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7월 각종 언론에 ‘EU 탄소국경조정제도(이하 CBAM)가 시행되면 한국 철강업계는 EU 수출에 매년 최대 3300억 원 이상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국내 산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화두가 된 CBAM이 무엇인지, 철강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 포스코그룹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CBAM의 도입 배경과 내용을 설명드리기에 앞서 ‘CBAM’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정답은 없으나 EU에서는 주로 ‘씨밤’이라고 부르는데요. CBAM은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을 줄인 것으로, 우리말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뜻합니다. 명칭 그대로 국경을 통과해 수입된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관세 부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제도를 말하죠.
현재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유럽연합(EU)이 CBAM을 시행 중이며 영국과 미국도 유사한 성격의 수입 규제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기존 수입 규제는 반덤핑, 세이프가드와 같이 수입품의 가격과 수량을 중심으로 한 불공정무역에 초점을 맞춘 것에 반해 CBAM과 같은 탄소통상 규제는 환경과 통상이 결합된 신(新)무역장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2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이 EU 행정부인 EU집행위원회의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EU는 지속가능성 달성을 위한 로드맵으로 그린딜*을 발표하고, Fit for 55*라는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 정책 꾸러미의 하나로 CBAM을 도입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린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 6대 정책 분야별 세부 정책
*Fit for 55: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 55% 감축을 목표로 한 기후 변화 대응 법안 패키지
사실 유럽 내에서는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한 수입 제품 규제가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제22대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수입업자가 EU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는데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8년 EU 내 공통의 탄소관세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CBAM 도입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7월, CBAM 법안 초안이 공개되면서 그간 추측했던 도입 배경과 목적, 그 형태가 더욱 명확해졌는데요. 사실 CBAM은 EU에서 발생하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해결하고자 도입한 제도입니다.
탄소누출이란 EU와 같이 탄소배출 감축 규제가 강한 권역 내의 제조업 생산시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로 이전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CBAM은 EU에서 해외로의 생산 시설 이전에 따른 제조업 경쟁력 약화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에서 탄소 규제 없이 생산된 수입 제품과 탄소 비용을 지불해 상대적으로 생산 단가가 높은 유럽 제품 간의 경쟁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는데요. EU의 입법 과정은 집행위원회가 초안을 발표하면 EU의회와 27개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EU이사회에서 각각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하고 집행위-의회-이사회 3자 협의를 거쳐 최종 법안을 채택합니다. CBAM 법안도 이러한 협의 과정을 거쳐 초안 발표 후 약 2년 만인 2023년 5월 17일에 최종 확정된 법안이 발효됐습니다.
CBAM이 적용되는 산업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까지 총 6개 업종으로 높은 탄소배출량과 EU 내 수출입 영향도를 고려해 선정됐습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위 6개 업종의 대상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모든 국가의 제품에 CBAM 의무가 적용되는데요. 철강을 자세히 살펴보면 포스코가 생산하는 열연강판, 냉연강판, 후판, 스테인리스, 선재, 전기강판 등 일반적인 철강제품뿐만 아니라 펠렛, DRI(직접환원철) 등의 철원료와 페로니켈, 페로크롬, 페로망간과 같은 합금철, 철강제품에 해당하는 강관, 볼트, 너트 등의 가공 제품도 모두 해당됩니다.
CBAM의 시행 시기는 전환기간과 전면시행기간으로 나뉩니다. 시기별로 이행해야 할 의무도 구분되는데요. 시기별 의무에 관해 설명하기 전에 ‘누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CBAM은 EU로 수입된 철강 등의 대상 제품에 적용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EU에서 철강을 수입하는 수입자’가 CBAM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포스코의 경우 대부분 EU에 소재한 고객이 수입자에 해당됩니다.
① 전환기간(2023년 10월 1일~2025년 12월 31일)
먼저 전환기간은 2026년 CBAM 전면 시행 전에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2023년 10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시행되는 리허설 기간입니다. 전환기간 동안 EU수입자는 분기마다 직전 분기에 수입한 제품의 내재 탄소배출량과 그와 관련된 정보를 온라인으로 반드시 신고해야 합니다. 2023년 4분기에 수입한 철강제품의 탄소배출량을 2024년 1월 31일까지 신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보고서를 제출한 후, 2025년 4분기 수입분에 대한 정보를 2026년 1월 31일까지 신고하고 나면 전환기간이 종료됩니다. 이때 내재 탄소배출량(embedded emissions)은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량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는 수입자가 신고 의무를 차질 없이 이행하도록 CBAM 규정에 맞게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적시에 고객사에 정보를 전달해야 합니다.
전환기간 동안 생산자는 직접 계산한 탄소배출량에 대해 제3자로부터 검증을 받을 의무는 없습니다. 이해를 돕고자 앞서 리허설이라고 언급했지만, 수입자가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수입자가 위치한 EU회원국의 판단에 따라 신고하지 않은 탄소배출량 1톤당 10에서 50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습니다. 만약 수입 철강제품 1톤당 탄소배출량이 2톤이라면 최대 100유로의 과징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코는 여러 부서가 합심해 전환기간부터 수입자들이 신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입자와 고객사가 신고 과정에 필요한 내용을 요청할 때를 대비해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② 전면시행기간(2026년 1월 1일~)
2026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전면시행기간부터는 CBAM으로 인한 실질적인 비용이 발생합니다. 수입자는 연 1회, 매년 5월 31일까지 직전 해에 수입한 제품의 총량과 그 제품에 포함된 내재 탄소배출량을 신고하고 배출량만큼의 CBAM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합니다. 1개의 CBAM 인증서는 1CO2톤을 의미하고, 인증서 1개의 가격은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도(EU-ETS)*의 배출권 개당 가격과 연동돼 있습니다.
*EU-ETS(EU Emissions Trading System): 연간 단위로 탄소 배출 허용 총량을 지정하고 생산자는 탄소배출량만큼 배출권을 구매해 의무 제출하는 제도로 배출권 잉여분과 부족분은 경매로 거래하도록 허용. 제조업계와 발전 부문에서 운영 중인 1만여 개의 시설과 항공사 등에 적용되고 2024년부터 해운 분야에도 확대 적용. 2005년 ETS 1기를 시작으로 현재 2021~2030년까지 ETS 4기가 시행 중이며 회기가 거듭될수록 배출 허용 총량과 철강 등 일부 업종에 지급 중인 배출권 무상할당을 축소하면서 EU 내 탄소배출량 감축 유도. 2024년 2월 13일 기준 EU-ETS 배출권 개당 가격은 약 57유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CBAM은 탄소 감축을 위한 비용 관점에서 EU제품과 수입 제품 간의 경쟁에서 발생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고자 도입된 제도입니다. 따라서 CBAM에 따라 수입 철강에 부과되는 비용은 EU에 있는 철강사들이 지불하고 있는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을 기준으로 계산됩니다. EU-ETS는 철강, 알루미늄과 같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수입에 취약한 업종에 ‘EU가 정한 벤치마크’라는 기준에 따라 일정 수량의 탄소배출권을 무상으로 지급하는데요. EU 안에서 탄소배출량 규제가 점차 강화됨에 따라 EU의 철강기업에 할당되는 무상 탄소배출권은 2026년부터 2033년까지 점차 줄어들어 2034년에 완전히 폐지됩니다.
EU철강사들이 구매할 탄소배출권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품에 부과되는 비용도 함께 증가합니다. 전면시행기간부터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비용으로 연결돼 CBAM 규정에 맞게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코와 같은 해외 생산자는 매년 1회 의무적으로 제3기관에 탄소배출량 계산 내역과 절차를 현장 실사를 포함해 의무적으로 검증받아야 합니다.
전면시행기간에 적용될 의무와 각 세부 사항에 대한 약 16개의 시행령은 전환기간 동안 연이어 발표될 예정입니다. 시행령에는 제품을 기준으로 한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 CBAM 인증서 거래 조건, 검증기관의 지정 조건과 검증 원칙 등이 담길 예정인데요. 시행령의 한 문장과 한 단어가 수입자와 생산자의 재정적, 행정적 부담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CBAM이 한국 철강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금액으로 추산하기에는 아직 변수가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철강 수출량을 보면 그 영향이 상당하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CBAM 대상 업종별로 한국에서 EU로 수출한 금액은 철강 미화 43억 불, 알루미늄 5억 불, 비료 500만 불, 시멘트 100만 불로 철강이 압도적입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3년 한국에서 EU로 철강을 수출한 양은 339만 톤으로 한국이 전 세계 수출량 약 2734만 톤의 1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2023년 EU에 위치한 다수의 고객사에 자동차용, 신재생에너지용 제품 등 고부가가치를 포함해 사실상 모든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므로 유럽 시장은 놓쳐선 안 될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EU를 기준으로 보아도 2022년과 2023년, 한국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빈자리를 대신해 인도, 튀르키예와 더불어 EU로 가장 수출을 많이 하는 상위 3개국에 속합니다.
CBAM에서 제품 단위로 배출량을 계산하는 구조를 살펴보면, 제철소에서 발생한 직접배출량에 구입한 원재료의 내재배출량을 합산해 최종 제품의 배출량을 산정합니다. 이때 CBAM의 대상 품목에 해당하는 펠렛, 합금철 등의 원재료를 외부로부터 구매하는 경우, 원재료 생산자로부터 제품 배출량을 수취해야 합니다. 이는 포스코의 열연강판으로 파이프를 생산하는 국내 고객사에 포스코 열연강판의 탄소배출량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026년부터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CBAM 인증서 구매비용을 결정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가 됩니다. 유럽으로 직접 제품을 수출하고, 국내외 다수의 고객사와 해외 생산법인, 다른 사업회사에 소재를 공급해 간접적으로도 수출하고 있는 포스코에 CBAM이 미치는 영향은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상당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CBAM과 같이 철강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무역장벽에 대응하려면 밸류체인 전반의 역량을 결집해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포스코는 2019년 말 EU의 CBAM 도입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포스리와 협업해 CBAM이 어떤 방식으로 도입될지 예상하고 분석하면서 대비했습니다. 법안이 점차 구체화되자 2022년 8월 CBAM 대응 TF를 발족해 사업회사 8개 부서가 각자 역할을 나눠 협업했습니다.
2024년부터는 TF에서 정립한 각자의 역할을 상시 업무화 해 대응 중입니다. TF 킥오프 당시 참여 부서 외에도 다양한 부서들이 유럽 수출과 관련된 밸류체인 전반에서 CBAM 의무를 차질 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또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스틸리온과 상시 교류하고 대응 현황을 상호 점검하면서 시너지를 더하고 있습니다. 유럽 현지에서는 포스코유럽의 브뤼셀 사무소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독일법인에서 발 빠르게 현지 정보를 수집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자 분주히 뛰고 있습니다.
CBAM처럼 법제화된 무역장벽에 맞설 때는 정부, 철강협회와 함께 민관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그 효과가 배가 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우리 정부도 범부처 CBAM 대응 TF를 출범해 주기적으로 정부의 역할과 업계 지원 사항을 점검하고, 기업의 목소리를 EU당국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산업통상자원부의 CBAM 대응 담당 부서와 상시로 협력해 기업과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각자의 계획과 결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법령이 공표되고 난 후 제도를 수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CBAM의 법안과 시행령들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것을 정부와 EU집행위원회에 선제적으로 피력해 법령에 반영해야 합니다. 때문에 EU당국과 관련 핵심 이해관계자를 직접 만나 적극적인 아웃리치 활동을 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스코는 CBAM 검토 초기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EU집행위원회에 CBAM이 수입자에게 불리한 제도로 설계되지 않도록 필요 사항들을 세세하게 제시했고, EU당국에 포스코를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확고히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CBAM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간의 노력으로 전환기간 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소정의 성과도 있었고 1차 신고도 무사히 마무리하고 있지만, 아직 8번의 전환기간 신고가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전면시행기간인 2025년까지 한국 철강업과 회사에 직결된 사안을 결정할 약 16개의 시행령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각 시행령에 회사가 필요한 내용들을 반영해야 하고, 더 나아가 유럽 소재 기업에 적용되는 EU-ETS 제도와 비교해 CBAM이 수입 철강제품을 차별하는 제도가 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정부와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미 세계 철강 시장은 유럽을 필두로 저탄소 철강이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고객사는 양질의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얼마나 환경을 고려해 생산했는지를 척도로 철강제품을 평가할 것입니다. CBAM은 환경과 수입 규제를 결합한 무역장벽의 시작이고 앞으로 어떤 국가에서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포스코는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전사적으로 목표 달성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선도적인 기업입니다. 제철보국의 정신으로 숱한 역경을 이겨내 온 포스코라면 어려운 대외 여건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시장을 주도하는 플레이어가 될 저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합니다. 포스코가 앞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라는 왕좌를 유지하려면 CBAM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고객의 요구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철강 산업을 뒤흔들 CBAM의 등장, 그러나 포스코그룹은 숱한 역경을 이겨내 온 저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습니다. 포스코그룹이 앞으로 CBAM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