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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보국 향한 위대한 대장정, 대한민국 최초 일관제철소 탄생기

종합준공 50주년 특별기획

제철보국 향한 위대한 대장정, 대한민국 최초 일관제철소 탄생기

2023/07/06

포항 1기 종합준공 50주년 특집 제철보국 향한 위대한 대장정 대한민국 최초 일관제철소 탄생기의 타이틀 이미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구 포석호에요~ 콩그레추레이션! 올해 7월 3일은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포항 1기 설비를 종합준공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혹시 포동이들은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맞아요~ ‘좋은 철을 만들어 국가와 국민에 공헌한다’는 뜻으로 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자주 하신 말씀이죠! 철은 자동차, 조선, 건설, 가전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기초소재로서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답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1910년대만 하더라도 일제치하 군수공업의 일부에 불과했어요. 1918년 황해도 송림시에 일본 미쓰비시제철이 ‘겸이포제철소’를 건설했지만, 여기서 생산된 선철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 모두 일본으로 실어갔대요.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우리나라 철강의 꿈은 1958년 최초의 종합제철 건설 계획 수립으로 구체화 됐는데요. 3개의 정부를 거치며 다섯 번의 좌절(1958.8, 1961.3, 1962.4, 1962.11, 1967.10), 여섯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일관제철소 착공(1970.4.1)을 성공시켰답니다. 자본, 기술, 경험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출발한 제철보국의 단단한 꿈! 포항제철소 1기 종합 준공 50주년을 맞아 오늘은 저 포석호가 흥미진진한 대한민국 일관제철소 건설 대장정을 소개해 드릴게요!

일관제철소 탄생기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이다. 1958년 8월 26일, 한국 최초 종합제철 건설계획 수립. 정부는 철강업이 경제 발전의 지지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최초의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수립했는데요. 하지만 1960년대 자금부족, 정국 혼란과 국내 여론의 반대 등으로 이후 다섯 차례(1958.8, 1961.3, 1962.4, 1962.11, 1967.10)에 걸친 제철소 건설 시도는 결국 무의로 끝나고 말았어요. 창립 역사는 아래와 같다. 1966년 12월 6일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공식 출범. 1967년 6월 30일 정부, 포항을 종합제철 입지로 확정. 포항제철소 부지 사진이 있다. 제철선진국인 일본과 미국조사단은 종합 제철 부지로 월포·포항·삼천포·울산·보성 등 여러 곳을 검토했으나, 정부는 서·남·북 3면의 육지가 영일만을 감싸면서 동해의 강한 풍랑을 막아주기 때문에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 유리하고, 공업용수 확보 및 부지가 넉넉한 포항을 최종 입지로 선정했어요. 1967년 10월 3일 정부, 종합제철공업단지 기공식 거행. 종합제철공업단지 기공식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사진이 있다. 10월 20일 정부와 KISA, 종합제철 건설 기본협정 체결. 정부는 미국 코퍼스사를 중심으로 선진 4개국 7개사로 구성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과 시설규모 최초 연산 60만 톤, 자금 규모는 외자 9570만 2000달러(가격 변동폭을 10% 안팎으로 함), 내자 3500만 달러의 협정을 체결했어요. KISA 대표단과 한국 측 대표단 간의 2차 연석회의 사진이 있다.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 박태준 초대 사장 취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식 사진이 있다. 5월 20일 포항 건설사무소 개설(롬멜하우스). 롬멜하우스 전경 사진이 있다. 포항 일관제철소 건설을 진두지휘한 건설사무소 롬멜하우스는 목조 2층 가건물을 신축한 것인데요. 낮에는 공사를 지휘하는 사령탑으로, 밤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들이 책상을 침대 삼아 새우잠을 자는 숙소로 쓰였어요. 열악한 사무소였지만 제철소를 탄생시킨 산실로서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죠! 건설 역사는 다음과 같다. 1969년 8월 4일 정부, 포항제철 설비규모 103만 톤으로 확정. 9월 2일 KISA와의 기본협정 해지. 종합제철 재검토 신문기사와 KISA와의 기본협정 중 자동 해지요건 부분 사진이 있다. 가장 중요한 자금 도입에서 큰 난항이 빚어졌어요. KISA와 1년 넘게 지리한 협상을 이어갔지만, 건설에 필요한 외자 중 도입이 확정된 것은 4300만 달러에 불과했어요. 게다가 차관 요청 심사를 위한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발표된 것이었죠.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은 무리한 시도라는 주장에 KISA 회원국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금 지원을 미루던 KISA가 제철소 건설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12월 3일 대일청구권자금 전용. 포항종합제철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한일 기본협약’ 체결. 포항종합제철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한일 기본협약을 체결 중인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1970년 4월 1일, 포항 1기 종합 착공. 포항 1기 설비 종합 착공식 사진이 있다. ‘만성적인 빈곤 추방과 자립경제 달성’이라는 국민적인 염원을 안고 추진한 포항 1기 설비 종합착공은 우리나라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투자로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됐으며, 철강재 자급 촉진, 국제수지 개선 및 고용 증대, 자주국방능력 강화 등에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1970년 3월 1일 창고 설비를 착공한 데 이어 종합착공 당일인 4월 1일에는 공작정비공장을 착공했습니다. 10월 1일 열연공장, 10월 30일 후판공장, 1971년 4월1일 제선공장, 7월 2일 제강공장 등 주요 설비를 착공한 데 이어 총 18개 설비를 착공하며 건설 러시를 이루었습니다. 1971년 8월 20일 건설비상1호 열연비상 선포. 열연공장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 중인 직원들의 사진이 있다. 생산설비 중 가장 앞서 착공했던 열연공장은 4월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설계 지연과 건설 자재, 인원 부족에 여름 장마까지 겹치면서 공기가 지연될 위기에 처했죠. 박태준 사장은 ‘열연 비상’을 선포하였고, 직원들은 제철소 건설에 사명감을 가지고 공기만회를 위하여 총력을 다했어요. 악전고투 끝에 비상체제 돌입 2개월만에 5개월분의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었죠. 이 열연비상이 계기가 되어 회사는 1기 건설공사를 예정보다 1개월 단축할 수 있었는데, 이후부터 공기준수를 위한 포스코 특유의 ‘돌관경영체제’가 또 다른 전통으로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준공 역사는 아래와 같다. 1972년 7월 4일 포항 1후판공장 준공. 준공 후 시험조업에 들어간 포항 1열연공장 사진이 있다. 10월 3일 포항 1열연공장 준공. 포항 1기 설비 가운데 최초의 생산공장이었던 후판공장과 핵심설비 중 하나인 열연공장이 드디어 준공됐어요. 후판공장은 7월 31일 총 62톤의 후판제품을 첫 출하하고 열연공장은 10월 5일 열연박판, 11월 5일 열연코일을 출하했답니다. 1973년 5월 7일 고로 잔공사 비상 선포. 직원들이 착용한 빨간 안전모 사진이 있다. 화입을 42일 앞둔 4월 26일 현장을 시찰하던 박태준 사장은 크고 작은 공사 500여 항목이 아직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로 건설 비상을 선포했어요! 회사는 비상 선포에 따라 고로 운전실에 지휘본부를 설치했고, 관련 직원들은 빨간 안전모를 착용하고 돌관작업을 개시했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5월 22일까지 고로 화입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죠! 6월 9일 포항 1고로 첫 출선 오전 7시 30분. 포항 1고로 첫 출선에 기뻐하는 임직원들 사진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쇳물이 터져 나온 날이에요.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제철소 전 임직원은 쇳물을 보며 기쁨의 만세를 불렀답니다. 1999년 한국철강협회는 우리나라 현대식 용광로에서 처음 쇳물이 나온 날인 6월 9일을 철의 날로 제정해 철강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어요. 6월 15일 포항 1제강공장 준공. 6월 19일 포항 1분괴공장·강편공장 준공으로 일관생산공정 완성. 7월 3일 포항 1기 설비 종합준공. 포항 1기 종합 준공식 사진이 있다. 제선, 제강, 압연, 지원 설비 등 일관체제를 갖춘 총 22개 공장과 설비로 구성된 포항 1기 설비가 39개월 만에 종합준공된 날이에요. 국내에 없던 일관제철소의 탄생은 국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답니다.

1974 포스코와 2022 포스코를 비교한 인포그래픽이다. 1974 포스코 매출액은 1,042억 원이고 2022 포스코 매출액은 42조 6,951억 원이다. 약 410배 증가했다. 1974년 포스코 영업이익은 420억 원이고 2022년 영업이익은 2조 2,945억 원이다. 1974년 포스코 자산은 2,232억 원이고, 2022년 포스코 자산은 44조 5,499억 원이다. 1974년 포스코 조강생산량은 115만톤이고 2022년 포스코 조강생산량은 3,421만톤이다. 1974년 포스코 제품생산량은 102만톤이고 2022년 포스코 제품생산량은 3,227만톤이다. 위 자료들은 포스코 별도 실적 기준이다.

 

2050 포스코의 모습은?

21세기 세계 경제의 화두는 바로 탄소중립! 나날이 극심해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포스코는 2020년 12월 국내 철강업계 최초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요. 2026년부터 석탄이 아니라 수소를 활용해 철광석을 환원하는 수소환원제철 시험설비를 도입하고, 2030년에는 상용화 기술을 완성한 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2050년의 포스코는 어떤 모습일까요? 포스코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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