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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감성 에세이] 철봉 돌기의 추억

[연말 특집 감성 에세이] 철봉 돌기의 추억

2018/12/18

나는 운동을 참 못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체육 시간은 늘 곤혹스러웠다. 100m 달리기나 공으로 하는 운동처럼 순발력을 요하는 운동은 더더욱 못했다. 그나마 내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끈기를 요하는 운동이었다. 예를 들면 ‘오래’ 달리기나 ‘오래’ 매달리기 같은 것. 운동 신경은 없어도 오래 버티면 해낼 수 있는 일은 해볼 만했다. 등수로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오래 매달리기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철봉은 그나마 만만했다. 초등학교 때는 몸이 가벼웠으므로, 운동신경이 발달한 아이들은 철봉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기둥 껴안고 구경하기’ 정도였다. 친구들이 철봉 위에서 빙그르르 도는 것을 봤을 때, 부러웠다. 나도 철봉 돌기 정도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세운 작은 목표였다.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팔을 다칠 수도 있고,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다. 철봉에만 의지해 공중에 매달려 몸을 회전시킨다는 것, 착지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무서웠다. 친구들은 연속으로 도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이 아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내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직접 바닥을 딛고 뛰어올라야 했고, 팔로 무게를 버텨야 했고, 몸을 앞으로 던져야 했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 두 다리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오래 망설였고, 용기를 냈지만 떨어졌고, 몇 번을 시도하고 나서야 빙그르르 돌 수 있었다. 한 번 해내고 나니 다음부터는 쉬웠다.

종종 그때 손에서 나던 비릿한 쇠 냄새를 기억한다. 철봉 돌기를 해냈다는 것은 인생에서 그다지 큰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험 전의 나와 후의 나는 다르다. 당시의 나에게는 도전이었고, 해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걸렸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좋은 일들을 작고 쉬운 것부터 (신호등 지키기나 쓰레기 줍기 등) 조금씩 해보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상에서의 작은 성취들은 두고두고 큰 힘이 된다.

새해에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해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매일 아침 물 한 컵 마시기, 규칙적으로 식사하기, 사소한 일이라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기. 그리고 해낸 나에게 듬뿍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물론 못 했다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내일의 내가 있으니까요.)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까.

철봉 돌기 그림

 

글/그림_박정은 에세이스트
<내 고양이 박먼지>, <뜻밖의 위로>,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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