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는 포스코의 사무소 ‘포스코센터’가 있다. 이곳에는 600여 명의 포스코 마케터, 즉 판매담당자들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포스코센터로 출근해 주문 투입부터 제품 생산과 출하까지 밀착 관리할 뿐만 아니라, 고객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도맡는다. 물론 고객을 직접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며칠씩 지방 출장을 다니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포스코의 마케터 중에 서울 포스코센터가 아닌, 경남 거제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한다. 도대체 왜?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그들의 고객 ‘대우조선해양’이 있기 때문. 고객 곁에서 상주하며 24시간 함께 하는 ‘포스코KAM’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병풍처럼 둘러싼 푸른 산자락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도크. 900톤 급 골리앗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오가며 거대한 선박 구조물을 하나하나 조립하고 있다. 거제도의 그림 같은 포구 안쪽에 자리 잡은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 현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른바 조선BIG3 중 하나인 세계 최고의 조선사다. 포스코에게는 40년간 거래를 이어온 대형 고객사이기도 하다.
포스코에는 이러한 대형 고객사를 밀착 관리하는 특별한 조직이 있다. 포스코에서는 이들을 ‘캠’이라고 부른다. Key Account Management의 약자를 딴 ‘KAM’이다. 포스코 사무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 현장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우리가 거기서 살자”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된 것이다. KAM은 2010년 11월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을 위해 울산과 거제에 신설됐다. 올해로 KAM 운영이 10년 차를 맞이했다.
“저희는 선박용 강재 기획 단계부터 하역, 운송, 납품까지 전 과정을 고객 바로 옆에서 직접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죠. 군대로 치면 최전방 정찰병이면서 전투병, 후방 보급병이기도 한 셈이죠.”라고 대우조선해양KAM을 이끌고 있는 강장웅 리더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뉴스룸이 찾은 이날도 KAM 직원들은 대우조선해양 현장에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선박구조설계를 담당하는 하병주 차장과 미팅이 있어서다. “거제에 내려오면 매일 현장 찾아가서 인사하고,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고, 포스코 제품의 품질은 이상 없는지 체크하는 것이 일과입니다.”라고 대우KAM의 방경원 대리가 말했다. KAM의 특별한 점은 고객 현장에 상주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주로 고객의 ‘구매담당자’와 집중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판매담당자들의 업무인데, KAM은 구매부서뿐만 아니라 설계, 품질 등 고객사의 여러 부서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커뮤니케이션한다.
전 세계 철강사 중 고객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마케팅조직이 있는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이들은 주로 월요일과 금요일은 서울 사무소로 출근을 하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거제와 울산에서 머문다. 이들을 위한 집과 차, 작은 사무실도 갖춰져 있지만, 집 떠나 타지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KAM 조직은 사실 포스코 내에서는 힘들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어느 부서에서 일하세요?”라는 질문에 “캠이요.” 한 마디면 다들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라는 대답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캠 출신이다”라는 말은 “그 직원은 일 좀 제대로 해 본 직원”이라는 말로 통용되기도 한다.
현지에서 밤낮없이 고객과 부대끼다 보니 KAM 직원들은 고객과의 유대감도 남다르다. 이들의 휴대폰을 열어보면 통화목록에 고객들의 번호가 가장 많이 찍혀있다. 고객사 직원과 소주 한잔 나누며 신세타령도 하고 공감을 나누다 보니, 이제는 멀리서 이메일과 통화로만 대화하는 수준으로는 가질 수 없는 끈끈한 정도 생겼다. 강장웅 리더는 “이제는 첫 마디만 나눠도 뭐가 필요한지 알 정도예요. 고객이지만 ‘인간관계’에 방점을 두고 꾸준히 네트워킹을 한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장웅 리더가 대우조선해양을 맡고 있는 것은 올해로 4년째.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격 협상 시즌이면 골머리를 앓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고맙고 기쁜 기억이 더 많다. 특히 포스코의 신제품을 항상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대우의 도전적인 문화 덕분에, 양사의 협업 성공 사례가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컨테이너선용 BCA강이나, 양사가 10년 넘게 공동 개발한 고망간강은 대표적인 협력 성과다. 최근에는 포스코 솔루션마케팅의 일환으로 ‘대단중재’를 컨테이너선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대단중재란 말 그대로 단중, 즉 무게가 큰 후판인데 통상 20톤을 기준으로 설계된다. 포스코는 25톤짜리 후판까지 생산이 가능하다. 무게가 크다는 것은 그 크기도 크다는 뜻인데, 때문에 일반 후판 2장을 써야 하는 자리를 대단중재 1장이 대체할 수 있다. 다만, 판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형상과 재질 편차 역시 커질 수 있고 제품의 이송 역시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밀에서 잘 생산하지 못하는 제품이다. 포스코는 조선사들의 후물 장척재에 대한 니즈를 일찍이 파악해 발 빠르게 제품 개발을 진행해왔다.
“대단중재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선박 기본설계가 끝난 시점이어서 적용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포스코가 끈질기게 설명을 들어보라더군요. 검토해보니, 후판 두 장을 길이 방향으로 용접할 필요가 없어서 용접 공수와 공기 단축이 가능해 보이더라고요. 적용 범위도 제한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설계도면을 꼼꼼히 보니 의외로 적용 가능성이 컸습니다. 결국 중간에 설계 도면을 수정했죠.”라고 대우조선해양 설계본부의 김재영 부장이 설명했다. “저는 포스코 마케팅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저희가 먼저 ‘이런 것도 개발해줄 수 없냐’라고 요청했다면, 요즘은 포스코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옵니다. 그만큼 저희에 대해 포스코가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죠.”라고 그는 덧붙였다.
2016~2017년 조선사들이 수주 절벽에 부딪히며 그야말로 ‘보릿고개’를 넘던 시기에, KAM의 존폐 여부도 포스코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KAM 직원들은 그럴수록 더 부지런히 현장을 찾아다녔다. 위기도 함께 넘는다는 심정이었다. 이제 다시 조선업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하며 고객의 현장이 바빠지자 KAM 직원들은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 조달본부 윤석천 수석부장은 KAM 직원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포스코 사람들은 어떤 사명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철을 단순히 제품으로서 판매한다기보다는, 하나의 공헌의식이랄까,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는 그런 의식들이 있는 거 같아요. 비단 판매직원들뿐만 아니라 포스코의 현장분들을 만나보면 더욱 그런 면들을 느끼곤 합니다. 철을 사랑하고 철을 통해서 사회와 소통하고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철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다른 밀과는 그런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포스코 마케팅본부는 에너지조선마케팅실 산하에 현대중공업KAM, 대우조선해양KAM, 삼성중공업KAM과 더불어 자동차와 가전 부문에서 3개의 KAM을 더 운영 중이다. 자동차마케팅실에는 현대차KAM과 르노닛산차KAM, 전기전가마케팅실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담당하는 가전KAM이 있다. 포스코KAM은 앞으로도 고객의 현장에서 함께하며 진정성 있는 마케팅 활동을 통해, 비즈니스 파트너와 가치를 함께 만드는 ‘Business With POSCO’의 비전을 실현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