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6월 16일 포스코 현장 기술인 최고의 영예인 2016 포스코명장(名匠)을 선발하고 임명패를 수여했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현장의 창의적 개선활동과 회사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포스코명장 3인을 차례로 만나보자.
[신승철 명장은…]
신승철 명장은 연속소둔기술의 최고봉으로 통한다. 강한 도전정신과 문제 해결의지, 적극적인 자세가 그를 포스코명장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와 포스코의 인연은 1979년, 포철공고에 입학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철공고에서 날아온 최종합격 통지서가 그의 인생을 냉연소둔 1인자의 길로 이끈 것이다.
신승철 명장은 34년 전 포스코에 입사해 포항 냉연부에서 설비·기술을 학습하고, 신기술을 조업에 적용해 실질적인 성과를 많이 거뒀다. 그는 광양 1냉연공장 연속소둔라인(CAL) 조업기술을 확립해 언제든지 자동차 외판 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했다. 저비용·고청정 전처리기술, 고미려·고장력강 제조 연속소둔기술, BAF(Batch Annealing Furnace)기술 등 다양한 기술은 물론 소둔로 제어 개선을 통한 장력 안정화 등 제안 9건도 보유하고 있다.
그의 특허 및 노하우 4건 중 CAL 소둔로 덴트프리(dent-free)기술은 광양 1냉연공장 CAL 노내 덴트 발생률을 5년 연속 0%대로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기술개발에 특히 관심이 많은 신승철 명장은 해외로의 기술전수 열정까지 보여주고 있다. 해외 현지채용인의 한국 연수에 신경쓰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시운전 요원으로서 파견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소속 파트원들의 베트남·인도 등 해외 냉연법인 슈퍼바이저 파견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역량 향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해외법인 조업 정상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해외 파견으로 습득한 조업경험과 신기술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직원들과 공유한다.
신승철 명장은 아직까지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입사 후에도 학위와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갈구하고 노력하는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겸손한 자세로 오늘도 ‘현장이 강한 냉연’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대학 진학보다 값진 ‘명장 임명패’ 부모님께 안기다
1963년생인 신승철 명장은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인데도 목소리와 인상에서 푸른 청년의 기백과 열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노동으로 쌓인 찌푸린 인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신승철 명장과 함께 일을 해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가 있다. 그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에 도전하길 좋아한다는 것이다. 청년 같은 생기발랄한 인상은 일을 회피하지 않고 즐기는 천성에서 온 것일까. 업무에 임하는 태도가 사람의 인상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신승철 명장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도 양주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신승철 명장은 조부모님과 함께 3대가 한집에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인 농사를 지으셨는데, 슬하에 있는 3남 1녀의 학비를 대는 것이 빠듯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는 열성적이셔서 초등학교 육성회장도 오래 하셨고,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뒷바라지하셨다. 신승철 명장 역시 초등학교·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고, 당시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입학원서를 낼 수 있었던 포철공고에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되어드렸다.
"합격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저를 멀리 포항에 보낸다는 생각에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지만, 장학금 혜택도 있고 TV에 자주 나오는 그 유명한 포항제철에 입사가 유력하다고 해서 흡족해하셨어요. 이번에 포스코명장이 되고 나서 임명패를 들고 고향에 부모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만큼이나 기뻐하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선 동네 노인정에 ‘우리 아들 포스코명장 됐다’고 자랑하시면서 50만 원이나 기부하셨답니다. 아들로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포철공고 합격이 포스코 입사로, 또 포스코명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신호탄이 된 것 같아요."
그는 포철공고 재학시절 과 수석도 하고, 전교 석차에서도 최상위권 유지는 물론이고 우등상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학업에 정진했다. 대학 진학에도 목표를 두었으나, 졸업 무렵 형·누나의 학비를 대느라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던 신승철 명장은 1982년 2월, 졸업과 동시에 포스코에 입사했다.
깜빡하는 순간 실수하기도··· 반성하고 ‘잘해 보자’ 다짐
누구나 그렇듯 신입사원 시절은 혹독한 학습과 단련의 시기다. 이 때를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는 시간으로 이해하고 잘 극복하면 회사 생활이 삶과 겹쳐지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회의감과 좌절을 느껴 발전하지 못하기도 한다.
신승철 명장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답게 새내기 시절 에피소드도 즐겁게 들려줬다.
"그 당시엔 형산강 다리를 넘어서 하숙집으로 바로 가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이 형산강 다리 건너편에 식당들이 많아서 허기진 포스코 직원들을 유혹했거든요. 식당마다 안전모가 매달린 자전거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마치 누구네 식당에 손님이 많은지 자랑하는 것 같았죠. 저도 선배나 친구들과 황색 근무복, 일명 ‘노란 병아리’ 복장으로 하루를 넘길세라 자전거를 세워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담론을 벌였던 추억이 많아요. 사회생활로 발을 떼면서 인격적으로 많이 성장한 시기였죠."
입사 3년차에 그는 전해청정라인(ECL)에 근무했다. ECL은 냉연강판의 압연유를 제거하는 전처리 공정인데, 용접부 파단(破斷)이 곧잘 발생해 강판이 두 동강 나곤 했다. 그 당시엔 설비 제어기능이 취약해서 수동 운전이 많았기 때문에 코일풀림장치(POR; Pay Off Reel)에서 코일이 다 풀리면 운전자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 라인 스피드를 줄여주거나 멈춰줘야만 했다.
문제는 야간근무를 설 땐 너무나 졸려서 코일이 다 풀리는 걸 놓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신승철 명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깜빡 조는 순간 다 풀린 코일의 꼬랑지가 ‘콰당탕’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졸다가 꼬랑지를 놓치면 전처리 탱크의 용액을 전부 빼내고 파단된 강판을 복구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하도 자주 겪어서인지 숙달이 돼서 30분 정도면 정상 조치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이런 날은 작업 반성회를 실시하는데, 주임님, 계장님께 혼도 좀 나고 퇴근할 때는 ‘욕도 먹었으니 앞으로 잘해 보자’고 동료들과 격려하면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며 기분을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수를 하면서 계속 업무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과정이었죠. 그때 코일 꼬리를 잘 놓치시던 선배들께선 대부분 퇴직하셨고, 1년에 한 번씩 모임에서 만나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하지요."
고백을 마친 그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긍정적으로 각인하고 털어버리는 과단성(果斷性)도 오늘날 그를 포스코명장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실패 딛고 3년 만에 최고 車강판 품질미션 달성
2000년대 들어 포스코는 창립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적인 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국내 경쟁사들이 등장하고, 중국에서 생산된 저가 철강재가 대거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는 포스코만이 생산할 수 있는 월드프리미엄(WP; World Premium)제품 생산에 주력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로 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인 광양제철소는 압연부문에서 연구진과의 협업을 통해 ‘포스코만이 생산할 수 있는 특화된 자동차강판 제품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신승철 명장과 그의 파트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했다. 일을 즐기는 그였지만,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과제였다. 그는 그때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했다.
"2009년 통합파트장으로 보임받았을 때예요. 저희 압연부문의 목표는 월드프리미엄제품의 생산성과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양제철소 냉간압연부문 소둔공정에서 ‘가장 오래된 설비’로 ‘최고의 자동차강판’을 만들라는 명을 받은 거죠. 자동차 외판재로 쓰이는 강판은 그 어떤 제품보다도 표면이 미려해야 해요. 그러나 설비가 노후하고 기능이 떨어져 강판 품질에 결함이 많았어요. 일반제품 정도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고품질과 연속 대량생산,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장의 ‘개선’ 수준이 아닌 ‘혁신’ 수준의 활동이 필요했어요. 조직적으로 대응하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연속소둔라인(CAL; Continuous Annealing Line) 설비를 개조, 개선하면서 강판 표면품질을 테스트하는 날이 계속 이어졌다. 수없는 시행착오 과정 중 예상치 못한 트러블로 라인 감속·정지 등 사고가 일어날까봐 흐르던 땀방울마저 식어버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통합파트장이던 신승철 명장과 파트원들은 미션으로 받은 ‘일본향(向) 자동차 외판 생산품질 확보’를 달성하고자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좌절과 쓰라림을 크게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전후 공정을 연계해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핵심설비의 관리기준을 명확하게 재정립했다. 품질 보증을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체계적이고 엄격하게 제품 검사도 실시했다. 공장 스태프까지 참여한 대대적인 공정품질 관리에 나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침내 2011년 2월, 3년 만에 신승철 명장과 파트원들은 고객사가 요구하는 자동차강판 절대 품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 됐다.
高성과는 ‘의식변화’에서··· 학습 데이터화 앞장
신승철 명장은 이 커다란 과제를 해결하면서 깨달았다. 기술적인 역량을 끌어올는 데 필요한 것은 파트원과의 공통된 목표의식, 포기를 모르는 열정, 그리고 상호신뢰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조직활성화 워크숍과 학습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동료의 의견을 청취, 공동의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 의식변화에 힘썼다. 광양제철소 냉연부에는 전통적으로 ‘후배 섬김 발씻기’ 행사를 자주 실시하는데, 이런 이벤트는 신승철 명장에서부터 자주 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운산 어치계곡에서 있었던 부서 워크숍에서 후배사원들을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발을 씻겨주면서 ‘월드프리미엄 자동차강판 생산은 우리 모두의 가슴 설레는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었죠. 이렇게 직원들의 생각을 변화시켜나가다 보니 생산품질 향상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되더군요. 젊은 직원들의 마인드가 적극적으로 바뀌었어요."
직원들의 의식변화는 다양한 성과로 나타났다. 이물 묻음이 없는 SPM(Skin Pass Mill) 조업기술이 그중 하나다. 압연공정을 진행하다 보면 압연유 찌꺼기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압연 중이던 강판에 스컴(scum·이물질)이 떨어져서 결함이 생기기도 한다. 신승철 명장은 SPM 압연공정에 강판의 폭 변동에 대응하는 에어와이퍼(air wiper), 그리고 압연기 오염의 원인이 되는 스컴 제거용 자동 세척장치를 개발, 적용했다. 이 덕분에 압연유 및 스컴성 이물 낙하로 인한 강판 결함이 현저하게 개선됐다. 그동안 작업자들은 압연기에 직접 접근해 수동으로 결함에 대응해야 했는데, SPM 조업기술은 협착 재해 발생요인까지 원천 제거하는 성과까지 가져왔다.
또한 그는 직원들에게 ‘공부하는 소둔부문’을 강조하면서 개선활동의 전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숙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직원들은 전후공정 설비를 더 깊이 공부하고, 현장 관리현황을 매일 기록했다. 이렇게 데이터화된 자료들은 설비를 더 효율성있게 가동하고 더 깨끗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생산 시 발생하는 소재 및 설비의 변화에 대한 기록을 분석, 개선을 반복해 설비사고와 품질사고 제로(zero)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27년이 지난 노후 설비로 무결함 연속소둔로(annealing furnace)를 구축해 5년간 노내(爐內) 덴트 결함 발생률을 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신승철 명장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이는 전처리 스트립(strip) 백색도를 90% 이상으로 관리하고, 소둔로에서 스트립이 사행(蛇行·구부러짐)하거나 파단되더라도 내화 단열재가 손상되지 않도록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단열재 전체를 커버링해 소둔로의 청정성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소둔로 내부를 진행하는 2300m 길이의 스트립이 미끄러지는 슬립(slip)현상 등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트립 장력 최적화 △롤크라운(roll crown) 미세 조정 △롤 조도(粗度·거칠기) 관리 등 다양한 기술까지 확보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신승철 명장이 개발한 기술과 특허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눈부실 정도로 많다. 집요한 노력과 그 성과는 그가 포스코명장으로 손색없는 인물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해준다.
공동체 의식 갖고 끊임없는 배움·도전 즐겨야
신승철 명장과의 짧은 인터뷰에서도 왜 그가 포스코명장이 될 수밖에 없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끊이지 않는 학구열, 과업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사명감, 괄목할 만한 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손을 잃지 않았다. 2016 포스코명장 3인의 공통점 중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겸손’이었다.
"저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다른 분들이 제게 칭찬을 많이 해주시지만, 정작 제 스스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할 때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를 더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합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플(Apple)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대학 졸업연설에서 했던 말로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입니다. 앎과 꿈에 늘 배고파하고 바보처럼 무모하게 도전하라. 즉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모자람이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발명가가 단번에 발명에 성공했을까요? 훌륭한 연주자가 무대에서 그 곡을 처음 연주했을까요? 우리가 소위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시켜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죠. 계속해서 갈구하고 연습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저도 이런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늘 다잡지요."
그는 지금 투자와 포스코 해외법인 기술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전에는 7년간 통합파트장으로서 직원 30여 명을 리드했다. 신승철 명장은 훌륭한 리더는 ‘공(功)은 부하에게, 명예는 상사에게, 책임은 나에게’를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와 회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것도 회사의 생존보다 중요하지 않지요. 포스코가 없다면 저도 여기서 근무하지 않았을 테고, 지금 포스코명장 인터뷰를 하고 있지도 않았겠죠. 지금 나의 업무는 단순하게 회사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결국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면 더더욱 공동체 의식을 갖고 솔선수범해야 강건한 조직, 강건한 회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강한 현장’이 경쟁력··· 후배에게 냉연학 전수하고파
신승철 명장이 앞으로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는 명장이라는 포스코 기술인 최고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끊임없이 찾는 사람이었다.
"저보다 오래 일하고 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분들이 많이 계신데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올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제품을 생산하는 조업기술에는 어느 정도 자신있지만, 프로세스 개발이나 설계 등 설비 엔지니어링 이론은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반드시 금속재료기술사를 취득하려고 합니다. 제가 34년간 쌓아온 조업경험에 엔지니어링 이론, 기술사까지 삼위일체(三位一體)를 갖춘 최고의 기술인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냉연학’이라는 새로운 과목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다면서 웃었다. 자신의 발전을 넘어 후배의 앞날에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싶어 하는 그는 본받고 싶은 선배이자 천상 기술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포스코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금과옥조 같은 말을 들려줬다.
"처음부터 영웅은 없습니다. 역경 속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거죠. 우리 현장은 지금도 근속 25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동료들이 바위처럼 굳게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역대 선배들과 우리의 숱한 애환과 눈물, 땀이 배어 있는 일터를 넘어 신성한 의미가 있는 성(城)이 바로 현장입니다. 세계적으로 철강경기가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스코는 세계 철강사 중 7년 연속 경쟁력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포스코의 저력은 바로 ‘강한 현장’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강한 현장은 우리 직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결국 우리가 스스로 경쟁력을 가꿔나가야 포스코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POSCO the Great를 달성한다면 우리 모두가 후세에 영웅이 될 것입니다."
글=양해득 커뮤니케이터, 사진=황일문 광양 행정섭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