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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날 20돌] 쇳물은 대한민국號와 함께 흐른다

[철의 날 20돌] 쇳물은 대한민국號와 함께 흐른다

2019/06/07

올해로 20돌을 맞은 철의 날. 철의 날은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가 현대식 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을 생산한 날을 기념해 만든 날이다. 첫 쇳물이 나온 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용광로 안전밸브(블리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한국철강협회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설명자료를 배포하기까지 했다. 아, 그 동안 우리에게 쇳물은 무엇이었나,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l 대한민국의 첫 쇳물, 뜨거운 눈물과 함께 터졌다

포항제철(現 포스코)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가적 염원 속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정부는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철강 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관제철소 건설이 추진됐다.

“민족 숙원사업인 제철소 건설 실패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다. 실패할 경우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 
故 박태준 명예회장, 포항제철소 착공 (1970년 4월 1일)

지금 들으면 우스워보일 수도 있지만 제철소 건설 당시 ‘우향우 정신’은 현장에서 임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결과 자본과 기술은 물론 경험마저 부족했던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약속된 날짜에 고로 건설을 이뤄낼 수 있었다.

1973년 6월 7일, 박태준 사장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햇빛을 모은 돋보기의 초점을 채화봉 끝에 맞췄다. 첫 쇳물을 마중할 귀중한 불씨가 피워 올랐다. 그리고 1고로에 불을 붙인 지 21시간 만인,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드디어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왔다.

1973년의 첫 쇳물, 첫 출선의 기쁨을 표현한 일러스트 이미지

“만세! 만세!”

박태준 사장과 임직원들은 첫 쇳물을 본 순간 쇳물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의 첫 쇳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날 시작된 쇳물은 약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과 운명을 함께했다.

l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철의 날을 맞이하는 철강인의 마음

철강인들에게 6월 9일은 가슴 뭉클한 날이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46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용광로 불씨를 끄면 안 된다는 사명감은 변함없다. 수많은 건물, 자동차, 교량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지만, 그 역사를 기억하는 철강인들에게는 이 모든 건 ‘피와 땀의 결정’이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 준공 기념 아치

▲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포항종합제철 준공 기념 아치

쇳물의 탄생과 함께 더욱 속도를 낸 일관제철소 설립은 1973년 7월 3일 이뤄졌다. 국민적 여망이었던 포항 1기 설비가 준공되자, 전국에서 축하가 이어졌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는 ‘경축 포항제철 준공’이라고 쓴 기념 아치가 세워지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쇳물의 탄생과 포항제철 준공을 대대적인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때의 흥분과 성취감, 기대를 떠올려본다면 6월 9일 철의 날을 맞이하는 철강인들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l 국민 소득 78배 성장, 쇳물은 대한민국과 같이 흘렀다

포스코의 눈부신 성장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강 생산량 세계 1, 2위의 단일 제철소로 성장했다. 그 결과, 포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가 되었고, ‘영일만 신화’, ‘광양만 신화’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그 신화는 자연히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거대 산업의 기반에 놓여있는 철과 제철소를 표현한 일러스트 이미지

철강은 건축 자재, 기계, 선박,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폭넓게 사용되어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포스코가 성장하고 철강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자동차, 조선 등 국내 주요 제조업도 함께 성장했다. 양질의 철강재를 저렴하게 국내에서 공급받아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쇳물이 흐르기 전, 후를 주요지표로 비교해보면 그 영향을 더 뚜렷이 알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나온 1973년, 국내 조선 건조량은 1만 2천 CGT, 자동차생산은 2만 5천 대에 불과했다. 이후 1980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590만 톤, 조선 건조량은 65만 CGT, 자동차생산은 12만 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오늘날(2018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3,770만 톤(국내생산량), 조선 건조량은 770만 CGT, 자동차생산은 402만 9천 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나온 1973년, 조선건조량은 1만 2천 CGT, 자동차생산은 2만 5천 대. 이후 1980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590만 톤, 조선건조량은 65만 CGT, 자동차생산은 12만 대로 급격히 증가. 2018년 포스코의 조강생산량은 3,770만 톤(국내생산량), 조선건조량은 770만 CGT, 자동차생산은 402만 9천 대.

개개인의 삶도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73년 401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에는 3만 1,349달러로 78배 성장했다. 물론 대한민국 모든 산업 성장의 공을 철강으로 돌릴 수는 없다. 50년 눈부신 경제성장의 뒤에는 ‘후진국’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온 나라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그 치열했던 50년의 궤를 함께해온 철강인들은, 그 역사와 동행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73년 401달러에 불과했던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에는 1,645달러, 2018년에는 3만 1,349달러로 78배 성장.

l ‘지속 가능한 쇳물’을 위하여

20돌 철의 날, 철강인들은 사뭇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최근 제철소의 심장인 용광로 안전밸브(블리더) 논란을 바라보는 철강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철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해를 발생시키고, 대표적인 굴뚝산업이기 때문에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용광로는 오늘도 묵묵히 뜨거운 쇳물을 잉태하고 있는데, 올해 철의 날은 무거운 마음으로 쇳물의 미래를 걱정하는 날이 될 것 같다.

환경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와 국가 사회적 요구는 경제주체로서 철강업계 또한 받아들여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철강업계는 소재 산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부채 의식과 함께, 철강업은 결국 환경업이라는 숙명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친환경 제철소, 앞으로 포스코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나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러스트 이미지

따라서 환경문제, 특히 미세먼지 저감 등에 대해 철강업계는 확고한 의지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제철소는 현재의 기술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더 크게 얻는 쇳물의 길을 열어가야 할테니까.

철강인들은 지금까지 쇳물이 흘러온 길이 대한민국이 성장ㆍ발전해 온 길과 다르지 않았듯이, 앞으로도 두 길이 하나라는 것을 믿고 있을 것이다. 쇳물과 함께하는 모든 철강인들이 자긍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과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 나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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