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만든 테이블인데 가볍다, 그리고 튼튼하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 상반되는 두 아이디어를 창조의 원동력으로 활용한 두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에어테이블(AirTable)’의 디자이너 카를로스(Carlos Baňon)와 펠릭스(Felix Raspall)다.
현재 ‘싱가포르 기술디자인 대학(SUTD)’ 조교수로 후학을 양성 중인 두 사람은 2016년 대학 내 리서치 랩인 에어랩(AirLab: 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 Lab)을 설립하고, 3년 만에 싱가포르의 권위 있는 디자인 상으로 꼽히는 ‘싱가포르 디자인 어워드(Singapore Design Award: SDA)’에 도전했다. 그리고 결승에 올랐다.
에어랩이 불과 첫 번째 도전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며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다양한 기술과 소재를 가지고 실험적인 도전을 서슴지 않아온 카를로스와 펠릭스. 이들의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결승전에 출품된 스테인리스 에어테이블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엇인지 포스코 뉴스룸이 묻고 에어랩이 답했다.
l 신생 건축사무소 에어랩, 권위 있는 싱가포르 디자인 상에 도전장을 던지다.
안녕하세요. 포스코 뉴스룸에서 인사드립니다. 우선 ‘싱가포르 디자인 상’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신 점 축하드립니다! 싱가포르 디자인 상(Singapore Design Award: SDA)은 어떤 상인가요? 그리고 에어랩에서는 어떤 디자인들을 출품했나요?
감사합니다! 싱가포르 디자인 어워드(SDA)는 현재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과 학생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작품을 독려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상입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되죠. 1988년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으며, 건축ㆍ디자인 분야에 있어서 동남아를 대표하는 권위 있는 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뛰어난 팀들이 많이 참가했는데, 그분들과 함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에어랩에서는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디자인으로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대나무부터 스테인리스까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고 건축과 가구 디자인에 3D 프린팅을 적용했습니다.
출품된 작품들은 SUTD 내에 위치한 에어랩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습니다. 건축 디자이너로서 저희가 표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실제 건축물을 통해 시험하고 구현하는 작품들이었죠. 스테인리스 에어테이블을 포함한 모든 작품을 통해 기하학적 구조와 재질이 작업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탐구했습니다.
l 스테인리스 에어테이블, 가볍고 견고하다?
이번 SDA 2019에 진출하게 된 품목 중 스테인리스 에어테이블이 있었는데요. 사진을 보면 각 면이 3m, 테이블 상단의 무게가 무려 120kg에 달하는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테이블 상판이 겨우 세 개의 작은 지점에 의지해 균형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런 구조적인 밸런스를 어떻게 유지했나요?
저희는 모든 디자인을 통해 ‘가벼움’을 구현하려고 항상 힘쓰고 있습니다. 구조물의 각 요소에 전달되는 무게도 너무 한쪽으로 크게 쏠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번 스테인리스 에어테이블의 경우, 말씀하신 대로 무거운 테이블 상판의 무게를 어떻게 작은 세 지점으로 분산시키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3D 프린팅 작업을 통해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는 일종의 철조망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한 곳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아주 가는 요소들을 가지고 무게를 바닥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지요. 처음 컨셉 단계에서부터 하얀 코리안(Corian, 인조 대리석) 테이블 상판의 묵직함과 6mm 굵기의 스테인리스 선의 가벼움, 이 두 요소의 대조를 시각적으로 확실히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 전략을 바탕으로 한 줄의 케이블을 여러 마디(node)에 접속시켜 점진적으로 무게를 분산시켰습니다. 물론 테이블을 직접 만들기 전부터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디자인을 테스트했습니다. 시스템상에서 결과가 좋은 디자인들만 선별하여 여러 차례 응용 모델을 만들었죠. 컴퓨터 시스템 테스트가 끝나면 디자인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재료의 느낌이 어떤 것이지 알 수 있도록 꼭 실제로 조형물을 만들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듭 반복한 건데요. 이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니, 자연도태와 선택을 반복하는 인류의 진화 과정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번 에어테이블을 만들면서 느꼈던 스테인리스의 재료적 장점은 무엇이었나요?
스테인리스를 사용해서 좋았던 점은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테이블을 만들기 전 컴퓨터 시스템상으로 사전 테스트를 거쳤을 때, 예상 결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실제로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은 스테인리스라는 재료의 굴절성이 테스트에서 예상됐던 결과보다 훨씬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그 탁월한 굴절성 덕분에 테이블 다리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러 개의 작은 조각을 거듭 연결하는 과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테이블의 연결성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됐지요.
테이블을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셨나요?
항상 고민하는 점인데요. 이건 단지 에어테이블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희 디자인에는 여러 구조물을 연결하는 작업이 많습니다. 그 여러 조각을 어떻게 잘 끼워 맞추느냐가 관건인데요. ‘에폭시’라는 강력 접착제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에어테이블의 경우에서처럼 가는 케이블로 마치 실을 끼워 넣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막대기 15개를 한 구멍을 통해 연결한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막대기 재료가 너무 단단해서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굴절성이 떨어지는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 재료를 연결하는 게 어렵습니다. 잠시 후 말씀드릴 ‘에어메쉬(AirMesh)’ 라는 프로젝트 역시 스테인리스를 사용하는데요. 에어메쉬의 경우 이번 에어테이블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볼트를 사용해 구조물이 좀 더 견고하게 연결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에어테이블은 원래 ‘핫 데스크’로 이용될 예정으로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대량 생산을 통해 대중에게 유통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핫 데스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DmanD(에어랩 팀과 함께 에어테이블 제작에 참여한 SUTD 내의 디자인 센터) 분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어요. 에어테이블에서 동료들과 간단히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작업도 하고요. 테이블 높이가 1.05m 정도라서 책상이라기보다는 바 테이블 높이에 가까운 편입니다.
*핫데스크: 특별히 지정된 좌석이 아닌, 누구나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는 유연한 오피스 공간
대량 생산과 관련해서는 이제 막 대중에게 공개된 모델이다 보니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다만 에어테이블의 프로토타입 개발에 관심이 있는 업계 파트너들과의 접촉이 있었습니다. 레고를 포함해서요.
l 에어랩-서울커넥션: 2017 서울 비엔날레
2017년 서울 비엔날레에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네. ‘White Spaces’라는 구조물을 가지고 참석했습니다. 대나무를 가지고 메쉬, 즉 그물망 구조를 만들었는데요. 그 그물망 구조가 공간 전체를 차지하지만 그 안으로 방문객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물입니다.
그 구조물 자체를 싱가포르에서 가지고 와야 했는데요. 공항에서 수하물로 부쳐야 했기 때문에 무게가 가벼워야 했습니다. 완성물을 들고 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나무 구조는 다 해체된 상태였죠. 저희 SUTD 학생들 그리고 한국의 국민대학교 학생들이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구조물을 조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l 에어랩의 다음 프로젝트, 스레인리스 스틸 에어메쉬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 공유해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아 네. 아까 잠깐 언급 드렸던 에어메쉬라는 프로젝트입니다. 3D 프린팅을 이용한 커다란 랜턴, 즉 등불 구조인데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연결 구조 모두 3D 프린팅으로 제작될 겁니다. 실제 건축 규정에 부합하는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건축 구조로서 이번 가을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더 베이(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공원)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l 우수한 소재, 창의성을 만나다
스테인리스, 대나무 등 다양한 소재, 그리고 아직 건축업계에선 많이 시도되고 있지 않은 3D 프린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카를로스와 펠릭스.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인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을 개발 중인 미국의 엘론 머스크까지, ‘철은 무거워서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창의성으로 극복하는 디자이너들과 모험가들이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창의성과 결합됐을 때 스테인리스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보여 줄 잠재력은 무엇일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