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포스코그룹 통합 소통채널 포스코투데이의 콘텐츠를 토대로 제작됐습니다.
쓰러진 강철의 거인, 사라진 일상과 구멍난 마음
태풍 힌남노가 포항제철소를 덮친 지 어느새 10여 일이 지났다. 흘러넘친 냉천 물은 모두 빠지고,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먹성 좋게 철광석과 석탄을 집어삼키고 쉴 새 없이 철강 제품을 만들어 쌓아 올리던 강철의 거인 포항제철소는 이제 상처를 움켜쥐고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고로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마비됐던 팔다리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포항제철소가 뭐든지 만들어내던 예전의 혈색 좋던 모습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태풍이 몰고 온 냉천범람은 포항제철소, 그리고 포항제철소와 동고동락하던 우리 모두의 일상을 앗아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그 일상의 빈자리는 크고, 검고, 공허해서, 갈 길이 바쁜 거인과 거인의 동료들을 늪처럼 휘감는다.
어두운 영일대 바다, 그 수면에 비친 적막과 공허
어둠이 내린 영일대전망대에 서면 오색찬란한 빛으로 불야성을 이룬 포항제철소 야경이 항상 시야를 가득 메우곤 했다. 밤낮없이 맥동(脈動)하던 포항제철소의 광채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지난 49년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거인이 태풍에 쓰러진 뒤 3일간의 암전과 침묵, 그리고 적막한 영일만 수면에 어렴풋이 비친 포항제철소의 실루엣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모든 것을 태워 재로 돌리는 화마와는 달리, 수마는 보다 교묘한 수법으로 희생자를 괴롭힌다. 틈새마다 스며든 물과 진흙은 끈질기게 숨어 신경을 갉는다. 외형적으로는 변함없어 보이나 그 속은 곪고 부르텄으리라.
포항제철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몸져누운 강철의 거인은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부름은 이미 응답을 받고 있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물론, 그룹사, 협력사, 고객사, 정부기관에서 일손과 장비를 선뜻 내어주며 복구의 시계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장화를 물어뜯는 끈적한 진흙과 어디서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한 현장, 그리고 모두의 마음 속에 자리한 허탈함은 모두가 함께 내딛는 복구의 발걸음 하나 하나가 쌓여, 점차 진흙을 씻어내는 시원한 물줄기, 하나씩 본 모습을 찾아가는 현장, 그리고 조금씩 되찾아가는 일상과 희망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거인은 당당하게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일어서 다시금 우리에게 눈부신 미소를 안겨줄 것이다.
다시 찾을 일상, 그 미래에서 바라보는 오늘
포항제철소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한 시간은 다를지 몰라도, 포항제철소에 대한 인상은 어느 정도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웬만한 풍파에는 끄떡없는 믿음직스러운 모습, 든든하고 듬직한 모습이 그것이다.
포항제철소는 1977년 4월 1제강공장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고에도 굳건하게 이겨내고 더 성장했다. 이번 냉천범람 사고 피해도 이겨낸 뒤, 마치 오래된 흉터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놓듯, 오늘의 아픔을 추억하며 무용담을 주고받을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