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회색인간>이라는 책이 출간된 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작가에게 쏠렸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라서만은 아니었다. 글쓰기를 전공하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김동식이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가 10여년간 주물공장에서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는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3일에 한 편씩 글을 썼다고 한다. 24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회색인간>은 출간한 지 석 달도 채 되기 전에 6쇄를 찍었을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있다. 김동식 작가가 주물공장에서 어떻게 소설가의 꿈을 키워왔는지 포스코 뉴스룸에서 직접 만나 들어봤다.
┃책과 함께 전국을 누비다
부산 영도 출신인 김 작가는 사람을 많이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는 편이 아니다. 첫 책이 나오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잘 될 거야’라던지 ‘이 책으로 인생이 바뀔 것 같아’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름 뒤에 작가라는 명칭이 붙은 후에도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게 바뀌었다고 한다.
“책 출간 후 전국에서 저를 불러주시더라고요. 독자와의 대화나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지역도 많았습니다. 책이 저를 여행 시켜 준거죠. 초기 오프라인 모임에서 저를 보셨던 독자 분을 얼마 전에 다시 뵈었는데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주변에서도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는 책을 통해 전국을 누비며 여행의 매력을 깨달았다. 산책도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하지 않았던 김 작가에게 스스로 여행을 간다는 건 굉장히 큰 일이었다.
“전주에 방문했을 때는 일부러 하룻밤을 묵었어요. 거리를 구경하는데 생각할 게 많아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이래서 여행을 가는구나’ 이해했어요. 아이디어도 생각나고, 소재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많지 않고, 대화할 때도 눈을 마주하는 일이 적었다. 지금은 처음 인터뷰 때보다 말이 많이 는 편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솜씨가 늘어난 덕분이다.
┃“지금도 3일에 한 편씩 글 씁니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특별한 게 없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심심풀이로 유명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읽다가 문득 ‘나도 한번 글을 써볼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글을 잘 쓰면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더라고요. 그래서 가볍게 쓰기 시작했죠. 사람들 반응을 볼 때 즐겁더라고요. 그게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웹에는 글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 한 편을 올리면 금세 묻히더라고요. 새로운 댓글을 보기 위해서 제 스스로 정해놓은 기간이 ‘최소 3일에 한 편씩은 쓰자’ 였어요.”
분량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메모장 글자 수로 1만 자 정도가 된다. 그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말하며 웃었다. 악플이라도 하나의 댓글이 달렸다면 최소한 한 명은 봤다는 거니까. 댓글 반응을 보기 위해 정해놓은 글 쓰는 기간이 어느새 습관으로 자리 잡아 김 작가는 지금도 3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액체 상태의 쇳물이 완성품이 되는 과정이 신기했죠”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10여 년간 일했던 그에게 금속은 어떤 느낌으로 기억되었을까?
“400~500℃ 정도 끓인 금속 액체를 국자로 떠서 500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큰 구멍 안에 붓는 일을 했어요. 단추나 지퍼, 옷핀들을 만들었죠. 제 손에서 부자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신기했죠. 제가 주로 다룬 건 아연이었지만, 철에 대한 감상도 비슷해요. ‘철은 뜨겁다’.”
아직까지 주물공장에서의 경험을 글에 담지 않았다. 그의 작업 방식이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쓴 적이 없네요. 제 글은 흥미로운 상황 설정이나 재밌을 것 같은 소재를 가지고 써요. 쇳물을 부어 형태를 만든다는 건 아이템적으로 좋아요. 만약 쓴다면 이런 부분을 살려 판타지 요소로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8년은 추억이 가득한 해
첫 책을 출간하고 과거와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그에게 2018년은 신기한 일 투성이였다.
“그동안 흘러가는 대로만 살았죠. 그래서 한 해를 정리하거나 새해라고 목표를 세운 적은 없어요. 2018년은 제게 다르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기하고 기념할만한 일도 많았죠. 독자와의 대화도, 라디오 출연도 제게는 모두 도전이었죠.”
올해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반복되는 하루를 살던 그의 삶이 다채로운 경험으로 물었다. 김동식 작가는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 이어 최근 2018 SBS D FORUM(이하 SDF)과 협업해 소설 <성공한 인생>을 출간했다.
기회가 생겼을 때 망설이지 않았고, 언제나 도전했다. 그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평생 꿈이 없어서 목표를 잡아본 적이 없는데,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고 싶어요. 내년에는 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고, 사람들이 제 글을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