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장 5주기 추도식 개최, 세계 최강회사 성장다짐
- 12월 13일, 국립서울현충원ㆍ포스코센터에서
- 유족, 임직원, 각계인사 등 300여명 참석… 고인 업적 기려
박태준 명예회장 5주기 추도식이 12월 13일 포스코센터에서 개최됐습니다.
이날 추도식에는 명예회장 유가족과 친지, 창립요원 및 중우회원 등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계열사 사장단, 강창희 전 국회의장, 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소설가 조정래 등 생전에 고인과 인연을 이어온 각계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는데요.
추도식에 앞서 일행들은 국립서울현충원의 명예회장 묘소를 참배하고, 조국이 군대를 필요로 했을 때 장교로 투신하고, 현대 경제를 위해 기업인을 찾았을 때 기업인이 되고, 미래의 비전을 필요로 할 때 정치인이 되어 조국에 봉사하고, 미래인재 양성하는 교육가로서 일생을 살아온 그를 기렸습니다.
그는 평생을 조국에의 보답 즉 ‘보국(報國)’을 실천하며, 좌우명처럼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를 큰 울림으로 남겨놓고 2011년 12월 13일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박 명예회장은 유언을 통해 “포스코가 국가경제동력으로 성장해 만족스럽다. 앞으로 포스코가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평생을 바쳐 일궈낸 포스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나타냈는데요. 이와 함께 포스코 임직원들에게 애국심을 갖고 일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명예회장 묘소에서 안병화 포스코동우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박태준 명예회장은 포스코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철강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정신적 지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고,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극복할 수 있는 힘도 돼 주셨다”고 고인을 기리고, “보호무역주의 대두, 글로벌 철강업계 과다경쟁 등 여러 외부 환경요인으로 대내외적 경영여건이 어려워졌지만, 포스코는 고인께서 몸소 보여준 제철보국의 창업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며 완전한 자율경영태세를 갖춰 당당하게 영속 발전하는 국민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행들은 포스코센터로 자리를 옮겨 명예회장 5주기 추도식에 참석했습니다. 추도식은 추도사, 추도영상 시청, 추도예배, 도서헌정, 헌화, 묵념 순으로 진행됐는데요.
권오준 회장은 추도사에서 “박태준 명예회장은 다음 세대를 위한 순교자적 희생으로 모래 바람과 싸우며 허허벌판에 포스코를 일궈 놓으셨다. 마지막 유언으로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강의 포스코가 되어달라!” 는 당부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바, 고인께서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당당할 수 있는 힘과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저희에게 주었다”고 추모하고 “명예회장은 위국헌신과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일생을 나라에 바친 분이셨다. 눈앞의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보다 경영체질의 근본적 개선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고인께서 자랑스러워할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편 이날 포항과 광양에서도 박태준 명예회장 동상을 참배하고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임직원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보고 싶었소! 뵙고 싶었습니다! ‘박태준 평전’ 개정판 출간
- 명예회장 5주기 맞아 …. 2004년부터 타계 직전까지의 고인 모습 추가해
박태준 명예회장의 5주기를 맞아 ‘박태준 평전-세계 최고의 철강인(이하 박태준 평전)’의 완결판이 출간됐습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희수(喜壽, 77세)를 맞아 2004년 12월 출간한 ‘박태준 평전’은 일제 식민 통치하의 유년시절부터 포항제철의 성공신화, 정치입문에서부터 은퇴까지 그가 걸어온 인생 역정을 오롯이 담아냈는데요.
특히 박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통해 세계 철강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 발전 방향 등을 조명함은 물론 그 이면에 자리한 대한민국 현대사와 이를 둘러싼 이데올로기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완결판은 2004년 출간 직후부터 박 명예회장 타계까지 7년 간의 내용을 증보한 것으로, 어록을 추가하고 군데군데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박 명예회장은 한ㆍ중ㆍ일 3국의 경제, 문화, 지적 교류를 활성화해 우호관계를 정착시키고 공동번영을 추구해 가자는 동북아시아 비전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오래 전부터 과학인재 육성과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해온 그는 2008년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각종 사회공헌사업을 이끌었는데요. 특히 해외가 아닌 국내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를 선발해 국내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취지의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편 박 명예회장의 타계 직전을 기록한 <박태준의 마지막 계절>에서는 2011년 9월 건강이 악화됐음에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옛 직원들을 직접 보기 위해 19년 만에 포스코를 찾은 일화도 담아냈습니다.
<보고 싶었소! 뵙고 싶었습니다!>라는 행사에 참석한 그가 포항 행사장에 들어서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었는데요. 그에게로 뛰어나온 몇몇 직원들이 악수를 청하자 그들의 손을 잡은 박 명예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졌었습니다.
박 명예회장은 “정말 보고싶었다”고 화답하고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청춘을 바쳐가며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는데요. 이날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와 조국의 현대사 속에 묻어 있음을 잊지 말자”고 역설하고 눈물을 훔치는 그의 모습에 이내 행사장은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1년 11월 마지막 수술을 끝마치고 마취가 풀린 직후조차 당시 유럽 경제위기 상황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걱정하며 “우리나라도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던 일화 등 눈을 감기 직전까지 조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은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그해 12월 13일,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강의 포스코가 돼 달라”는 유언을 포스코 임직원에게 남기고 영원한 안식을 찾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