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도라도 : 남미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황금이 가득한 꿈의 이상향.
8인승 경비행기가 비 내리는 아르헨티나 살타주(州) 전용기 공항 활주로를 내달려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고도계 숫자가 경쾌하게 올라가다 이내 창문 밖 풍경이 구름에 가린다. 구름의 장막을 빠져나오자 비구름 위에 숨어있었던 파란 하늘과, 명료하게 대비되는 갈색 산맥이 나타났다.
비행기의 조그만 창문 너머 풍경은 언뜻 엽서 속 그림처럼 보이지만, 봉우리 사이사이에 위치한 계곡들만 해도 해발 4000미터에 이른다. 만년설이 쌓여있는 산봉우리는 60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이곳, 아르헨티나 고지대 소금사막 옴브레무에르토(Hombre Muerto)에는 오늘도 하얀 황금, 리튬을 캐는 사람들의 땀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지속가능한 미래소재 사업 최전선, 4000미터 고지의 포스코아르헨티나 염호에서 보고 느낀 도전과 희망의 기록을 담았다.
30분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에 첫 발을 내디디자 해발 4000미터 소금사막의 압도적인 풍광이 더욱 피부에 와닿는다. 몇 걸음 내디디자 은근히 숨이 가빠 온다. 이것이 고산병의 전조일까?
완만하다가도 날카롭게 떨어지는 산맥 능선 밑에 하얀 소금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2018년 포스코가 광권을 획득한 이후, 추가 탐사를 통해 리튬 염수 매장량 1350만 톤을 확인한 옴브레무에르토 염호이다.
옴브레무에르토 염호는 존재 자체가 경이롭다. 물은 아래로 흐르기 마련인데, 해발 4000미터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호수가 존재할 수 있는 걸까? 포스코아르헨티나 원료개발팀장을 맡고 있는 연제균 리더가 답을 알려준다.
지금은 외부 공인기관 평가를 획득한, 명실상부한 아르헨티나 내 최고의 품질과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옴브레무에르토 염호가 처음부터 이 정도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포스코가 광권을 인수할 때만 해도 매장량은 220만 톤이었다. 하지만 인수 당시 포스코가 집중한 것은 확인된 매장량뿐만이 아닌, 매장량 추가 발견에 대한 높은 가능성이었다.
연제균 리더는 “Sal de Oro(황금소금) 프로젝트 인수 전부터 고도의 기술분석을 통해 추가 매장량에 대해 매우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와서 한 첫 탐사지역부터 대규모 신규 매장량을 발견했는데,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수 시점에 220만 톤이던 매장량은 탐사 이후 6배가 늘어나는 쾌거를 거뒀다. 천만 톤이 넘는 매장량뿐만 아니라 염수의 품질도 아르헨티나 최고 수준이었다. 경제적 가치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리튬 업계 내에서도 성공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포스코가 리튬 탐사의 접근법과 기준을 완전히 재정립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포스코가 기존에 다루던 원료는 석탄, 철광석 등 광석, 즉 고체이다. 연제균 리더가 포스코아르헨티나 부임 전 담당하던 업무도 구리, 석탄, 철광석 등 광석에 대한 원료 투자였다. 하지만 리튬 염수는 지하에 고여있는 유체로, 광물자원과 석유 개발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광석 원료 개발과는 결이 다른 특징을 지닌다.
현재 건설 중인 상용화 공장은 2028년 수산화리튬 연산 10만 톤을 목표로 한다. 포스코가 보유한 리튬 염호 매장량 1350만 톤(리튬 생산량 기준 280만 톤)을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나눠도 약 30년에 걸쳐 생산할 수 있는 양이며, 누적 영업이익만 수십조 원으로 예상된다. 리튬 염호 프로젝트야말로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미래 부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활주로와 염호 사이에는 마치 계단식 논처럼 저수지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지하에서 퍼올린 염수가 고지대의 강렬한 햇살과 강풍을 만나 증발하고, 공정에 필요한 농도까지 농축되는 폰드(pond)이다.
폰드는 증발•농축 폰드와 목표 농도에 다다른 염수를 담아두는 저장 폰드가 있다.. 폰드 면적을 모두 합하면 축구장 100여 개에 해당하는 크기다. 염수리튬 제조 설비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폰드를 따라 차를 타고 달리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염전이다. 오재훈 상무는 시범공장(demo plant)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는 사실상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폰드 건설 초창기 자료화면을 보면 갈색 땅과 검은 방수포뿐이던 풍경이 지금은 새하얀 소금 결정으로 뒤덮여 있다. 한편 리튬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얀 결정들은 사실 걸러내야 하는 불순물들이다. 하얀 결정체들 위, 무릎 높이로 차있는 염수가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내고,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물결을 만들어내자 마치 남국의 휴양지 바다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여기에 폰드 옆, 결정들이 하얗게 굳어 만들어진 이른바 ‘소금길’이 더해지면 ‘황금소금’이라는 프로젝트명에 걸맞은 멋진 풍경이 탄생한다. 실제로 소금길은 이곳을 찾는 귀빈들의 필수 코스라고 한다.
그리고 목표 농도에 도달한 염수는 더 이상의 증발과 빗물 유입을 막기 위해 검은색 고무 커버를 덮어서 보관한다.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불순물 제거와 리튬 추출 효율이 떨어지므로 커버는 보온 효과도 갖추고 있다. 커버는 충분히 두껍고 튼튼해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다. 밟을 때마다 꿀렁거리는 커버를 밟으며 몇 걸음 걸으면 우물처럼 덮개를 씌운 곳이 있는데, 덮개를 치우면 그 밑의 염수를 볼 수 있다. 문득 내 발아래에 있는 염수 속 리튬의 가치가 궁금해졌다.
현재 리튬 시세인 톤당 7만 달러, 환율 1200원을 적용하면 그 가치는 약 170억 원에 달한다. 오재훈 상무가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100억 원을 밟고 서 계신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걸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세울 필요도 없지요.”
오재훈 상무의 시선을 따라 주변 풍경을 다시 한번 보자 그 말이 이해가 갔다. 해발 4000미터까지 와서 정제되지 않은 염수 속 리튬을 훔쳐 짊어지고 갈 능력이 있는 도둑이 과연 있을까?
폰드에서 농축을 마친 염수는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리튬 생산 공정으로 흘러 들어간다.
염수에는 리튬 말고도 마그네슘, 칼슘 등 불순물이 섞여있다. 리튬 생산 공정은 이 불순물들을 화학반응을 통해 걸러내고, 불순물 덩어리를 리튬 염수와 분리하는(고액분리 : 고체와 액체를 분리) 과정이다. 철강 공정이 소재에 열을 가하고 롤러로 누르고, 잡아당기고, 자르고, 돌돌 마는 등 동적인 요소가 많다면, 이곳 리튬 공정은 시간을 오래 들여 약이나 차를 달여내는 듯한, 정적인 요소가 많이 느껴졌다.
오재훈 상무와 박대엽 과장은 현재 포스코 리튬 솔루션이 갖추고 있는 완성도에 다다를 때까지 숱한 시행착오와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개발 과정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범공장의 연간 리튬 생산량은 2500톤이다. 3월 23일 착공한 상용화 공장(commercial plant)이 완공되면 생산량은 2만 5000톤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실험실 작은 비커 속 염수에서 시작해 2018년 아르헨티나 해발 4000미터 염호 광권을 획득할 때까지, 3차례의 파일럿 설비를 거쳐 시범공장 조업을 마치고 상용화 공장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포스코그룹은 역량을 모아 한 걸음씩 황금소금을 향한 황금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폰드와 공장을 둘러보며 고지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니 현지의 환경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극심한 일교차이다. 아침에 분명히 영하였던 기온은 높이 떠오른 태양을 따라 금세 영상 10도를 넘겼다. 한국에서는 부연 먼지와 매연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던 태양이 이곳에서는 확실히 더욱 가깝고 크다. 그리고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빛을 내뿜는다.
오후로 접어들며 햇살이 더욱 강해지자 껴입었던 옷을 한 벌 두 벌 벗지 않고는 못 버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어느새 강한 바람이 매섭게 치고 들어와 다시 옷을 주워 들게 만든다. 박대엽 과장은 “바람을 안고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면 몇 발자국 뒤에 착지한다”라고 말한다. 흔히들 들어왔던 과장 섞인 무용담과는 다른, 진짜다. 시범공장 건설에 이어, 상용화 공장 건설을 총괄하는 이상룡 상무는 이러한 고지대의 극한 환경 속에서 건설을 할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해 말했다.
시범공장 준공과 상용화 공장 착공 사이, 고지대에 새롭게 들어선 주요 설비를 꼽자면 역시 비행장 활주로를 빼놓을 수 없다. 살타시 저지대에서 산맥을 따라 굽이치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8시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고지대 근무 환경에 직면하면, 이동시간을 30분으로 줄여주는 하늘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최정우 회장은 2019년 10월 시범공장 착공 현장 격려 당시 “고지대 근무자의 통행 안전과 비상시 응급 후송에 대비한 체계를 갖추라”라고 지시했다.
활주로 건설과 항공기 운영 사례 외에도 포스코아르헨티나 리튬 사업은 지역사회와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광업이라는 사업 성격상 환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자가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피해를 유발해 지역 주민이나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사업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포스코그룹은 공정 자체가 환경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아르헨티나 안세민 부장과 정성국 상무에게 자세한 내용을 들어봤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다양한 성분비의 염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저농도 염수 활용, 리튬 회수율 극대화에 집중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환경을 고려한 리튬 추출 기술 개발 성공으로 이어졌다.
리튬 추출이 끝난 염수도 모두 쓰임새가 있다. 설비 부지를 다니다 보면 땅에 물을 뿌리며 다니는 차량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쓰고 남은 염수를 비포장도로에 뿌리고 마르는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소금길이 생겨 천연 도로 포장재로써 훌륭히 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한 염수를 다루는 공정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배관이나 여과포를 담수로 세척해야 하는데, 담수가 귀한 고지대의 특성을 고려해 세척 담수를 재활용해 사용량을 최소화하기도 했다.
포스코아르헨티나 리튬공장이 환경친화적이라는 또 다른 확실한 증거는 이 지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고지대에 도착한 이후로 줄곧 낯선 동물이 무리 지어 다니며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이 길고 네발로 걸으며 갈색 털로 뒤덮인 것이 언뜻 보면 고라니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한 모습이다. 알고 보니 이 생물은 ‘비쿠냐(vicuna)’라고 불리는, 안데스산맥 고지대에 서식하는 라마의 일종이라고 한다.
활주로에서 공장으로 넘어갈 때 철조망으로 된 문을 통과하고, 양옆으로 철제 펜스가 늘어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동물들이 공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용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펜스는 동물들이 안전상 활주로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사실상 비쿠냐를 비롯한 동물들은 공장, 숙소 주변에서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비쿠냐 외에도 이름 모를 작은 새와 여우 한 쌍, 관목 군락과 거미 등 안데스산맥 토착 생물들이 전 사업장에 걸쳐 각자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세민 부장은 “주변 동식물의 변화를 계속 주시하고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차량 이동 시에도 경적이나 불빛 사용을 억제해 서식 동물이 놀라거나 치여 다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포스코아르헨티나는 프로젝트 영향 지역의 대기, 수질, 소음, 토양 등 환경 변화를 주민들과 함께 모니터링해 지역사회와의 공감대 형성에 힘쓰고, ESG활동을 지속하며 소통하고 있다.
사업장 인근에는 파스토 그란데(Pastos Grande)와 포시토(Pocitos)라는 2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환경 모니터링 외에도, 황금소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며,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의료 서비스, 지역 학교 학용품, 장마철 긴급 건설자재 등을 지원하며 상생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주변 환경은 물론, 건설•조업 과정에서 무재해 달성을 목표로 빈틈없는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 건설에 참여하는 모든 회사가 매달 통합안전회의를 통해 안전 이슈를 사전에 종합해 공유하고 있고, 안전관리자의 점검과 CCTV 설치로 불안전한 작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