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사(裝蹄師)라는 직업이 있다. 편자를 만들어 말발굽에 부착하는 전문 기술직이다. 편자는 사람의 신발처럼 말발굽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도구인데 ‘I’자형의 쇠를 발굽 모양으로 구부린 후 못을 박아 말발굽에 부착한다. 편자를 말굽에 박는 과정을 장제라고 하며, 이 과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장제사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말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직업이다.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만난 장원 장제사는 올해로 장제일을 한 지 10년이 됐다. 얼마 전 버지니아 월드 챔피언십 블랙스미스 대회(Virginia World Championship Blacksmiths Competition)에 출전해 2등을 수상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말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직업
말의 발굽은 젤라틴으로 이뤄진 발톱의 뾰족한 끝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사람의 손톱으로 치면 우리가 손톱깎이로 잘라내는 부분에 해당한다. 한 달에 약 8mm씩 자라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발굽을 갈아내고 편자를 새것으로 교환해야 한다.
보통의 승마용 말에게는 쇠 편자를 사용하는 반면 경주마에게는 속도의 향상을 위해 알루미늄이나 두랄루민과 같은 가벼운 재질의 편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사람도 정장을 입을 때는 구두, 운동할 때는 운동화를 신는 것처럼 말 역시 용도에 따라 다른 편자를 쓰는 것이다.
편자를 박을 때는 말과 교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스코 뉴스룸이 찾아간 날은 승마용 말발굽을 교체하는 중이었는데, 장원 장제사는 교체 전 말에게 다정하게 말부터 건넸다. 말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모습이 몸에 배어 있었다.
“말이 긴장하지 않게 편안한 상태를 만들어줘야 해요. 어릴 때는 힘이 좋으니까 제가 말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말이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피하죠. 일하다 보면 손톱이나 발톱도 많이 빠지고, 말에게 상해를 입어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어요.”
┃꺾기 어렵지만 뒤틀림 없는 포스코의 철
장제 일은 야외에서 할 수밖에 없다. 뜨거운 화덕에서 구워낸 쇠를 만지는 일이니 여름에는 작업장의 온도가 보통 5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겨울에는 한없이 추워 장제사 모두 감기를 달고 산다고 할 정도다.
“여름도 여름이지만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될 텐데, 겨울에는 발은 시린 데 손에서는 땀이 나요.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가우니까 직업병 중의 하나가 감기인 것 같아요.”
말편자에 사용되는 철은 국산을 비롯해 외국제까지 여러 종류의 철이 사용된다. 10X20 규격의 쇠막대를 발굽 모양으로 구부려 편자를 만드는데 철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철마다 장점이 다 있어요. 특히 포스코 제품은 탄성이 좋더라고요. 단단하기도 하고요. 발굽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꺾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뒤틀림이 없죠. 반면 외국 제품은 단조 작업을 하기가 쉬운 편이에요. 잘 구부러지는 대신 식었을 때 잘 휜다는 단점이 있죠.”
┃끊임 없이 노력하는 10년 차 베테랑
국내 장제사는 80명이 조금 넘는 숫자다. 이중 한국마사회 소속 장제사는 렛츠런파크 서울에 4명, 제주에 2명 총 6명이다. 장원 장제사는 전문직이라는 장점에 이끌려 스물셋 나이에 장제사의 길로 들어섰다.
장제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국가자격증 3급을 따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제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보통 실력 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손에 익은 기술을 느낌대로 작업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제를 가르치는 학원 같은 곳이 없어요. 보통 도제식으로 경력자에게 배우면서 일을 익히게 되는데 저는 마사회에서 교육생을 모집할 때 지원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요. 교육생이 모두 마사회 소속 장제사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운이 좋은 경우죠.”
2년간의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지금은 10년째 장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이제야 겨우 ‘이게 장제구나’ 알 것 같다고 했다. 처음 편자 만들 때는 작업 시간이 1시간 반 넘게 걸렸지만 점점 시간을 단축해 가고 있다. 반복 작업이긴 하지만 말마다 발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장제 작업 또한 매번 다르다. 지금까지 장제 작업을 얼마나 해왔는지 따져보니 1년에 1500두의 말발굽에 장제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제가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장제를 하면서 ‘잘 한건가?’하는 의문을 항상 품고 있죠. 저보다 몇십 년 하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배운 것을 접목해서 하는 거니까 그때그때 결과물이 달라요.”
그는 2015년도에 처음 외국에서 열리는 장제 대회에 나간 후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외국은 국내와 달리 장제에 대한 역사가 깊고 전문학교가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대회를 주최한 측에서 쇠를 주면 화덕에서 익혀서 대회 기준에 맞춰 편자도 만들고 장제도 해요. 2015년 처음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땐 참가 인원 60명 중에서 15등 정도 했어요. 이번엔 준비를 많이 해갔는데도 어려운 점이 많았죠.”
┃장제사에게 철은 친숙하지만 뜨거운 존재
장원 장제사가 계속 대회에 출전하는 이유는 높은 해외 장제 기술 수준에 맞춰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다. 그는 꾸준히 장제에 대해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한다.
“일부러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하려고 하죠. 뭔가 비슷한 것 같은데 직접 눈으로 다른 사람의 장제 작업을 보면 또 배울 점이 있거든요. 외국 기술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와 장제를 할 때 보고 느낀 것을 접목해보고 있어요.”
장원 장제사에게 철은 ‘친숙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존재’다. 매일 만지는 철이니 이제는 익숙하지만 10년 차 베테랑에게도 여전히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장제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뜨겁다고.
그는 먼 미래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할 수 있는 장제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10년 동안 쌓은 기술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장원 장제사의 꿈을 응원한다.