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이곳, 아르헨티나 고지대 소금사막 옴브레무에르토(Hombre Muerto)에는 오늘도 하얀 황금, 리튬을 캐는 사람들의 땀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친환경 미래소재 사업 최전선, 4000미터 포스코아르헨티나 염호에서 보고 느낀 도전과 희망의 기록을 담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듣던 대로 고산병 증세가 찾아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열과 오한이 있는 것이 몸살 증세와 비슷했다. 게다가 종일 이동이 많을 것 같아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었는데 이것이 패착이었다. 고산지대에 처음 오게 되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볍게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반대로 밥을 배불리 먹었고, 이젠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주민이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하지만 막상 몸으로 겪으니 살짝 겁도 났다. 증세가 심해지자 취재를 일단 멈추고 의무실로 갔다.
의무실은 고지대 숙소 내부에 있고, 24시간 의료진이 상주한다. 의료진에게 떠듬떠듬 증상을 설명하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먼저 산소마스크부터 씌웠다. 침대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심호흡을 몇 번 하자 조금씩 머리가 맑아졌다. 의료진이 주는 약을 먹고, 주사도 맞았더니 증세가 빠르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의무실을 나서기 전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절대 뛰지 말고 천천히 걸을 것, 물을 하루에 3리터 넘게 마실 것, 식사는 가볍게 할 것. 주의사항을 최대한 준수했고, 저녁을 먹을 때 즈음 고산병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 고지대에서는 저녁에 잠을 잘 못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고산병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히터를 따뜻하게 틀고 베개를 평소보다 높여서 잤더니 이튿날 아침에는 고산병이 완전히 사라졌다.
최고의 적은 고산병… 뛰지 말고 3ℓ 이상 물 마시고 식사는 가볍게
전문 의료진 24시간 상주하며 고지대 직원 건강 보살펴
고산병은 실제로 고지대 근무 직원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다. 개인차가 있어 별 증세 없이 지나가기도 하고, 고지대에서 오래 근무해도 잘 없어지지 않기도 한다.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전문 의료 인력과 장비를 갖춰 고지대 근무 인원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고 있다.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의무실에는 개인용 산소 챔버도 갖추고 있어, 필요시 그 안에 누워 회복이 가능하다. 숙소 바로 옆에는 10명까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고압산소실도 있다. 잠수부들이 감압병에 걸렸을 때 치료하는 고압산소실과 비슷하다.
고지대 근무는 교대로 진행한다. 이동하는 날을 포함해 고지대에서는 총 8일을 근무하고, 근무가 끝나면 저지대로 이동해 6일간 휴식한다. 5주 근무 기준으로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을 준수한다. 1편에서 언급한 비행기 운영 덕분에 고지대와 저지대 간 이동 시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출장 기간 내내 머문 고지대 영구숙소 건물은 생각보다 괜찮은 베이스캠프였다. ‘영구숙소’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건물에서, 그 이전엔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모두 시범공장 건설 전후의 이야기고, 지금은 기역자 형태의 건물에 71개 호실을 갖춘, 완전히 기능하는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 일대 경쟁사들을 통틀어 이렇게 제대로 된 건물을 숙소로 갖춘 사례는 포스코아르헨티나가 유일하다고 했다.
4000미터에서도 인터넷은 터졌다 … 유튜브, 넷플릭스도 거뜬
냉온수 나오는 샤워기 … 불편함 없는 편의시설 갖추고 있어
숙소 내에는 무선 인터넷망이 갖춰져 있어 기본적인 업무, 정보 확인 등이 가능하다. 고화질이 아니라면 유튜브 시청도 가능하나, 대용량 파일 전송은 조금 인내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곳이 해발 4000미터의 오지라는 점을 잊지 말자.
대부분 개인실인 방 내부엔 침대, 책상, 화장실, 샤워부스, 옷장, 신발장, 온풍기가 갖춰져 있고, 시설 유지 보수와 관리를 전담하는 협력사가 숙소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마치 호텔처럼 문고리에 걸 수 있는 방해금지 표지판도 있다.
샤워부스에서는 뜨거운 물이 잘 나왔고 수압도 충분했다. 고지대에는 기본적으로 담수가 귀하다. 생활용수를 포함한 모든 담수는 모두 차량으로 실어 나른다. 토양 특성상 담수에는 비소 성분이 들어있어 씻는 용도의 물은 모두 정수시설을 거쳐 탱크에 별도로 저장해 쓴다. 같은 이유로 식수는 용기에 담아 별도로 가져다 쓴다. 물차와 탱크의 모습을 보고 난 뒤로는 자연스럽게 물을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귀한 몸 단연 ‘물’… 400㎞ 밖에서 트럭으로 실어와야
염수는 넘쳐나는데 마시고 씻는데 쓸 물 단 한 방울도 구할 수 없어
기역자처럼 양 갈래로 뻗어나간 숙소동은 가운데 식당에서 만난다. 자연스럽게 만남의 광장 역할도 하고, 휴식과 간단한 업무 공간 역할도 한다. 양 벽면에 걸린 두 대의 TV에서는 각각 한국 뉴스 채널과 아르헨티나 채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매 끼니마다 한식, 아르헨티나 현지식 두 종류 나와
고지대 생활에서 또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고산병을 극복하는 기간 동안은 소식 기조를 유지했지만, 막상 조금 적응하고 나니 ‘산에서는 입맛이 산다’는 명제가 변함없이 적용된다. 게다가 이곳은 매 끼니 한식과 아르헨티나 현지식이 함께 나온다.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자연스럽게 손은 한식으로 간다.
숙소 주방은 아르헨티나 한국 교민 요리사와 인근 마을 주민의 끈끈한 팀워크로 돌아간다. 숙소 식사는 뷔페식이며 한국 식당과 비교해도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식재료는 400여 ㎞ 떨어진 살타시(살타州 주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구하되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약 1700㎞ 거리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수해온다. 특히 귀한 것이 배추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번에 많은 양을 구해오면 해발 4000m에서 김장을 한다.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서도 김치는 물론 매일 바뀌는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한식 먹거리는 1700㎞ 떨어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져와야…
끓는점 86℃라서 면요리는 할 수 없고, 1차 가공한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어
다만 메뉴에 면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고지대라 기압이 낮아 물이 약 86℃에서 끓어 면이 잘 익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라면 등 한번 가공을 거친 면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잘 불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은 특별 바비큐 데이가 열리는데, 숙소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전용 그릴에서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소고기를 배불리 구워 먹을 수 있다.
숙소 식당에는 가볍게 당구를 즐길 수 있는 당구대가 있다. 쓰고 남은 자재와 너트를 활용해 직접 만든 점수 계산대가 이색적이었다. 또 숙소 안쪽으로는 조명과 미러볼을 갖춘 노래방이 있다. 노래방 기계는 태진미디어이고, 주간 최신곡이 바로 업데이트가 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명곡이 등록돼 있어 분위기를 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향수병 달랠 노래방, 당구대, 체력단련실, 휴게실 등 갖춰
그 옆으로 체력단련실이 있고, 안마의자와 함께 비디오게임을 즐길 수 있는 휴게실도 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족구장이 있다. 족구를 좋아하는 한국 직원들의 전파에 힘입어 국가 간 친선 족구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숙소 곳곳에 이처럼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회사가 마련한 복지시설이 많다. 하지만 이곳 고지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은 숙소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다. 어디에 시선을 둬도 아르헨티나 고지대 평원이 만들어내는, 마치 지구 밖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고지대의 하늘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가깝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파란 바다 같은 하늘이 머리 바로 위에 펼쳐져 있다. 구름을 뚫고 올라와야 하는 이곳에서는 어디를 걸어도 구름 위를 걷는 셈이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던 파란 하늘과 갈색 산맥의 강렬한 색 대비는 심미적인 즐거움을 준다.
우주 SF영화의 한 장면같이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
압도적인 대자연의 풍광에서 태초의 지구 모습 떠올라
산맥 능선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직선의 향연은 어느 하나 반복되는 구간이 없이, 제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지각판의 충돌로 솟아오른 안데스산맥은 그 탄생에 깃들어있는 어마어마한 힘과는 달리, 왠지 모를 포근함을 선사한다. 염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들은 공식적인 이름은 없지만, 고지대 근무 직원들은 나름의 애칭으로 부른다. 상용화 공장 착공식의 배경이 된 산은 염수리튬공장 부지 일대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산이지만 별칭은 ‘쥐산’이다. 예전에 쥐가 많이 살아서 그렇다고 한다. 염호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이정표와 경계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염호를 처음 볼 때,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산들을 염호의 범위를 가늠하는 기준점으로 삼으면 좋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
염수에 비친 하늘과 실제 하늘이 빚어내는 환상적 풍경
고지대가 간직하고 있는 절경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만날 수 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의 장막이 드리우면, 이곳 옴브레무에르토 염호에서만 볼 수 있는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지대에는 숙소와 공장 건물 주변을 제외하면 인공적인 빛이 거의 없다. 차를 타고 부지 외곽으로 나가 시동을 끄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찾아온다. 그리고 검은 밤, 검은 하늘 사이로 찬란한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 복판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강을 따라 셀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광채를 내뿜는다. 특히 남반구 하늘의 스타는 남십자성이다. 북반구 하늘에 정북향을 찾는 이정표인 북두칠성이 있다면,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이 남쪽 하늘에서 존재감을 자랑한다. 남십자성을 이루는 네 개의 별을 십자 형태로 이으면, 그 십자선이 만나는 곳이 정남향으로, 뱃사람들이 항해를 할 때 방향을 잡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은 잊을 수 없는 광경
북쪽 하늘로 돌아서자 겨울철 서울 하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리온자리도 볼 수 있었다. 남반구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별자리들이 하늘을 꽉 채우고 있어 여유가 된다면 별자리 책이나 앱을 들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반구의 밤하늘을 처음 만난 날 운 좋게도 꼬리를 끌며 빠르게 질러가는 별똥별도 볼 수 있었다. 소원을 그 자리에서 빌기에는 너무 빠르니, 미리 마음에 담아 가도록 하자.
포스코아르헨티나는 고지대뿐만 아니라 저지대 살타시에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내 아담한 2층 건물을 사무실로 쓰던 포스코아르헨티나는 2021년 사무실을 공항에 가까운 시 외곽 넓은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근무 중간중간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과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데 살타시는 연중 기후가 온화해 사람들은 언제든지 편하게 야외 식사를 즐긴다. 포스코아르헨티나는 저지대 사무실에 직원들이 주변 환경을 함께 누리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또한 포스코아르헨티나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사무실 별채에 카페 이슬라(Cafe Isla)를 꾸렸다. 커피를 한 잔 할 때마다 성금을 모아 지역사회 ESG활동에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포스코아르헨티나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양국의 다른 문화에 어떻게 녹아들고 있을까? 2021년 우수사원으로 선정된 루시아노(Luciano)와 벨렌(Belen)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르헨티나 현채인 중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바로 아르헨티나 교민들이다. 앞서 소개한 협력사 소속의 요리사 외에도 통역 요원들이 활약 중이다. 초•중등교육을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이주해온 통역 요원들은 한국어와 스페인어에 모두 능통하다. 아르헨티나에는 2만 명이 넘는 교민이 살고 있는데, 이는 남미 최대 수준이다. 포스코아르헨티나에서도 이들은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하며 매끄러운 운영을 돕고 있다.
끝으로 포스코아르헨티나 설립부터 상용화 공장 착공까지, 현지에서 임직원들을 이끌고 있는 김광복 법인장에게 지금까지의 발걸음과 포스코아르헨티나가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지구 반대편 해발 4000미터 고지대 염호에서 미래를 일궈가고 있는 포스코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매력은 짧은 지면에 모두 담기엔 너무 크다. 직원들의 근무조건에 회사가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임직원들은 이질적인 기후, 부족한 현지 인프라와 낯선 문화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포스코그룹의 미래 신성장 사업의 최전선에서 매일매일 전인미답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포스코아르헨티나 임직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