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손바닥만한 미니 수족관들. USB 단자로 컴퓨터에 연결해 산소 공급기, 온도조절기, 조명장치 등을 설치한 이러한 미니 수족관 덕분에 이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물고기를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수족관의 인기는 무엇보다 ‘책상 위의 자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어항 속 물고기들로부터 생활의 활력을 얻고 자연을 느끼곤 합니다.
손바닥만한 미니 수족관의 폐해
하지만 이와 같은 환경은 물고기들에게는 가혹한 스트레스의 장이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실제로 좁은 공간에 사는 물고기들일수록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로널드 올드필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열대어 마이다스 시클리드의 경우 수조의 크기가 작을수록 공격적 행동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초소형 수족관 속 물고기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지구 온난화에 비하면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럽의 바다와 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몸집은 계속 작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종은 지난 수십 년간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박테리아와 플랑크톤도 그 무게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개체 수 역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북해와 유럽의 하천에서 물고기 개체 수는 평균 60%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물고기의 몸집이 작아지면서 알을 적게 낳아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잃으면서 이에 따른 먹이사슬의 붕괴마저 우려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지구온난화로 물고기 성비 불균형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 수온이 계속 높아지면서 물고기의 성비까지 바꾼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는 수온에 따라 성비가 달라지는 물고기가 약 40종이 있는데, 이러한 물고기들은 수온이 올라가면 수컷의 성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양과학연구소 연구진은 수온이 4도 상승하면 대서양 실버사이드류 새끼의 98%가 수컷으로 이루어진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수온에 따라 성비가 달라지는 이유에 대해 최근 유럽 농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베일의 일부가 벗겨졌습니다. 비밀은 ‘DNA 메틸화’ 방식의 후생유전(後生遺傳)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생유전은 DNA 염기서열이 동일한데도 유전자 기능에 변화가 나타나고, 이 변화가 어버이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지는 현상입니다. 수온이 올라가면 ‘DNA 메틸화’가 활성화돼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을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으로 전환시키는 효소인 아로마타제가 억제됩니다. 결국, 성비가 깨져 주로 수컷만 남게 되고 종족 번식 실패로 멸종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장처럼 물고기를 찍어내는 양식장
하지만 지구 온난화보다 더한 물고기 잔혹사가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적인 식습관 유지를 위한 대규모 양식이 그것입니다. 세계의 양식장들은 공장처럼 계속해서 물고기들을 ‘찍어 내고’ 있습니다. 바다를 헤엄쳐야 할 물고기들이 한 곳에 갇힌 채 항생제와 다른 생선으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라나며 양식의 다음 단계로 넘겨집니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팔리는 운명을 가진 물고기들도 있으니, 이들에게 바다를 헤엄치고 먹이를 사냥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재 양식업은 식량 관련 업종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950년에 100만t에 채 미치지 못하던 세계 양식 생산량은 60년 만에 55배가량 증가했습니다. <포 피시>라는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자연산 물고기를 결코 먹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폴 그린버그의 말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양식업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물고기 잔혹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는 우리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