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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세대 고층건물 단암빌딩 이야기

INNOVILT FANTASIA 2

우리나라 1세대 고층건물 단암빌딩 이야기

2020/04/17

단암빌딩 로비. 빌딩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 위쪽으로 부조 작품이 보이고 양 옆으로 포스아트 내장재를 적용한 벽이 보인다.

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중업이 설계한 역사적 건축물

파도처럼 굽이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하늘을 찌르는 롯데월드타워가 위용을 뽐내도 여전히 남대문은 서울의 랜드마크다. 게다가 첨단의 건물에는 없는 그만의 역사와 기억이 있다. 소설가 구보씨가 남대문 앞을 걸었고 이상의 ‘날개’에서 주인공은 미쓰코시백화점(現 신세계백화점) 옥상에서 “한 번 날아보자”고 한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도 박완서의 ‘나목’도 남대문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역에서 남대문, 신세계백화점, 명동성당을 잇는 남대문로는 서울의 근현대에서 사회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런 상징적인 곳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건축물이 있다.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이 설계한 단암빌딩(舊 도큐호텔)이다. 숭례문 바로 곁, 남대문로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자락에 있는 고층 건물이다.

남대문로에 위치한 단암빌딩 전체 모습과 주변 빌딩들을 찍은 사진. 남대문로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자락에 위치해 있다. .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중업은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을 배우고 파리로 떠나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한다. 1956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김중업건축연구소를 개소해 주한프랑스대사관, 부산대학교 본관(現 인문관) 등을 설계한다. 김중업은 그간 작품의 빼어난 조형과 한국 건축에서 가지는 선구자적 지위로 회자되어 왔는데, 도시와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소기업은행 본점, 갱생보호회관(現 안국빌딩), 삼일빌딩 같은 서울 도심 빌딩들을 설계해 우리나라 고층 건물 시대를 열었고 지방 도시의 방송국, 예술회관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도큐호텔로 출발해 전층 임대 사무실로 쓰여온 단암빌딩

단암빌딩은 김중업이 1968년 설계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해 1971년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로 지어져 오랫동안 쓰였기에 남대문시장 상인 중에는 아직도 이곳을 도큐호텔로 부르는 이들이 있다. 외화에 목말랐던 박정희 정권은 관광업에 주목한다. 1962년 국제관광공사(現 한국관광공사)를 설립하고 교통부가 직접 운영하던 조선호텔, 반도호텔 등 적자를 면하지 못하던 호텔 경영의 효율화를 꾀한다. 1970년대 들어 관광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삼고 호텔 운영 자금 지원, 전기세 및 유흥음식세 등의 세금 감면,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호텔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영빈관을 삼성에, 워커힐을 선경(現 SK)에 넘긴 것도 이때다. 내수 자본 기반이 빈약했던 당시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직접 투자 방식이 활발했는데 도큐호텔도 한국이화진흥주식회사(現 단암산업)와 일본도큐전철이 합작해 만들었다. 무려 98.8%에 이르는 일본 자본이 투입됐다는 점이나 숭례문 옆에 그간 없던 고층 규모의 빌딩이 들어섰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약 12년 간 호텔로 운영되다 폐업했다. 이후 단암빌딩으로 이름을 바꾸고 임대 오피스 빌딩으로 쓰고 있다.

단암빌딩 입구 전체를 멀리서 찍은 사진. 인도까지 뻗은 캔틸레버 캐노피와 그 아래 넓은 계단이 특징이다.

간결하고 명확한 디자인과 포스아트 내장재를 이용한 리모델링

인도까지 뻗은 웅장한 캔틸레버 캐노피와 그 아래 넓은 계단이 특징적인 입구에 두 개의 회전문이 있다. 1층에 스타벅스와 안경점 등이 있고 2층부터 26층은 모두 똑같이 생긴 사무실 층으로 단순한 구성이다. 최초 설계에서 김중업은 단 2개의 기둥으로 89미터에 이르는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캔틸레버 구조를 계획했으나 당시의 시공 기술로 이를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사방에 8개의 기둥을, 각 면마다 2개씩 건물을 둘러 가며 배치하는 구조로 바꾸었는데 정방형의 간결한 건물에서 강렬한 디자인 요소가 된다.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제약 안양공장(現 김중업건축박물관)에도 바깥에서 건물 몸체를 붙잡고 서 있는 노출된 세로 기둥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과도 비슷하다. 7개의 엘리베이터와 계단, 화장실, 덕트 등이 위치한 코어가 중앙에 있는 정방형의 평면이다. 외부의 기둥이 구조를 모두 담당하므로 사무실 내부에는 기둥과 벽이 없이 넓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서울역, 명동, 인왕산, 북한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Architect’s Pick : 이노빌트 포스아트 내외장재]

단암빌딩은 2018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노후화된 부분을 보수하고 상아색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됐던 외벽에 검은빛 테라코타 패널과 유리, 알루미늄 시트를 입혔다. 건물의 얼굴과도 같은 로비층도 새 옷을 입게 됐다. 오래된 샹들리에가 걸려있고 곡면 천정의 중후했던 로비가 외관처럼 직선적이고 날렵한 느낌으로 재탄생했다. 역사적인 건물인 만큼 재료의 선택에 신중을 기했는데 바살티나 무늬의 포스아트 내장재로 벽을 감쌌다. 포스아트는 포스코강판이 최초로 상용화한 신개념 건축자재로 포스코의 강재 표면에 다양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프린팅할 수 있다. 포스아트 중에서 이번에 쓴 포스마블은 천연 대리석 무늬를 인쇄한 독특한 재료다. 천연 대리석의 느낌을 구현하면서도 그에 비해 저렴하고 시공과 보수가 용이하다. 인조 대리석에서 문제가 되는 라돈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후 재활용의 가능성도 큰 친환경 재료다. 또한 무늬나 가공을 위한 별도의 금형 제작이 필요 없이 맞춤 인쇄가 가능하다. 단암빌딩의 바살티나 벽은 오돌토돌한 표면의 질감과 그레이톤의 색상이 특징적이다. 자칫 차갑고 딱딱할 수 있는 스틸의 이미지에 건축 내장재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직 건축인들에게 생소한 재료지만 다가올 리모델링의 시대에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 이번 단암빌딩도 기존 벽면 대리석 타일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앵커를 설치해 포스아트 내장재를 붙이는 건식 공법으로 시공했다. 원래 건물의 벽면을 철거하지 않으므로 공기도 단축하고 시공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바살티나 무늬의 포스아트 내장재로 벽을 감싼 모습. 크고 작은 직사각형들이 붙어 있는 모양으로 기하학적이다.

빌딩 밖으로 정초定礎1968.5.15 라는 머릿돌이 보인다. 건물의 입면을 단순화한 그림을 건물의 공식 로고로 쓰고 있는데 바로 밑에 ‘since 1970’이라고 병기했다. 준공 당시 만든 건축모형을 로비 한 쪽에 전시해놓았다. 건축도면도 보관하고 있다.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건축주가 건물에 갖는 자부심과 애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도큐호텔 시절 컨시어지 업무로 입사한 직원이 주차관리직원으로 아직 일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의 모습이 퇴색될 수밖에 없었던 이번 리모델링의 결과에는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깨끗하고 안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세련되게 변한 이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건물이 더욱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길 바란다. <글=김나래 사진=송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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