터 소형 정밀전동기까지 회전 기기의 철심(Core) 소재로 널리 사용된다. 특히 전기차 구동모터 등에 사용되는 Hyper NO 제품(바로가기)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향후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철손 : 자기의 통로로 작용하는 철심의 자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기저항에 의한 에너지 손실을 의미한다.
*자속밀도 : 일정한 자화력(전기에너지)을 받을 때 발생하는 단위 면적당의 자력선의 수로, 쉽게 설명하면 같은 전기에너지를 가했을 때 얼마나 자기에너지(자력선의 수)를 나타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특성치이다.

이종민 수석연구원은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KAIST, 고려대에서 각각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삼성SDI 기술본부에서 전기자동차용 폴리머 리튬 이온전지(PLI) 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2002년부터 포스코경영연구원에 재직 중이며 관심 연구분야는 기술경영, 생산 및  운영관리 분야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 주로 자동차강판, 전기강판 등 다양한 철강제품의 제품  전략 수립, 수요 전망 및 알루미늄, 타이타늄 등 비철금속 산업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최근에는  철강산업의 Net zero 전환과 관련된 연구를 다수 수행하고 있다.   KIAT(한국산업기술진흥원), KEIT(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  다양한 기관에 철강산업 관련 자문위원 활동을 한 바 있으며, 철강금속신문 및 스크랩워치 등 철강관련  언론기관에 일반 독자들을 위한 철강산업 및 철강제품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였다.라고 ㅈ거힌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의 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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